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0. 21.
 예수, 죽으러 오심 <사설>
글쓴이: 이동훈  날짜: 2008.12.23. 16:13:03   글쓴이IP: 58.235.179.56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이시니라......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6-18)
베드로의 신앙고백 같이 2,000여년 전 베들레헴의 한 구유에 나신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는 영원 전 말씀으로 하나님과 함께 계시던 하나님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으시고 우리 가운데 오셨다. 이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날이 성탄절이다. 성탄절의 유래, 기원, 의미 등에 대하여 설들이 많으나 괜한 논쟁이다. 지금도 동, 서 교회가 성탄절의 시기와 관련하여 견해를 달리 하고 있지만 별 의미없는 일이다. 성탄절에 숨어든 불순한 것을 찾아 이를 뒤집는다고 더 경건한 것도 의로운 것도 아니요 제대로 알지 못함을 인하여 그대로 남겨 두었다고 죽을 일도 아니다. 이는 어느 날 승복하지 않을 수 없는 이론과 근거가 확증된다면 그때 재론해 도 충분하다. 역사적 교회는 지금까지의 많은 불합리와 충분히 납득할 수 없는 이론에도 불구하고 육체를 입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오랫동안 이렇게 기억해 왔다. 그가 언제 오셨느냐는 것이 덜 중요해서가 아니라 그가 육체로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 진짜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동등하신 하나님의 형상이신 이가 인자로 세상에 오심은 죽으시고자 하심이다. 성육신成肉身)의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의미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시고자 사람과 같은 육체를 입으셨다는 사실이다. 곧 성육신과 그리스도의 고난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인자로 오신 이는 아버지의 거룩하신 뜻을 따라 친히 자기 일을 다 완수하시고 마침내 십자가에 죽으셨다. 세상은 그를 죽였다 했으나, 살 권세도 있으시고 죽으실 권세도 있으신 그는 자기에게 있는 죽으실 권세로 죽으시고 그로 영광을 받으셨다. 주는 자기 몫의 십자가를 위해 성육하시고 성육의 목적 그대로 죽음에 이르신 것이다. 그가 성육을 위해 동정녀의 몸에서 잉태되심이 곧 죽음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소박하면서도 장엄한 성탄절의 고전적 메시지는 여기서 다시 확인된다. 사정을 바로 알아야 한다. 그가 세상에 오심은 죽으시기 위함이다 하여 ‘와! 그는 죽으러 오셨다. 마침내 그가 죽으셨다. 얼씨구!’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드리고자 자기 뜻대로 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일관하셨다. 영원하신 이가 인자의 모습으로 축소되셔서 모욕과 천히 여김을 받으시고 매 맞으시고 마침내 피를 다 쏟으시고 죽으셨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이 성육신이었다.
성탄절은 하나님의 아들이 고난 받으시기 위해 육체 입으신 것을 인하여 감사와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날이다. 그리하여 이날은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자신을 돌아보는 날이다. 이날은 그가 겸손히 자신을 낮추심같이 스스로를 낮추고, 그가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아니 하시고 섬기려 하심같이 섬기기를 자원하며, 그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 같이 자기 몫의 작은 십자가를 두고 아멘! 하는 날이다. 그가 세상에 자기를 내어놓으심 같이 우리도 주와 주님의 교회를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날이다.
성탄절을 목전에 둔 주일 새벽임에도 서울 모처에서 ○○○○교회라는 번듯한 교회이름이 부끄럽도록 교회가 두패로 나뉘어 싸움질이 벌어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세상에 교회를 세우신 주님께서, 친히 성육하심으로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신 그가 오는 한국교회를 어찌 하실지 두렵기 그지없다. 교회여, 교회의 머리되신 이는 하나님과 동등하심에도 성육하사 죽으심으로 자기 일을 다 이루셨다. 교회도 그와 함께 죽어야 하리라.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성탄의 참 뜻을 깨닫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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