2019. 10. 21.
 시무언 김기동목사의 신학 이해(理解)와 극복(克服)
글쓴이: 이동훈  날짜: 2011.04.05. 20:14:43   글쓴이IP: 220.77.113.120
시무언 김기동목사의 신학 이해(理解)와 극복(克服) 이동훈목사(부산성락교회 담임)

필자 주(註)
『김기동목사는 한국교회의 뜨거운 감자이다. 삼키려니 데일 가능성이 많고 뱉으려니 자신감이 없고 마음이 편치 않다. 한마디로 아깝다. 솔직히 말하면 '진짜 문제가 뭐냐?' '이건 아니다'싶은 자책감에 양심이 눌림을 받는다. 그에게서 배웠다는 교계 유명 인사들이 많은 것이 큰 역할을 했다. 그들은 대부분 존경받고 목회를 잘하는 큰 인물들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한국교회는 인격으로서의 시무언과 그의 주창하는바 신학의 고개를 넘어야 한다. 여전히 무시하는 사람이 많으나 터놓고 말을 하지 않을 뿐 시무언에게서 영성으로나 신학에 빚진 이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시무언 성역 50주년을 맞아 그의 신학을 조명해 보는 것은 시무언의 베뢰아를 위해서나 한국교회 나아가 세계교회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로 생각된다. 이 큰일에 필자같이 작은 사람이 지면의 한 구석을 얻게 된 것은 큰 영광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졸고에서 ‘시무언’은 김기동목사의 아호로 그를 존경하는 맘이 담겼고 베뢰아와 베뢰아운동, 시무언신학이 별 설명 없이 혼용되었음을 밝혀둔다. 또한 평소 필자의 신학 하는 방법과 소신을 따라 별다른 참고도서 없이 있는 생각 그대로 써내려 갔음도 밝혀둔다. 이유는 졸고 중에도 일부 언급되어 있지만 필자는 상아탑형의 신학에 배타적이다. 신학의 원리가 그런 것이 아니다 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한편의 짧은 글이나마 청탁을 받을 때마다 나는 전문 신학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재확인한다. 신학에 뛰어나 신학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 아니라 지역교회의 지극히 작은 목사이다. 그러나 오래 열심히 믿음생활을 했고 교회밖에 몰랐던 삶이었던 것만큼 뭔지 잘 모르면서도 신학하면 끌리는 것이 있다. 그것을 신학이라고 하면 그 신학은 사변적이질 않고 소박하나 진지하다. 생각이 짧다는 것이 늘 아쉽지만 싱싱한 현장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대신학이 종교개혁을 지나 합리주의와 자유주의의 큰 물결을 거쳐 무슨 무슨 신학 하더니 지금은 신학부재의 시대라고 할 만큼 크래식한 신학의 퇴조가 눈에 띤다. 이론신학 실천신학이 따로 없이 온 동가리 신학이 주류다. 신학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는 시대문화의 코드를 읽어야 하는 것도 요청된다. 따라서 오늘의 신학 서술에는 이야기체가 더 어울린다 고 생각한다.』

1.신학의 의미와 동기
신학의 변천과정을 통해 다시 신학이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신학이 되는지를 알아본다. 특별히 시무언에게 신학의 의미는 무엇일까를 묻는다.
1)신학의 변천사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벧전1:24)하여 신학도 변하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이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백하는 정통 보수신앙적 관점에서 성경의 정확무오함을 주장한다 하여 그로부터 파생된 신학도 정확무오할 것이라 하면 대단한 만용이다. 성경은 영원하고 정확무오하나 신학은 그렇지 않다. 성경은 시대의 산물이 아니나 신학은 시대의 소산이다. 성경은 일점일획이라도 가감할 수 없으나 신학은 엄청 가감을 통해 다듬어진다. 여기서 간단하게라도 신학의 변천사 전체를 조망해보는 것은 무리다. 큰 시대적 구분마저도 졸고의 한계를 많이 넘어서는 것으로 보인다.
맥은 이렇다. 교부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양성론을 중심으로 한 기독론 그리고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론 같은 신론이 성행했다. 교회의 기초를 놓아야 했던 시기에 당연한 과제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논쟁의 형식은 논리싸움 말꼬투리잡기 싸움이었다. 그 시대는 그게 그렇게 중요했다. 교부들은 그렇게 기독교회의 기초를 세웠다. 이후 그보다 더 사소한 일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나누어졌다. 배후의 정치적 힘겨루기는 숨겨둔 채 둘은 천수백년이 더 지나도록 남같이 떨어져 있다. 그리고는 서방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중세교회로 접어들었다. 십자군전쟁으로 교회의 위상이 흔들릴 때까지 로마가 중심이었다. 그 시대 교회는 왜 그렇게 교회의 본질로부터 멀리 이탈했을까. 무엇보다 시대의 한계로 보인다. 일반회중들이 깨어있지 못했다. 성경이 그들에게 없었다. 성경은 인쇄술의 발견 전까지 제한된 성직자들만 가질 수 있는 최고가의 보물이었다. 더욱 대부분이 문맹이었다. 수도원을 중심한 경건운동이 없잖아 있었으나 토마스 아퀴나스 이후 사변적 스콜라신학이 중세신학을 주도했다. 이는 교부시대의 신학양상에 이성과 논리가 어우러져 교회의 권위와 조직 그리고 교회의 위상을 강화시켰다. 이처럼 2000년 기독교역사에서 지속되던 기독교신학의 닫힌 분위기는 중세에 기인한다. 그것이 붕괴의 조짐을 보였다. 봉건사회가 무너지면서 그 사회를 지탱하고 있던 계급과 인물 가치와 문화적 패턴이 함께 붕괴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교회 내에서 종교개혁이라는 혁명적 사건으로 나타났다. 교회계급에 대한 노골적 도전이 있었다. 중세적 가치와 제도와 권위가 심각하게 도전 받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작은 것이도록 보이는 것의 이면에 정신세계의 계몽이 있었다. 영국의 산업혁명과 프랑스의 정치혁명이 큰 역할을 했다. 한 시대가 지나가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면서 새 시대의 여명이 21세기의 거름이 된 것은 역사의 순리이다. 문명의 발달로 인한 정치, 사회, 문화의 변천이 교회개혁의 배경이 되어 이전시대의 폐해와 오류로부터 교회를 바로 세워가는 사이 덤으로 인간의 눈이 밝아지고 마음이 열렸다. 근대를 지나 현대 그리고 현대이후시대를 넘어 21세기는 몇 년 주기라 할 것도 없이 문화의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과학의 발달로 인한 문명의 변화는 주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짧게 끊어보면 잘 보이지 않으나 백년 주기라도 구분하여보면 그야말로 별천지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이렇게 예상 자체를 불허하는 세대에 -전문 미래학자들조차 미래는 예측 불능의 시대로 예측한다. -신학도 예외가 아니었다.

2)신학의 비정형화 시대
신학이 고전적 틀을 깨기 시작했다. 오래되지 않았다. 종교개혁의 원조 루터와 칼뱅 쯔빙글리 18C 감리교회의 창시자 웨슬레를 이어 자유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또 다른 반동으로서의 신정통주의의 칼 바르트와 동시대의 브루너 불트만 그리고 그 이후 세대만해도 신학의 내용이 엄청 큰 폭으로 정통주의를 벗어난 것에 비해 틀은 고전주의적 외양을 벗어나지 못했다. 실은 많이 벗어났지만 그래도 볼만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하비콕스의 '세속도시'를 비롯하여 플레처의 '상황윤리' 등이 이탈의 가능성을 보이더니 흑인신학 여성신학 등의 전위신학에서 더 발전된 변화가 나타났다. 신학의 고전적 틀이 깨어지고 신학 장르의 구분 없이 주제와 범위를 전방위적으로 다루는가 하며는 다른 학문 특히 정치 문화 인문 생명 기술 환경등과 어울려 신학의 퓨전화가 시도되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배경은 신학이 아니었다. 신학은 보수적이라 보통 늦다. 먼저 문명의 힘에 개화된 시민들의 자각으로 전제군주사회가 왕창 바뀌어졌다. 이전 같은 왕이 없다. 사는 것이 바뀌었고 새로운 선거제도의 도입과 함께 시민들의 힘이 크게 신장되었다. 민초도 이전의 민초가 아니다.
주제를 벗어난 것 같은 이야기를 조금 늘어놓았다. 신학도 같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신학의 틀이 깨어지고 신학의 구분조차 사라져가는 분위기다. 시무언은 이 바뀐 흐름에 제대로 올라탔다. 신학 같지 않은 무정형의 신학시대에 시무언의 변화무상한 논리와 자기 생각과 이론을 표현할 수 있는 재주는 제격이었다. 시무언 초기만 해도 '저게 무슨 신학인가'했던 사람들이 무색해졌다. 시무언은 이렇게 신학을 시작했다.
