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13.
 자살풍조, 이대로 둬선 안 된다 <사설>
글쓴이: 이동훈  날짜: 2008.10.07. 09:41:22   글쓴이IP: 118.218.86.92
지난 주 톱 탤런트 최진실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날 CF촬영을 끝낸 동료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늦게 돌아와 자신의 방 화장실에서 목을 매달아 죽었다. 억척이로 소문나고 이혼이후에도 재기에 열을 올리며 끔찍이도 두 아이들을 사랑하더니 이 모두를 다 없던 일로 하고 세상을 포기하고 말았다. 이로 미국 월가의 금융위기로부터 시작된 세계경제의 공황상태에 더하여 우리사회가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졌다. 한 주간 내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듯 침울하기 그지없다.
이웃 일본이 전통적으로 워낙 자살률이 높다보니 상대적으로 더 건전해 보인 점이 없지 않지만 원래 우리는 자살에 익숙한 나라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도 한참 옛말이 되었다. 최근 수년 동안 OECD국가 중 일본을 제치고 우리나라가 최고의 자살률을 보이고 있다.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감소를 걱정하기에 앞서 산 사람이라도 살아갈 수 있도록 대책을 세워야 할 지경에 놓인 것이다. 왜 나라가 이렇게 까지 심리적, 정서적,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지게 되었을까? 그러나 어떤 이유로도 자살은 이해되고 용납되어서 안 될 일이다. 이를 몇 가지로 정리해 본다.
첫째, 생명은 원래 하나님의 것이다. 생명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 내게 붙어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내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생명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대한 도전이자 생명을 주신 분에 대한 책임을 망각한 것이다. 죽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귀에 들어올 리 없지만 원래는 그렇다. 살아 있을 때 이를 분명히 가르쳐 인식되어 있어야 한다.
둘째, 자살은 무책임의 극치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 난 것은 내 뜻도 아니거니와 살만큼 살아야 한다는 것은 창조의 질서다. 내가 있기까지 나를 세상에 있게 하신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시고, 형제간도 있고, 사랑과 우정을 나누며 살아온 친구도 있고 함께 일해 왔던 동료 이웃들도 있다. 이들은 어쩌란 말인가. 자살은 그래도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무자비한 폭행이요 배반이다. 아니어도 이건 정말 아니다.
셋째, 때가되면 누구라도 죽는다. 성경에도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라 했다. 스스로 서두를 일이 아니다. 세상에 찾아온 순서가 있는 것 같이 떠나야할 때가 있다. 뻔히 자연스럽게 찾아올 일을 재촉할 이유가 없다. 심지어 뇌사판정을 받아도 이를 사람이 임의로 손쓸 수 없다는 것이 아직까지의 중론이다. 어떤 이는 행복하게 어떤 이는 그보다 좀 못하게, 어떤 이는 넉넉하게 어떤 이는 좀 부족하더라도 그래도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래서 끝까지 살아야 한다. 누구나 힘들다. 살아야 하는 것이 살아있는 사람의 권리이자 의무요 책임이다. 이를 기피하고 포기하는 것은 사람에게 주어진 권리가 아니다. 이는 모두 원론적 얘기다. 죽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별로 의미 없는 말이다.
따라서 사회적으로나 정부차원에서도 할 바가 없지 않다. ‘제 목숨 부지하는 것 각각 다 자기 몫이다. 살기 싫어 죽는 것을 누가 어찌할 수 있겠는가?’ 하면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경제 경제 하지만 그것이 꼭 경제적인 것만이 아님은 너무도 자명하다. 경찰이 필요하고 군대가 필요하듯 스스로 홀로 살아가기 힘든 이들을 보살피고 보호하고 돌아봐야 할 필요가 국가에 있다. 이참 국가가 자살방지법이든 뭐든 제도적, 법적 장치를 마련하여 미연에 계몽도 하고 예방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끝으로 특별히 그것이 사람의 목숨과 관련된 것이기에 또 그것이 희망과 의욕과 삶의 의미와 관련된 것이기에 교회가 이렇게 많은데 하고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교회가 많은데도 신명나게 살고 싶은 사회, 희망과 의욕과 사랑과 보살핌이 가득한 세상을 조성하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였다는 것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사람을 찾아 사람이 있는 세상에 예수께서 오셨음을 생각하면, 사람이 살 수 없고 사람이 살기 싫은 세상 사람이 없는 세상에 교회가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을까. 교회가 사람이 살고 싶은 세상이 되도록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도 오늘의 절망을 극복할 수 있는 한 방편이 되리라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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