①신학은 없었다.
원래는 말씀의 선포였고 대화였고 교훈이었고 이야기였다. 그것이 교회의 필요에 따라 신학이 되었다. 이렇게 원형이 변화하여 신학이 되는 과정에서 있어야 했을 반성과 질문은 생략되었다. 생략의 함정이 얼마나 인간적이고 무신(無信)하고 반신앙적인 것은 고려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신학을 주지 아니하시고 말씀을 주시고 체계화된 교리를 주지 아니하시고 성경을 주신 것은 물어지지 않았다. 교회의 당면한 필요라는 인간적 고려만이 있었다. 사람이 얼마나 망각의 존재이며 얼마나 사악하고 교활할 수 있다는 것도 모두 고려 밖이었다. 그렇게 신학은 교회 안에 들어왔고 세월과 함께 성경을 밀어내고 교회의 왕좌에 앉아 모든 것을 판결하는 재판장이 되었다. 차라리 신학이 없었으면 불거지지 않았을 수많은 정죄와 심판과 악들이 신학 -그것이 언제 교회의 정의가 되었는지- 이라는 정의 앞에 불의가 되고 이단이 되어 정죄를 받았다. 성경에는 엄연히 두 모순된 이론, 주장, 설 등이 있으나 신학은 이를 용납지 않았다.
시무언이 처음부터 이런 논리에 깨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원형의 신앙이 갖는 ABC를 주변의 별다른 오염 없이 받아들이면서 성경을 받아들였다. 성경대로 믿고 움직였으며 그 말씀을 그대로 전했다. 그게 설교였다. 그것이 그의 신학이 되었다. 이는 250권이 더 된다는 그의 저작들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그가 신학교의 총장이 되고 많은 주요한 저술들을 내어 놓았으나 그에게는 고전적 의미의 신학서들이 없다. 그의 저작들은 서구신학과 서구신학의 틀이 되었던 조직, 논리, 이론, 분석 고전인용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신학적으로 논란이 되어 있는 사람이다. 그의 저술들로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초월하지 않는 하나님'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 상, 하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해하라'는 그의 신론이다. '인자가 온 것은' '예수를 알자'는 그의 기독론이다. '성령은 이렇게 역사 하신다' '성령을 알자'는 그의 '성령론'이다. '마귀론’ 상,중,하 ' 영혼을 그늘지게 하는 요소' '마귀를 정복하는 힘' 등은 그의 마귀론이다.
큰 목회자로 성공한 그는 소위 실천신학이라 할 수 있는 거의 전 영역을 망라하는 저술을 남겼다. 대단히 신학적이나 신학책 같지 않은 그의 저술들을 일일이 분류하는 것은 흥미롭지만 부질없는 낭비이다. 어떻게 한 사람에게서 그 많은 저작들이 가능했을까? 추정하는바 그에게는 신학이라는 답답한 양식이 없었기 때문인 것도 한 몫 한다. 그는 자기가 알고 있는 신앙의 세계를 자손에게 들려주듯, 성도들을 양육하듯 써내려간다 고 했다.
신학이 신학이면서 종래신학의 틀을 깨고 나온 경우가 시무언 외에 더 있는지 모르겠다. 서구신학의 한계는 앞서 약술하였다. 그들은 논리와 분석과 이성이 앞서 신학의 총체적 모습을 보지 못하고 시대와 학자의 지엽적이고 단편적인 관심만을 부각시켰다. 한국의 '조용기목사'를 신학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신학적 영향력을 가진 이로 볼 수 있겠으나 그에게 그만의 신학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오순절운동을 내세워 성령의 사역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방언과 신유사역 그리고 금식과 기도운동을 바탕으로 오순절신학이라 하나 오순절신학은 원래 조용기목사의 것이 아니기도 하고 조목사가 미친 영향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신학이 갖는 원래적 신학성을 고려할 때 그를 신학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자연스럽다.
한국교회가 무지와 오해로 시무언에게 가혹한 핍박과 멸시, 무관심을 멈추지 않고 있으나 시무언은 신학의 전 영역에 대하여 자기 신학이 있다. 이러한 시무언신학의 특성은 포스트모던 주의적, 비정형주의, 감성주의 다양한 장르의 퓨전현상에 딱 들어맞는다. 젊은 세대들이 어렵게 기존의 질서를 깨고 나오는 것과 달리 그는 그만의 고유한 신학내용과 함께 신학형태의 변화에도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②신앙과 신앙체험이 앞서 있었다.
모든 이론이 그렇다. 이론 이전에 사건이었고 삶이 있었다. 이론의 발견이 우연이었고 혁명적이고 천재적인 것을 인정하더라도 대부분 시대의 거역할 수 없는 기승전결(起承轉結)의 한 과정인 것과 같이 시무언신학은 백지상태에서 성경을 집중하여 다독한 유일무이한 독특한 경험과 예수체험이 결합된 신앙이 먼지 있었다. 그는 그것을 전파하고 선포했다. 그것이 그가 가지고 있는 영리함과 문학적 소양들을 만나면서 그의 신학과 이론이 되었다. 그는 인간적으로도 대단히 비범한 인물이다. 하나님께서 그가 갖고 있는 재능들을 유감없이 쓰셨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쓰신 인물들이 많이 있다. 적극적, 긍정적으로 쓰임을 받은 경우도 있고 부정적, 소극적으로 쓰임을 받은 경우도 있다. 힘이 있었던 삼손 돈에 밝았던 가롯유다는 그들이 갖고 있는 것으로 쓰임을 받았고 목자 출신 다윗은 다윗대로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던 바울은 바울대로 쓰임을 받았다. 같은 의미 시무언에게는 인간적으로 칭찬 듣고 쓰임새가 높은 소양들이 많이 있다. 그의 성실함, 초인적 인내와 절제력, 강인함, 집중력, 치밀함 그는 자신을 눌변이라고 하나 사람을 설득시키는 말의 힘 등이 그의 목회를 대성으로 이끌었다. 그의 신앙과 삶이 신학이 될 수 있는 기반이 이렇게 만들어졌다. 그가 그의 주창하는 바를 굴절시키지 않는 주요한 이유 또한 그의 인격적 특성이기도 하겠으나 그의 하나님 체험이 워낙 컸던 것이 먼저이지 않은가 한다. 그의 신학이 체험 없이 이론만 늘어놓는 무미건조한 신학과 달리 힘이 있고 사람을 움직이는 감동력이 동반되는 것도 그의 무수한 신앙의 극적체험 때문일 것이다. 순수하고 맑고 깨끗한 인간성 그리고 초인적인 노력과 인격에 주의 축복하심이 더하고 숙성되어 큰 목회와 함께 신학이 되었다 지극히 바람직하고 정상적인 단계라 하겠다. 이것이 시무언의 신학 출범내지 배경이자 그의 힘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의 높은 인간적 특성과 그만의 큰 경험 때문에 한계를 보여주는 측면도 없지 아니하다.

2.시무언신학의 특성
이에 대하여 본인을 비롯하여 다수의 베뢰아사람들이 여러 번 발표한 바가 있다. 졸고는 이전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이후 축적된 경험을 토대로 재편성해 본 것이다. 시무언신학의 바른 이해를 위해 검증된 신학자가 나와 시비를 걸어주고 피차 결과에 승복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베뢰아사람들의 간절한 바램이다. 일부 전문신학자가 베뢰아의 문제점을 들고 나섰던 적이 있었으나 싸움이 만만치 않음을 알았던지 슬며시 물러서고는 별다른 소리가 없다.
신학은 절대가 아니고 교파신학도 교리와 헌법도 결코 절대일 수 없다. 그것이 진리를 변증하고 교회를 양육하고 시대정신의 도전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는 순기능이 있을지라도 그 순기능으로 인하여 신학의 한계, 신학의 본분을 잃어버린 바가 있다. 신학이 시대의 산물이자 시대의 영향으로부터 완전 별개일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신학자들은 당신들의 미성숙함으로 인해 이를 잊은 듯하다. 그들 대부분은 자기 신학이 절대라는 전제를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베뢰아도 이점에 동의해야 한다. 겸손히 절대에의 집착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성경에 집중하고 때마다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시무언이 신학의 한계와 폐해를 지적하는 것 중의 하나는 신학이 시대환경을 반영하는데 너무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신학은 보편성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편성'은 그의 신학의 중요한 포인트이다. 신학은 절대적이 아니나 신학의 내용은 보편성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이다.
①그의 신학은 시종일관 영적이다.
'영적'이라는 단어를 바르게 이해하고 전제하지 않으면 그를 이해하기 어렵다. 이를 해결하지 못한 채 그를 제단하려는 이들로부터 그는 사이비 도사 정도로 매도되기도 한다. 필자가 경험한 바로는 한국교회 신학자들이 그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이 시무언 바로 알기의 딜레마이다. 그는 대단히 난해한 인물이다. 그의 신앙, 그의 신학, 그의 인격적 특성, 그의 삶은 너무 깊고 넓고 서로 얽혀있어 그를 몇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비슷하게 그의 '영적'은 많은 설명과 사례 이해와 영성을 필요로 한다. 그래도 한 마디로 설명하라고 요구를 당할 때마다 '영적'이다 고 할 수밖에 없다. 많은 이들이게 영과 정신과 혼과 이성이 제대로 구분되지 않은 상태에서 '영적'이 무엇이다 고 설명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영적’의 핵심은 '영적 실상'의 문제이다. 기독교신학은 영적 실상을 전제한다. 하나님은 영이시고(요4:24) 사람이 영적존재(창2:7)이고 천사(히1:14)가 멀쩡한데 영적 실상을 전제하지 않는 기독교신학과 신앙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지 꽤나 회의적이다. 필자가 불량한 교회환경에 있기 때문이 아니다. 죄송하지만 필자는 꽤 괜찮은 교회환경에서 살아 왔다. 그러나 필자가 아는 그리스도인들과 동료와 신학자들에게서 영적 세계의 실상을 본 적이 없다. 객관적 수치를 제시할 수는 없으나 영적세계와 영적 존재의 실상을 알고 느끼고 경험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이 전체 교인의 10%나 될까 아님 5% 아님 1%라도 될까. 그들의 '영적'은 대단히 추상적이고 모호하다. 보이지 않는 것이라 하여 대충 안다. 그러나 시무언신학의 '영적'은 전혀 다른 얘기다. '영적'은 영적으로서의 실상이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보이지 않는 비형상, 비물질의 '영적'인 것이 보이는 세계의 실상이자 원상이다. 표상의 세계, 물질의 세계 현상의 세계, 현실세계는 실상이자 원상의 이미지이다. 천국이 실상이고 세상나라가 이미지이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이 실상이다. 그러나 어디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과 인간, 인간세상, 믿음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상관이 없을 수 없지만 별 있지도 않은 것이 우리 신학의 현실이자 신앙의 현실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 내는 세계가 영적이다 는 것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인간세상의 일이 악령과 선한 영이라는 영물들의 영적세계와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라는 것은 -2,000년 기독교 역사 중 일부 그 같은 각성이 있었지만- 확신하건데 시무언같이 일관성 있고 구체적이고 실감 있게 규명했던 적이 없었다. 시무언의 '영적'은 현실세계를 부인하거나 무시하거나 회피함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 실상'이 있다는 의미의 '영적'이다. 이를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는 힘이 영감이요 영력이며 이를 인하여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듯이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고 헌신하는 것이 믿음이다. 이는 엡 6;12의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함과 상통하고 욥의 경우 시련의 배후에 악한 영들의 모의가 있었던 것과도 같이 한다. 그럼 왜 성경의 다른 많은 부분에서는 언급하지 않는가 반문이 가능하다. 답은 간단하다. 성경이 따라 다니면서 일일이 언급할 수 없고 그러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성경 몇곳에서는 세상나라는 보이지 않는 나라의 모형이라는 것을 명시해 놓은 것이다.
주가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고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듯이 의지하고 사랑하고 헌신하는 것이 영적생활이다. 성경이 영의 서책이고, 인간의 역사가 영적실상의 역사적 현상이자 현실이요, 생사화복의 이면에도 영적 진실이 있다. 이렇게 현상의 세계를 영적으로 해석하는 신학이 욕을 얻어먹는 것 또한 별 어렵기 않다. 먼저는 영적 실상이 드러나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악한 영적 존재의 음모요, 다음은 사람들이 이에 세뇌되어 실상에 대한 진술들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익숙하지 않은 것, 낯선 것, 새로운 것에 대하여 열려 있지 못한 풍토 또한 중요한 이유이다.
예를 들어 보자. 먼 산을 보는 것과 산 속에 들어가 산을 보는 것은 산을 보는 것은 같으나 둘에 대한 진술은 도저히 같을 수 없다. 단순히 물체를 보는 것과 현미경 속의 물체를 보는 것도 그렇다. 눈으로 밤하늘을 보는 것과 초고성능 천체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보는 것도 그렇다. 정밀함의 차이자 정확함 구체성의 차이다. 베뢰아는 부인하지 않고 대충 알고 있던 것을 환히 보는 듯이 이야기 한다. 그 세계를 보지 못한 이들은 엉터리 같고, 사이비 같고, 이단 같고, 지어낸 이야기라 생각한다. 대충 아는 것은 모르는 것 부인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②성경해석의 독특함 - 성경주의에 대한 새로운 접근
시무언이 주창하는바 베뢰아가 한국교회로부터 핍박을 받고 욕을 얻어먹는 것은 매우 부당하고 이상하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사단적이다. 베뢰아는 성경지상주의에 가장 근접해 있기 때문이다. 같은 기독교신학을 표방하면서도 성경해석(이해)에 대한 입장이 신앙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은 만인이 아는 바다. 그 차이는 신앙과 불신앙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이렇게 크게 다른 성경이해 중 베뢰아신학만큼 성경에 대한 보수적 입장도 흔치 않다. 시무언은 성경문자주의와 탈문자주의 사이의 갈등을 조화시키며 성경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일차적으로 그의 성경이해는 문자주의에 가깝다. 그는 성경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수용한다.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은 신언(神言)이다. 적절한 사례는 다 열거할 수 없는 설교 중에 지천으로 널려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히13:8) 동일하신 이가 하시는 말씀은 지금 그가 오늘의 현존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그의 말씀을 기억할 때 그 말씀은 전능자가 하시는 말씀이다. 그 말씀을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으면 그 말씀은 현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이때 성경 속의 이적과 증거와 표적이 동반된다. 그러지 못한 것은 성경이 요구하는 수준의 믿음이 없고 영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시무언이 주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다른 예를 들어보자.
이혼에 관한 말씀이다. 모세는 이혼사유가 합당하면 이혼증서를 써주어라 했고(신24:1/ 마19:7), 같은 이혼에 대하여 바울은 헤어져도 무방하다는 뉘앙스를 풍겼으나(고전7:15) 예수께서는 친히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하셨다.(막10:9) 이혼은 안 된다는 결론이다. 이에 대하여 오늘의 교회가 수용하고 안 하고, 그대로 살고 안 살고는 다음의 문제이다. 모세가 광야에서 반석을 통해 물을 내게 할 때도 그렇다.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내라’(민20:8)고 말씀 하셨으나 모세는 '반석을 치는' 우를 범했다는 것이다. 시무언이 설교와 강의를 통해 성경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던 수많은 사례 중 하나이다. 그런 의미 그는 문자주의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이따금 '문자주의는 징그럽다'는 말을 한다. 아무리 보수주의를 표방하더라도 신학과 신앙의 현장에서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문자주의만을 고집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문자주의는 극복되어야 한다. 그것은 성령의 조명으로 가능하다. 성령으로라야 성경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성경해석에서 '성령으로'와 '자의적(恣意的)'의 차이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그것은 둘의 차이를 구별하려는 사람의 2차 영감과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에 대한 총체적 평가를 요구한다. 시무언은 놀라운 영감으로 문자주의를 넘어 성경전체를 일관성 있게 조화를 유지하며 통일성을 지킨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는 것은 보수 신앙의 기본이다. 이를 얼마나 실상으로 받아들이느냐 의 문제는 영감의 차이, 믿음의 차이, 분량의 차이다. 시무언은 지극히 예외적인 영감과 방대한 성경지식을 기초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면서도 문자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성경전체와의 조화를 통해 문자주의를 극복한다. 가장 이상적인 성경이해라 할 수 있다.
③삼위일체 신학
장님 코끼리 더듬는 격의 우스꽝스러운 일은 시무언에 대한 신학계의 접근과 논평에서 자주 일어난다. 솔직히 말하면 그들에게 시무언을 평가할만한 실력이 구비되어 있지 않다. 시무언의 신학을 다룰 만큼 성경에 대한 통합적 지식이 부족하고 시무언을 분석할만한 영감이 절대 부족하다. 최소한의 영적 소양마저 갖추지 못한 이들이 학위를 근거로 선무당 사람 잡는 격의 평가를 해대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중 하나가 시무언 신학의 중심축에 대한 이해이다.
‘시무언신학은 신론적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그의 신학은 '하나님의 의도신학'이라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라'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 상, 하 등 의 신론적 범주에 속하는 저술들이 상당하다. 이를 근거로 그의 신학은 신론적이라 진단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의 기독론적 관점에서 큰 깨달음을 얻은 이들은 관련된 저술들을 제시하며 시무언신학을 기독론적으로 파악한다. 또 '성령을 알자' '성령이 임하시면' '성령은 이렇게 역사하신다' 등을 고려하면 그는 성령에 대하여 일관된 이해를 가진 성령론적 학자이다. 시무언은 이렇게 전형적으로 삼위일체적 신학을 구사한다. 이런 그가 '양태론자' 운운하는 무지한 자들로부터 '삼위일체'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시달림을 받는 것은 한국신학계의 코미디다. 그는 지나칠 정도로 삼위일체적이다. 마치 삼위일체를 의식이라도 한 것 같이 그의 신학자체가 삼위일체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삼위일체’라는 것이 원래 그랬다. 성경에는 삼위일체란 말이 없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하여, 당신의 형상이자 독생하신 아들에 대하여 그리고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성령에 대하여 진술을 이어간다. 성경이후 사람들이 성경을 읽는 중에 셋이 하나인 것을 발견하고 이의 조화를 시도했다. 그 후 오랜 논쟁 끝에 삼위일체라는 말이 나왔다. 특별히 어거스틴에게서 이론이 확립되었다. 그러나 이도 빈틈이 많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이다. 어거스틴은 방대한 분량의 해명과 조합에도 불구하고 '양태론'적 비유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는 것이다. 불가피한 일이다. 인간이 신의 비밀한 존재양식을 완전히 파악하려는 것이 무리다. 세월과 함께 과학이 더 발전하여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존재 양태를 설명할 수 있는 비유와 고등이론이 나올지 모르겠으나 삼위일체는 시무언처럼 각각의 하나님에 대하여 있는 대로 경험하고 깨달은 그대로 진술하는 것이 가장 삼위일체적이다. 시무언이 '성령을 알자'에서 삼위의 관계를 '거룩한 무질서' 라고 한 것은 그의 신학적 탁월함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아니할 수 없다. 이를 두고 '거룩한 무질서라니?' 하면 그런 사람과는 상종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닫힌 마음의 사람이지 열린 사람, 성령의 사람이 아니다. 이렇게 그는 신학 전 분야를 포괄하는 중에도 특별히 방대한 삼위일체적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더 표피적으로 귀동양만 의지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시무언에게 있는 신학적 소양은 모른 채 그를 능력사역을 추구하는 사람정도로 안다. 오순절파와의 차이를 모르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귀신 쫓고, 병고치고, 은혜를 많이 끼친다는 소문이 그렇게 보게 한 것 같다. 외에도 교회개척과 관련된 글들, 교회성장과 관련된 많은 저술들과 소책자들, 세미나들은 그의 신학이 얼마나 전방위적인가를 보여준다. 한 사람에게서 그만한 일을 보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했다. 그게 신앙이고 신학이다.
④보편성
신학이 시대성을 띨 수밖에 없는 것과 신학의 보편성은 별개의 문제이다. 신학이 하나님의 말씀, 진리 그 자체이지 않고 교회의 요청, 시대의 필요를 외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신학의 시대적 한계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신학이 기독교진리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신학의 보편성 또한 빠뜨릴 수 없는 조건이다. 시무언의 탁월한 영감과 성경이해는 이점을 고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가 처음부터 신학의 보편성에 착안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에게 있는 신학적 소양과 능력들이 발현되었을 때 그의 신학에는 보편성이 묻어났다. 그는 자신의 설교에는 보편성이 있어 수명이 길 것이라 언급하며 후학들에게도 설교에 보편성이 있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어떻게 그 보편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를 역설한다. 그의 신학이 갖는 첫째 둘째 특징으로 제시한 영적이다는 점과 성경적이다는 점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 한다.
ⅰ.영의 문제는 보편성이 있다.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때조차 일시 '영적'관심이 퇴조하는 듯해도 일본 같은 선진 문명국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에서 다시 기독교회가 상당부분 부흥하고 있듯이 영적관심은 소멸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날의 여러 신학들이 한때 선풍적인 유행을 끌다가도 곧 세인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것은 보편성의 기초가 부실했던 탓이다. ⅱ.성경주의 또한 그렇다. 성경은 짧게는 2,000년 가까이 길게는 2,500년 전(에스라 시대)에 기록되었으나 구닥다리로 외면을 당치 않는다. 확신하는바 그것은 하나님께서 구원받아야 할 인간들을 사랑하셔서 구원의 메시지로 주신 것이기에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할 것이다. ⅲ.그의 신학의 보편성은 시간의 보편성만 아니라 공간의 보편성도 확보한다. 기독교신앙이 서구인들만을 위한 것일 수 없는 것과 같다. 동서양, 오대양 육대주, 특별히 적대관계가 깊은 이슬람권이나 불교, 힌두 문화권까지도 베뢰아는 뚫고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확신이다. 실제 베뢰아가 모국에서 핍박을 좀 덜 받고 현지 한국인들의 모략 훼방 방해만 덜하여도 선교현장에서 크게 역사할 수 있다는 것이 현지의 판단이다. ⅳ.시무언신학은 타문화권을 뚫어가고 있다. 이슬람권, 아프리카권 등 비 기독교권에 대한 돌파구와 관련하여 그의 신학의 보편성은 인간의 영적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귀신이 쫓겨나고 각색 병과 약한 것이 고침 받고 가정의 저주가 해결되는 큰 증거는 근원에서부터 기독교를 증거할 수 있다. 여전히 미신과 부족신앙에 갇혀있는 보다 미개한 지역에 대하여서도 영적 접근과 확실하고도 분명한 증거는 그 어떤 전도방법보다도 강력한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⑤교회중심의 신학
시무언은 교회의 사람이다. 그를 통하여 이룩한 모든 것이 교회 안에 있다. 그의 삶, 그의 일생이 교회와 관련되어 있다. 그는 교회전문가다. 그의 신학은 교회생활의 사소한 어느 부분 할 것 없이 망라한다. 그것은 교회종합 안내서 같은 신학이다. 그에게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세우신 교회를 위하여 한 교회의 사람을 준비하셨다는 감동을 받는다. 그런 의미 그의 신학은 교회를 위한 신학이다. 그의 저술 중 교회와 관련된 일부를 소개한다. '교회성장론' '교회를 위한 설교집' '평신도를 위한 교회론' '성장 그리고 성장'등이 그렇다. 외에도 읽는이의 심령을 깨우는 저서들이 많이 있다.
그의 교회 사랑과 이론이 유별한 것은 그의 신앙행적에 근거한다. 그로부터 교회와 관련한 전방위적 신학이 나왔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이가 또 나타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교회에서 큰 은혜를 입고 능력으로 역사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교회를 위해 고생하고 성공한 사람이 쉽지 않을 것이기에 그렇다. 일반의 신학자들은 그의 신학적 과업을 섣불리 평가하고 비판할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이렇게도 교회를 위한 세밀한 발상이 가능한지를 먼저 물을 필요가 있다. 그를 비판하고 매도하기에 앞서 교회를 위하여 살아온 그의 길을 좀 더 신중하고 세심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머리가 띵하도록 충격을 받아야 옳다. 최소한 그의 교회와 관련된 제목만이라도 보고 그를 비판해야 한다. 정상적인 신학자라면 제목 이백수십개만 읽다가도 교회에 대한 그의 충정, 하나님과 구주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이해와 헌신, 성령을 사모함과 주의 약속하신 권능에의 열정, 더욱 주님의 교회와 후학들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 걱정하는 마음에 머리가 숙여질 것이다. 그러고 나서 비판해도 충분하다.

3.시무언신학과 한국교회 그리고 세계교회
죄송하게도 이해를 위해 필자 개인의 간증 같은 소회을 덧붙인다. 필자가 베뢰아사람이 된지도 20년이 넘었다. 그사이 베뢰아교회연합 총회의 선교국장, 교육국장을 거쳐 총회의장을 연임하기도 했다. 필자는 김기동목사의 설교를 들었을 때 하늘의 음성을 듣는 듯 했다. 그것은 나의 영안을 밝혀주었고 그동안 말은 많이 들었지만 실감과는 거리가 멀었던 성경의 눈을 열어 주었다. 성경이 한눈에 들어왔고 성경을 애독하게 되었다. 그를 제대로 만나면 누구 할 것 없이 변화되지 않을 수 없다 고 생각했다. 그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모두 나 같지 않은 것을 안 것은 세월이 많이 지나서였다. 그만큼 나는 그로 인해 한곳에 몰두해 있었다. 그를 만났던 첫 주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며 피터 와그너의 제3의 물결이 떠올랐다. 베뢰아야말로 초대교회, 종교개혁에 이어 기독교 제3의 물결이다 는 생각을 했다. 모진 박해와 오해도 그리 오래지 않아 수그러질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이후, 욕 얻어먹는 것도 오해도 핍박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대수롭기는커녕 환난아 오라. 핍박아 오라! 했다. 주께서 심판하시는 그날 진리로 인해 환난도 핍박도 안 받고 어떻게 서랴 싶었다. 그래서 속했던 교단을 떠나 구걸하는 심정으로 베뢰아를 택했다. 그리고 20년이 더 지났다. 안타깝게도 아직 별무소식이다. 어떤 면에서는 더 위축된 면도 있다. 물론 더 기다릴 수 있다. 50년이고 백년이고 200년이 되어서라도 진리가 하수(河水) 같이 흘러가는 그날을 위해 내 일생 주께 드릴 수있다면 영광일 따름이다. 이게 기독교회의 역사였지 아니했던가. 그 피흘린 발자취를 자랑하고 긍지를 가졌던 것이 거룩한 선진들의 역사였다. 그런 의미 베뢰아가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에 미칠 영향은 아직까지 미완의 진행형이다. 그래서 숨고르기를 하며 베뢰아 본래의 모습을 진단하고 다시 미래를 그려보며 미칠 수 있는 파장을 가늠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① 시무언신학이 한국교회에 널리 보급될 때 한국교회는 제3의 중흥을 맞이할 수 있다.
현재의 신학과 그 신학이 의도하는 신앙의 열정만으로는 한국교회에 미래가 없다. 한국교회의 현주소, 그리고 한국교회의 미래에 대하여 염려의 소리가 높다. 2,000년 기독교역사에 유래를 찾기 어려운 부흥이라는 말이 무색토록 열기가 빠르게 식어가고 있다. 국민소득 2만불에도 허덕이는 교회를 무슨 재주로 소득 3만 불, 4만 불 그 이상 시대의 교인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소개할 수 있을 지 고민이다. 그때도 여전히 예수 믿으면 복을 받고 예수 믿으면 돈 벌고 병고치고 예수 믿어 자식이 잘되었다는 간증으로 사람 모으려 할까. 그때는 연예인 유명 체육인 데려놓는 간증잔치가 통할 것 같지 않다. 우스꽝스럽고 예외스러운 일이야 언제든 있겠지만 무리라는 진단이다. 한국교회는 공연히 주 앞에 서는 날 책망 받을 일을 중단하고 시무언신학에 귀 기울여야 한다. 마음을 열어야 한다.
베뢰아신학이 갖는 영혼의 보편성 문제는 어떤 세대든 승산이 있다. 원색의 복음과 근본주의는 다른 개념이다. 근본주의의 공로를 외면하는 것은 아니나 근본주의는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시대문화를 읽지도 포용하지도 못하는 답답함을 드러냈다. 그러나 시무언신학의 원색적 복음은 어떤 상황에서든 사람의 심령을 흔들어 놓는다. 그것은 구체성을 요구하는 시대의 요구 이상으로 믿음의 증거로 맞수를 불사한다. 성경이 더 이상 읽혀지지 않는 때를 예상할 수 없는 것은 아니나 성경이 서점에서 팔리고 복제인간, 사이버인간, 사람과 똑같은 기계인간 로봇 등 영혼이 없는 인간이 판을 쳐 영혼이 더 이상 관심을 끌지 못하는 날이 온다면 모를까 인간은 문화와 문명의 발전과 상관없이 어쩜 더 강열한 기세로 영혼의 갈함을 호소하고 영혼문제의 해법에 몰리게 될 것이다 그때 시무언의 영성신학은 다수대중을 향한 명쾌한 해석을 통해 -전체교회가 뜻을 같이 하는 강도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만큼 더 - 새로운 교회부흥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문명하다고 자신감이 넘치는 시대에 귀신이 정체를 드러내어 울고 떠나며 병이 나음 받은 역사의 현장을 그려보라. 주의 명령을 따라 귀신을 쫓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주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귀신을 못 쫓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
② 신학의 새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서점이 고전하고 있다. 교회가 고전하니 당연지사지만 특히 신학책이 팔리지 않는다. 영혼을 자극하고 일깨우는 신학의 정체현상이 오래되었다. 20세기 중반을 지나며 현대신학이 다양한 이론으로 풍미했던 신학의 열정은 어디에도 없다.
중세교회는 암흑시대였다. 인간의 이성은 교회의 권위에 밀려 제 위치를 찾지 못했고 속권과 결탁된 교회는 교회의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분별력이 없었다. 교회는 더 이상 성경 닮은 교회가 아니었다. 차라리 교회가 타락의 온상으로까지 떨어졌다. 신학은 속권과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교황권을 강화하는 쪽으로 발달하였다. 성경을 벗어난 교회가 새로운 활로를 찾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은 교회 안에서가 아니라 교회바깥에서 시작되었다. 무리한 십자군 원정의 거듭된 실패는 교회의 힘을 많이 약화시켜 중세봉건사회의 붕괴를 예고하는 일들이 이어졌다. 사회를 이끄는 주도 계급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그것은 마침내 모든 변화와 혁명의 기반구축에 들어갔다. 서서히 그러나 도도하게 인간 의식의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계몽주의 합리주의 이성주의의가 등장하였다.
16C 종교개혁의 배후에는 이러한 시대 변화가 있었다. 본연의 자리를 이탈된 교회에 대한 반성으로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정통주의가 일어났다. 정통주의는 더욱 세차게 밀려온 자율과 이성의 바람에 밀려나고 그 자리에 자유주의 신학이 범람하더니 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으로 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신학이 등장하였으나 바르트이후 신학은 고삐 풀린 망아지와 다름없이 인간의 이성이 자율의 바람을 타고 비행한 시기였다. 신대륙에는 청교도의 유산과 인간의 자율이라는 두 가지 흐름이 함께 자랐다. 다행히 한국교회에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사들이 앞뒤를 다투며 들어옴으로 이 땅에 경건하고도 건전한 신앙의 모판이 형성되었다. 한반도에 복음이 들어온 시기를 전후하여 구미(歐美)는 슈라이에르마흐를 비롯하여 성경신학과 조직신학은 신진 신학자들의 대거 등장으로 현대신학에 불이 붙었다. 자유롭고 다양한 성경해석의 여파는 한동안 신약신학계를 중심으로 예수전(傳)이 신학을 이끌더니 2차 대전의 종전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유럽학자들에 의해 유럽과 미국에서 신학의 전성기가 있었다. 폴 틸리히의 '문화신학' 로빈슨의 '신에게 솔직히' 알타이저의 '신의 죽음의 신학' 밴뷰런의 '복음의 세속적 의미' 외에도 계속하여 정치 참여와 남미적 억압상태를 교회의 주요한 과제로 파악한 해방신학 정치신학이 있었고, 인도를 중심으로 다종교 이해에 관한 전위적 신학들도 쏟아졌다. 그사이 한국교회에도 민중신학, 토착화신학의 세찬 바람이 지나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시대의 결과 교회는 쇠퇴일로의 길을 걷고 있다. 교회와 무관한, 신학의 역할이 무엇인지 조차 모른 채 교회를 해롭게 하는 신학이 범람한 결과였다.
시무언 김기동목사도 충청도 외진 곳에서 이 큰 신앙흐름의 한 자락에서 복음을 받아들였고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한 인간의 삶이 그의 유전자적 자질과 그의 품성, 성장배경 그리고 개인적 노력 등의 합산물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특별히 시무언은 그의 인물됨과 성공의 규모가 커서인지 그의 현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헤아리는 것이 쉽지 않다. 그에게는 그가 자연인으로 가지고 있었던 품성에 더하여 크고 놀라운 영적체험이 있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그 놀라운 은혜는 그에게 주어진 사명의 크기가 어떠한지를 가늠해보게 한다. 그는 그날 귀신 쫓아 죽은자를 살림으로 그의 험난한 사역을 시작하였다.
간략한 소개이나 이 모든 것 위에 그의 신학이 성립되었다. 그의 신학이 교회를 새롭게 할 수 있다는 확신은 그는 책상위의 학자가 아니라 큰 교회부흥의 역사를 이끌었던 강단의 메신저, 심령부흥사로서의 학자인 것도 한 이유이다.
베뢰아를 조금이라도 접한 사람이라면 베뢰아는 진지한 신학의 문제임을 파악할 수 있다. 시무언은 쉽게 다룰 수 있는 신학자가 아니다. 그에 대한 바른 이해가 진행될 수만 있다면 16C 종교개혁 이상의 큰 신앙과 신학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종교개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있었던 루터, 칼뱅, 쯔빙글리 그리고 이후의 웨슬레 형제 외에 시무언만큼 신학과 목회를 동시에 이끌고 성공한 이는 기독교 역사에 유례를 찾기 어렵다. 시무언신학은 교회와 구원받은 성도의 심령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한다. 교회의 인도자인 목사의 심령을 변화시켜 설교에 힘이 실리게 하고 교회를 성장시키고 교회를 출입하는 성도들의 삶을 변화시켜 교회의 사람이 되게 한다.
그의 신학을 성경 원래의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 시무언신학은 한국을 넘어 세계를 향해 기독교 새로운 중흥의 시대를 이끌 수 있을 것이다.

③신학의 새로운 흐름
신학이 신론, 기독론, 교회론 하던 시대는 진작 지나갔다. 신학은 신학자들만의 전유물이지 않고, 재미없는 딱딱한 도식으로 남아있지도 않다. 베뢰아가 세계신학의 큰 흐름에 편승할 수 있는 것은 베뢰아는 유연한 서술양식으로 괜히 현학스러워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일조한다. 마치 20C의 개명과 함께 L.A. 아주사 빈민가에서 시작된 신학생들의 기도모임을 통해 오늘의 오순절운동이 시작되었듯이 시무언신학은 신앙의 연장에서 영적세계와 성경에 대한 보다 투명하고 구체적 설명을 통해 새로운 신학의 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 세계신학의 큰 줄기는 여전히 논리적 현학적 신학에 우호적인 것이 사실이지만 이도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화려한 신학 술어의 구사와 논리 셩경원어와의 싸움은 시무언과 뜻을 같이 하는 후학들의 몫일 수도 있어 걱정할 일이 못된다. 문제는 교회를 병들게 하고 힘을 빼게 하는 신학에서 교회를 근본으로부터 새롭게 하는 신학의 가능성이 시무언신학에 충분하다는 사실이다. 신앙생활과 직결된 신학, 지식이 깊으면 깊은 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흥미진지하게 몰입할 수 있는 신학이다. 개인의 영적 호기심을 일깨워 영혼을 살리고, 교회를 부흥시키는 신학이다. 신학도 얼마든지 재미있구나 하고 신학에 대한 시각을 바꿔놓을 수 있는 신학이다.

5.시무언신학과 베뢰아운동

①둘의 상관관계
시무언에게 있어 신학은 신앙과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 번 전술(前述)하였다. 그의 신학은 그의 신앙과 헌신과 강단과 목회로부터 나왔다. 이런 그의 신학을 신앙과 하나로 묶어 베뢰아운동이라 한다. 그런 의미 시무언신학과 베뢰아운동은 동전의 양면 그 이상이다. 만일 이렇게 시무언신학이 기독교신학과 신앙의 중흥에 필요하고도 대단하고 명쾌하고 학문적 소양이 충분하다면 베뢰아운동은 왕성하게 확장되어야 했다. 베뢰아운동의 출발연도를 어떻게 보든 그 사이 흘러 보낸 시간이 짧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베뢰아운동은 한국교회를 넘어 세계도처로 확산 증거되어야 맞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 거리가 멀다. 얼마든지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는 것과는 또 다르게 오히려 위축되고 열기가 식어가는 것 같은 조짐마저 있다. 원조인 서울성락교회의 역할과 열심은 그렇다 치더라도 과연 애초의 열심 같은 열심이 지속되고 있는지 회의적이다.
베뢰아운동은 시무언의 신학을 기초하여 그 말씀과 이론에 감동되고 동의하는 개인과 교회가 헌신을 다짐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결사체이다. 시무언신학이 견고하면 할수록 시련에도 불구하고 베뢰아운동은 탄력을 받을 것이다. 당연히 시무언의 신학에 심각한 오류나 오해가 있으면 베뢰아운동은 더 이상 동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역으로 시무언신학 역시 베뢰아운동이 확장되고 활성화 될수록 힘을 받게 될 것도 사실이다. 베뢰아운동이 곤두박질하면 시무언신학은 기댈 곳이 없다. 이렇게 둘은 공생관계의 하나이다. 서로 돕고 가야한다. 그렇게 되어야 주의 나라가 확장될 수 있다. 신학과 운동이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분위기 조성과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
② 베뢰아운동을 통한 신학지평의 확장
시무언신학의 장래는 베뢰아운동과 직결되어 있다 고 했다. 왕성한 교회운동이 없는 신학은 몇몇 유관 학자들의 심심풀이로 끝나고 만다. 문제는 시무언신학에 대한 베뢰아사람들의 확신이자 소망이다. 베뢰아사람들은 시무언이 성경을 바로 보았다 생각한다. 누구보다도 바로 이해했고 여기서 '하나님의 의도'가 분명히 드러났다고 확신한다. 이런 확신과 감동이 베뢰아에 헌신하게 했다. 그리고 헌신의 결과를 통해 하나님의 의도가 세상에 밝히 드러나 대적자는 심판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속량 받은 성도들은 원수에게서 해방되어 온전한 삶에 이르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기대 같지 않아 위기에 몰려있는 것이다 이로 하나님의 의도는 더디 세상에 알려지고 그 사이 악한 영적 존재들이 활개치고 그 만큼 성도들은 속고 상하고 교회도 같은 지경에 놓이게 되었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도래되기를 바라고 그 진행과정이 베뢰아운동이라 확신 한다면 시무언신학에 관심을 가지고 신학의 융기와 발전을 위하여 신학 각 분야에서 충성된 사명자들이 나와야 한다. 교회도 신학인재 양성을 위해 장기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주를 사랑하며 주의 뜻이 이 땅에 왕성하게 증거되기를 갈망한다면 또 그것이 신학적 발전을 통해 가능할 것이 확실하다면 베뢰아운동의 부흥, 발전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이 시점에서 베뢰아 대학원대학교의 위상을 묻는다. 신학과 신앙, 신앙운동은 별개의 세계가 아니다. 시무언의 신앙이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펼쳐지기 위해서는 베뢰아운동이 왕성하게 일어나야 하고 베뢰아운동의 발전은 학교의 위상과 직결된다는 지적이다. 학교발전을 위해서라도 학교가 앞장서 베뢰아운동을 실천하고 지원해야 한다.

6.시무언신학의 문제점과 해법
필자가 졸고를 통하여 시무언신학을 조명하며 일관되게 전제로 하는 것이 둘 있다. 첫째, 신학은 머리 좋고 어려운 말과 논리를 전개하는 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필자의 주장만도 아니고 상식이요 숨은 상식에의 깨달음이다. 기독교 교의(조직)신학에 비판 없이 젖어 그것을 정상으로 전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학이전의 성경은 그렇게 되어있지 않다. 성경은 이야기이자 서술이다. 구약은 역사적 사실들을 유대신앙의 시각으로 서술하고 신약은 예수의 하신 일들과 말씀들을 주변환경과 더불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구별될 뿐 교리서나 신학서와는 거리가 멀다. 신학은 교리도 사전도 어려운 전문용어의 구사도 아닌 말하기 쉽고 듣기 쉬운 서술이어야 한다. 둘째 신학은 신앙의 산물이다 는 것이다. 복잡하고 어렵게 전개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 하나이고 그것은 신앙 삶의 결과물이다 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①베뢰아신학에 대한 공증의 필요
시무언신학이 베뢰아교회연합이라는 교단신학의 경계를 넘어 한국교회에 안착하고 세계교회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고 주님의 교회가 이 땅에 뻗어가는 일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베뢰아운동을 통해 외적 확장을 키워감과 동시에 기독교신학의 공증이 필요하다. 복음의 진전을 진심으로 기대한다면 독야청정해서 될 일이 아니다. ⅰ.'하나님의 의도'로 표방되어지는 시무언신학의 골격이 신학토론의 장에 등장해야 한다. ‘하나님의 의도’가 베뢰아신학의 기초인 만큼 이에 대한 공개적이고 심도 깊은 토론이 조직신학적 및 성경신학적으로 객관적 검증이 필요하다. 애초 ‘하나님의 의도’에서 중도에 강세점이 이동하면서 다소 혼선이 있었다. 경로에 대한 더 분명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베뢰아 조직신학이라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의도’가 영향력 있는 신학으로 안착할 수 있다. ⅱ.영의 문제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다. 시무언은 어떤 신학자들보다도 구체적이고 논리 정연하게 자기 입장을 밝혔다. 시무언 이전에 이렇게 시초부터 끝까지 일관성 있게 영의 문제를 규명한 이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는 영의 문제와 관련하여 단편적으로 언급하는데 그치지 않고 기독교신학의 오랜 난제인 죄의 근원과 관련하여 타락한 천사를 언급한다. 타락한 천사와 천사의 의지를 천사라는 종의 신분적 의지와 연관 지으므로 그동안 이해가 어려웠던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타락사이 보이지 않던 많은 다리들을 복원했다. 타락한 천사에 대한 설명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일뿐 아니라 설득력이 충분하다. 영적존재와 죄의 문제는 창세기 1장 이전의 문제였음을 밝힘으로 창세기 1장의 태초와 요한복음 1장의 태초가 어떻게 다른 것도 밝혀졌다. 영적존재의 출현과 타락 하나님의 아들의 세상강림은 어떤 관계에 있는지도 보다 자연스럽게 규명되었다. 이렇게 악의 문제와 악한 영적 존재의 문제가 선명하게 밝혀지면서 신학의 난제인 종말론과 악한 영적 존재의 최후에 대하여도 분명한 이론을 가지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 악한 영적 존재가 제거되면 좋은 세상이 될 텐데 왜 세상은 종말을 맞이할까? 이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에 도전한 마귀라고도 하는 사단을 멸하기 위하여 지으신 임시방편이요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나라가 아닌 영에 속한 나라라는 것이다. 최후 마귀를 멸하심으로 세상은 종말을 맞고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주가 예비하신 영의 새 세상으로 옮겨질 것이다 는 것이다. ⅲ.일찍부터 교계의 화제가 되고 있는 귀신론 마귀론도 그렇다. 미처 이해가 부족한 이들을 비난하고 불평만 늘어놓을 일이 아니다. 불신자들을 찾아 전도하듯 교회내 전파를 위하여 '오라, 우리가 서로 토론하자'해야 한다. 시무언이 이미 여러 차례 밝힌 바와 같이 미처 고려하지 못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지 수정할 용의가 있음을 또 밝히고 한국교회의 유익을 위해 기꺼이 양보하고 섬기겠다는 전향적 자세를 보여야 한다.
이쪽의 토의제안에 대하여 저쪽에서 응하지 않는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응하지 않는다고 저쪽에 있는 공만 탓할 것이 아니라 이 또한 주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필요한 과정임을 알아 저쪽의 망설임을 해소할 선도적이고 주도적 자세가 요청된다. 이렇게 되어야 시무언신학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물론 베뢰아운동도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저쪽의 오해와 텃세가 너무 강한 탓에 많이 수세적이었다. 시무언의 신학이 세상에 밝히 소개되어 질수 있으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
②신학의 진정성문제
신학은 말의 문제 지식의 문제 현학의 문제 이전 삶의 문제이다. 신학의 진정성은 삶이다. 그것은 행동하는 신앙이자 증거가 있는 신앙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로 죽은 것이다. 시무언이 초기사역에서 그를 광야로 몰아넣듯이 성령에 이끌려 역사한 것도 그에게는 시골기독쳥년의 진실과 열정에 더하여 그 전파되는 말씀과 가르침에 증거가 있었던 까닭이다. 그것은 회중을 움직이는 힘이었다. 그의 설교는 뜨거웠으며 강열했고 그가 전하는 말씀은 어려운 용어 없이도 성경에 능통했다. 성경을 가르치고 이해시키고 전하는데 어려운 용어가 필요하지 않았다. 케류그마(복음 선포)의 대부분은 여기까지다.
실은 이것도 대단하다. 많은 이들이 성경의 맥조차 잡지 못한 채 좌충우돌하고 믿음도 열정도 없는 것을 감안하면 훌륭한 것이다. 그러나 시무언이 전하는 말씀이 신학이 되기까지 그에게는 그만이 갖는 절제되고 헌신된 거대한 삶이 있었고 결정적으로 그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숱한 증거가 있었다. 그가 어려운 한 가정을 얻기 위해 시신을 엎고 오다 하수구에 처박히기도 했다는 이야기, 문둥병자를 고치기 위해 고름을 빨고 돌아오는 길에 잇몸사이에 고름이 있더라는 이야기는 듣는 이가 심령을 떨며 그를 따르도록 움직였던 전설이다. 오늘 시무언신학은 이 같은 시무언의 이전 삶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그것이 바라는 바와 같은 세계화에 성공하기에는 결정적으로 2%가 부족하다. 먼저 1%는 감동스토리다. 세계화의 여망만큼 세계를 감동시키는 스토리가 시무언 이후에도 계속되어야 한다. 예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 하셨다. 유감스럽게도 세상은 베뢰아사람 안에 있는 진실을 보지 못하고 베뢰아사람의 겉모양만 본다. 겉모양의 콘텐츠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를 두고 기독교신앙의 본질은 윤리나 도덕이 아니다 하면 곤란하다. 사람이 믿음으로 구원받지 인간의 의로 구원 받는 것이냐 하면 더 이상 이야기가 안 된다. 일찍 예수께서 네 이웃이 누구니이까 하는 질문은 그 이웃이 누구든지 나랑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는 질문과 다를 바 없음을 지적하셨다. 이 모두는 복음의 빛을 가리는 못난 자신에 대한 핑계요 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다. 신학이 참 신학이 되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 축적되어 농하게 나타나는 감동 스토리가 필수적이다. 이는 한국교회와의 관계에서 더 절실하다. 베뢰아가 중요하고 시무언신학이 대단하고 귀한 것이라면 그 이유 때문에 베뢰아사람들은 더 절제하고 단정하고 손해보고 한국교회의 덕을 위하여 더 많이 참고 참여를 시도하고 거절당하면 또 시도하고 연합에의 공을 들여야 했다. 곧 신학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고집스럽게 내 신학이 옳다고 외치는 것 말고 헌신과 섬김, 양보와 참여의 지평을 더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삶은 그 자체로 힘이요 설득력이요 공감대다. 그것은 어떤 글과 논리보다도 힘이 있다. 여기서 마음이 조급하면 조화(造花)가 나온다. 조화로는 안 된다. 조화는 향기가 없다. 베뢰아가 그렇게 대단하다면 그만큼의 향기가 있어야 한다. 인간세상에서도 삶의 진정성이 높은 사람이 남긴 영향력은 대단하다. 유감스럽게도 타종교 지도자들 중에 신(信) 불신(不信)을 가리지 않고 큰 사랑과 존경을 받고 영향력을 끼치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생전에 큰일을 하였으나 사후에 자기 종교를 위해 더 큰 공로를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성경도 결론은 변화된 삶이다. 바울서신은 먼저 구원의 이론에 대하여 그리고 교회생활에 이어 결국 어떤 삶이어야 할까를 아주 세세히 언급하고 설득하고 있다. 성경을 결산하는 요한계시록에는 ‘네 행한 대로 갚으리라’는 말씀이 여러 차례 거듭 나온다. 말씀(진리)은 그렇게 형상화 되어야 한다. 신학이기에 더욱 그렇다. 생각이 성숙하여 말이 되고 말이 글이 되었다. 신학이라고 해서 별것 아니다. 신(神)에 대하여, 신과 관련하여, 신과 인간의 문제를 정리해 놓은 것이 신학이다. 신학이 신학이기 위해서 말씀이 육신이 되듯 신학은 삶으로 형상화 되어야 한다. 성경의 진정한 통전성은 하늘의 은혜를 입은 분량만큼 섬기며 사랑하는 삶이다.
정치 지도자든 누구든 심지어 무법하고 무자비한 독재권력자까지도 측근들에게는 자기 삶의 진정성을 보여야 사람을 움직이고 조직도 관리할 수 있다. 하물며 신학의 언어들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진정성이 충분하여야 할지는 두말의 여지가 없다. 시무언이 해외순방중 어떤 계기로 ‘베뢰아운동’ 이라는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 용어를 포기하고 "앞으로 '베뢰아실천'이라고 하자" 하여 주위를 당황하게 한 것이 같은 이야기다. 실천적 삶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 실천은 성경 많이 읽고, 기도 많이 하고, 헌금 많이 하고, 전도에 열중하고, 교회봉사나 하는 교회안의 실천만이 아니다. 실천의 폭을 넓혀 개인적으로도 높은 수준의 윤리적이고 희생적 삶을 살고 한국교회를 껴안고 사랑하고 연대하고 섬겨야 한다. 이것이 진정성이다.
신학은 말의 이론이다. 그 이론은 삶과 조화를 이뤄야 진정한 형태를 가지게 된다. 신학은 이렇게 하여 비로소 진짜 신학이 된다. 시무언신학이 참 신학으로 확증되기 위해 최고의 지성과 교양과 헌신과 사랑이 절실히 요구된다. 시무언신학의 해법은 베뢰아윤리학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베뢰아윤리학의 부재 혹 공백이 끼친 영향은 부메랑이 되어 베뢰아로 돌아왔다. 이제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복음 없는 윤리학이 아니라 복음 있는 윤리학의 계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현대신학 특별히 일부 보수신학에서 진보신학에서는 통상 윤리학을 실천신학으로 분류하는 것에 비해 이론신학의 영역으로 분류하는 것에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조직신학(이론신학)과 윤리학은 별개가 아니다.
③21세기 베뢰아 경건운동
베뢰아운동이 왜 이렇게 수세에 몰렸을까. 20년이 넘도록 '너 때문에'라고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할까. 오랜 세월 남 탓만 하는 것은 신사적이지 않을뿐더러 귀한 것을 담지하고 있는 공동체로서 무책임하기까지 하다. 그것이 어떤 이유든 연구 검토하여 극복되고 해결되었어야 옳다. 시무언신학의 중흥을 위해 베뢰아사람이 먼저 변화되어야 한다. 초기 20수년전에는 주위를 탓하고 원망할 수 있었으나 계속해서 그럴 수는 없다. 이점 시무언도 예외가 아니다. 시무언이 솔선수범 무한책임을 져야 해법이 나올 수 있다. 시무언이 문제해결의 무거운 짐을 다 져야한다 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시무언을 따르는 사람들 중에는 시무언의 신학과 신앙에 감동되어 죽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숱하다고 자평한다. 믿는바 확신을 위하여 죽을 수 있는 환경과 명분은 마련해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주를 위한 장렬한 죽음의 장이다.
그런 의미 시무언신학의 중흥을 위해 21C 베뢰아형 경건운동을 제안한다. 2011년 새해 첫 주 대통령이 출석하는 교회에서 부목사가 담임목사를 폭행했다는 보도가 크게 났다. 이 글이 쓰이는 같은 해 3월말 오늘자에는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한기총 대표회장이 선임과정에 문제가 있어 직무정지 가처분결정이 되었다는 보도가 났다. 이게 모두 우연일까. 그렇게 넘어가서는 안 된다. 한국교회에 고장이 난 것이다. 신학에 고장이 나고, 믿음에 고장이 나고, 믿음의 주(主)께 고장이 난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 교인들에게 그리고 베뢰아운동과 시무언 신학의 쇠퇴와 관련하여 우리 안에 고장이 난 것이다. 이를 바꾸지 않고 신학의 우수성만을 역설하는 것은 아주 잘못되었다.
성경에는 사도행전적 성장과 부흥도 있지만 다수에 대하여 꽤 비판적이다. 생명의 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했다. 베뢰아공동체가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를 향해 소수로 자처할 수 있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다수이기를 포기할 수 있는 공감대가 필요하다. 단 무신(無信)한 세대에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경건한 소수여야 한다. 비록 숫자는 적지만 무시할 수 없는 경건한 공동체로 성공한 사례가 세계적으로 여럿 있다. 기독교권이든 비 기독교권이든 머리수와 상관없이 건전한 영향력을 가진 공동체라면 그 자체로 존재감이 충분할 것이다. 본인은 베뢰아공동체야말로 세계교회 안의 경건하고 멋진 소수 공동체이면 적격이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④서울성락교회
시무언의 활동무대가 세계여야 한다는 것이 베뢰아사람들의 한결같은 꿈이다. 그를 한국에 가두어 놓는 것은 죄악이라 싶다. 서울성락교회의 역할을 묻는 자리이다. 서울성락교회는 시무언의 신학과 신앙이 세계화 할 수 있는 선봉에 서야 한다. 이것이 서울성락교회에 주어진 사명이다. 한 예로 베뢰아대학원대학교 재학생이든 졸업생이든 서울성락교회에 묶여있다는 현실은 신학의 발전을 도모하는 자리에서 신학적 소양을 펼칠 수 있는 인재가 한 곳에 묶여 있는 안타까움 말고도 지역교회의 정서상 지역교회 사역자로서 자유로운 사유와 토론을 통해 신학적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까하는 염려가 있다. 자칫하면 시무언신학에 대한 무조건적 찬양과 동조일색으로 갈 위기가 있다. 지역교회 안에서 사역의 현장과 학문으로서의 신학 사이에 차가 있을 수 있음을 용납받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신학은 왜곡 정체의 길을 갈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긍정과 부정, 찬성과 반대가 절제와 용납이라는 큰 틀에서 자유롭게 개진되어야 신학이 발전할 수 있다. 이는 베대원과 서울성락교회의 관계에 대한 더 깊은 연구를 통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교수들이 자유롭고도 충분하게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여기서 목회현장의 소리가 신학에 반영되어야 하는 측면과 소속된 교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충분히 비판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풍토의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역사가 많은 사례로 보여주듯 이기적 개교회주의는 하나님의 일을 지연시킬 위험성이 크다. 교회의 위기에 개교회를 부흥시키려 혈안이었던 이기적 개교회주의가 일조하였다는 것은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다. 시무언신학에 대한 애정과 하나님 나라 확장이 동일체라면 베뢰아운동에 대한 시각도 함께 더 확대되어야 한다. 이점 서울성락교회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큰 것이 사실이다. 서울성락교회는 시무언의 신앙과 신학이 세계로 뻗어가기 위한 출발점이다. 교회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한 열린 토의가 요구되는 부분이다.
결론적으로 서울성락교회는 시무언의 신학에 대하여 독선과 아집을 떨치고 열린 광장으로 가야 한다. 서울성락교회는 뜻을 같이 하는 교회를 섬기고 한국교회를 섬김으로 사명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이다.

나가는 말
시무언신학은 정망 대단하고 깊고 위대하다. 이를 세상에 밝힌 신앙인으로서의 시무언은 정말 대단하고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요 목회자다. 그는 목회와 신학의 큰 스승이다. 이 사실을 세상에 밝혀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뜻이 하늘에서 이뤄짐같이 땅에서도 이뤄지는 것이 베뢰아사람들의 이상이다. 이 이상은 시무언신학의 진정성을 보여 줄 수 있는 베뢰아사람으로라야 가능하다. 진주를 개에게 주지 말라 하신 말씀같이 귀한 것을 받았으면 그 귀한 것을 담지한 사람의 삶이 요구되어진다. 베뢰아사람 모두에게 주어진 십자가이다. ‘누구든지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자는 얻으리라’하셨다(마16:25). 모든 것을 포기해야 이길 수 있다. 가진 것을 포기해야 해결의 길이 보인다. 지나친 우월주의는 폐쇄주의의 또 다른 모습이다. 복음을 듣고 깨달은 것 역시 내 몫이 아니라 주워 먹은 것이다. 자랑 할 이유가 하등 없다. 도리어 받은바 말씀으로 이해 섬겨야 한다. 신학의 문제는 곧 윤리학의 문제이다. 윤리학의 공백, 부재(不在)로는 신학의 과업을 이룰 수 없다. 대단한 신학은 더 대단한 수준의 윤리적 삶을 요구받는다. 신학에 몰입하면서 자신을 볼 수 있는 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귀결이다.(끝) SOLI DEO GLO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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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 서울성락교회 왜 개혁을 논하는가?  이동훈201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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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2 소천(召天), 입적(入寂), 선종(善終)  이동훈2009.03.24.
481 사이코패스  이동훈2009.03.03.
479 이단(異端) 이야기Ⅰ<신학산책39>  이동훈2009.02.28.
477 세 번의 성전건축 <선교센터 건축 축사>  이동훈2009.02.28.
467 총회장! <청파 묵상>  이동훈2009.02.17.
465 베뢰아대학원대학교 졸업식 축사  이동훈2009.02.13.
464 베뢰아아카데미 수료식 축사  이동훈2009.02.08.
463 목회를 위한 신학 제언  이동훈2009.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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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0 세계적 금융위기와 교회 <사설>  이동훈2008.12.16.
459 사랑의 온도계 <사설>  이동훈2008.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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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4 시무언이후시대의 서막 <사설>  이동훈2008.11.19.
453 체인지(CHANGE) <사설>  이동훈2008.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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