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초 신학산책」이란 본 항에서의 ‘신학’이란 ‘신학적 담론’의 성격일 수밖에 없을 것을 언급한 바 있다. 물론 ‘신학담론’이라 해서 본격적 신학과 차별화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의미 담론의 성격을 띠는 것이 더 편하고 폭넓게 앞뒤좌우 종횡무진으로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것을 감안하면 서구의 논리와 전개에 길들여 있는 ‘기존의 신학’보다 더 ‘신학’에 가까울 수도 있다. 어쨌든 본 항의 졸고를 통해서는 신학사전이나 신학책에서 찾을 수 있는 신학용어 해설 성격의 ‘신학’보다는 신학이라는 세계에서 한번쯤 거르고 가야 할 필요가 있는 그게 더 정상적이고 편한 주제들을 같이 둘러 앉아 ‘이야기’ 해보려는 것임을 다시 밝혀둔다. 오늘의 주제는 「신본주의와 인본주의」이다. 놀라운 사실은-사실 필자는 많이 놀랐다- ‘신본주의’니 ‘인본주의’니 하고 정착된 신학용어는 없다는 사실이다. 한국기독교 120년의 기독교문서사(基督敎文書史)에서 최대의 역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1981년 기독교문사에서 초판 발행한 ‘기독교대백과사전’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전부 16권으로 한권이 1300페이지 분량으로 당시 정가만 해도 권당 무려 4만원에 달했다. 사전 한질이 20년 더 전에 64만원이었던 셈이다. 아무튼 대단한 작업이었다. 동 사전은 처음부터 기독교신학전체를 아우른다는 자세로 진보와 보수 두 견해를 다 수록하므로 기독교신학에 대하여는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방대한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예의 바로 이 기독교대백과 사전에는 ‘신본주의’ ‘인본주의’ 하는 항목이 없다. 물론 흔히 인본주의를 대신하는 휴머니즘이나 헬레니즘이란 단어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기는 하나 이 둘은 졸고를 통해 이야기 하려는 인본주의하고는 다른 성격의 용어임을 관심 있는 이들은 단박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헬레니즘’ 에 대하여 살펴보자. 헬레니즘은 희랍의 정신, 특성, 또는 문화나 고대희랍인들의 고등문화나 입문주의를 가리키며 현대학자들에 있어서는 희랍문화에 대한 열심이나 헌신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날 역사가들에게 헬레니즘은 B. C324-325년 사이에 일어난 알렉산더 정복의 결과로 근동을 포함한 지중해 세계에 널리 퍼져있던 문명이라는 좀 더 좁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계속해서 휴머니즘도 살펴보자. 휴머니즘은 14C후반 이태리에서 기원하여 유럽의 다른 나라들로 확산된 철학 및 문학운동으로 근대문화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이는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인정하고 인간을 만물의 척도로 삼으며 인간의 본성과 인간의 한계, 인간의 관심을 주제로 하는 철학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역사적으로는 프랑스 혁명의 배경이 되었던 르네상스의 기초가 되어 문예부흥을 이끌기도 했다. 한편 종교적으로는 중세 후기적 금욕주의와 신학에 대하여 반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반종교적이고 반기독교적인 성격을 띠지는 않았다. 단지 휴머니즘은 인간의 자유와 가치를 옹호하는데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신, 섭리, 영혼, 영혼의 불멸, 실존의 자유 등 종래의 신학적 주제에 대하여 새로운 안목으로 논의하게 되었다. 휴머니즘에 있어서의 이러한 논의가 중세적 결론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주목을 끄는 것은 세계 안에서의 인간의 주도권을 이해하고 정당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차이점 때문이다. 이는 기독교 내부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되었고 이러한 관점은 이후 19세기말 이후 비평적 자유주의 신학의 바탕을 제공하게 되었다.
다시 우리의 본론으로 돌아온다. 시무언 김기동목사는 자신이 ‘기독교신학에서 새로운 용어들을 많이 만들어 내었다’고 말하곤 한다. 이는 사실이다. 그 사이 그리 길지 않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한쪽에서는 여전히 이단, 삼단 핍박하고 욕을 퍼부어 대면서도 누가 이런 용어를 최초 사용하였는지 확인도 않은 채 교회 안에서 회자되고 있는 용어들이 꽤 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은 어느 목사의 설교든 몇 분만 들어보면 단번에 그 출처를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이 자리에서 지면의 분량상 약하기로 한다. ‘신본주의’와 ‘인본주의’도 대표적인 시무언의 독자적 신학용어이다. 앞서도 잠시 언급하였듯이 ‘신본주의’, 인본주의’는 정통신학의 술어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꽤 드물지 않게 쓰이고 있는 용어이기도 하다. 이를 정확히 누가 처음 사용하였는지를 밝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겠으나, 실은 딱히 전문 신학용어의 정확한 개념에 대하여 크게 개의치 않는 입이 걸쭉한 부흥사들에 의하여 많이 쓰이지 않았는가 싶다. 일반적으로 인본주의란 개신교 정통신학에 대한-정통신학을 신본주의라고 하는 전제에서- 슈라이에르마허를 필두로 하는 19세기 후반부터 일기 시작한 자유주의 신학을 두루 명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무언의 해석은 다르다. 시무언은 종래의 2,000년 기독교신학의 근간을 이루는 인간구원론과 기독론 일체를 인본주의적 발상으로 비판한다. 어떤 의미, 평가절하 한다. 신의 모든 계획과 경륜과 역사(役事)가 그 사이 무슨 말을 하던 결국 인간구원에 귀결된다는 점에서 인간이 역사의 주역이 되는 곧 ‘인본주의’라는 것이다. 반면에 시무언은 자신의 신학을 신본주의적이라고 자평한다. 그런 의미 시무언의 신본주의는 기존의 기독교신학의 구원론과 확연히 구별된다. 철저하게 신이 역사(歷史)의 주역이 되어 신의 뜻이 구현되고 신에게 모든 영광이 돌아가는 신이 중심이 되는 신앙사상이다. 한국의 개신교신학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독일 화란을 비롯한 유럽과 특별히 미국에서 수입되어져 온 것임을 감안할 때 시무언의 논리와 발상, 표현은 상당히 황당한 이야기일 수 있다. 애써 하나님의 영광을 부르짖고 신앙을 하고 신학을 발전시켜 왔는데 기껏 ‘인본주의’라고 하니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무언의 사실상의 성경재발견에 대하여 그 내용을 충분히 알고는 거부할 수 없다. 그야말로 놀라운 패러다임의 변화이고 성경적 신학의 기초이다. 발상을 바꿔보면 얼마든지 그렇게 이를 수 있었던 것을 별다른 비판 없이 바울의 구원론에만 집착함으로 2.000년 동안이나 성경을 전체로 보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시무언의 신본주의적 신앙, 신본주의 혹 신론중심의 신학에 전혀 이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종래의 신학은 돼지들이 주인이 자기를 위하여 죽도록 고생한다고 착각하는 것과 같다고 할 때, 울안의 돼지들이 (꼭 돼지가 아니어도 좋다!) 자기본위로 착각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나무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이는 돼지의 한계 곧 인간의 한계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반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는 다시 이렇게 신의 뜻이 세상에 밝히 공개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로 돌아온다. 여태는 몰랐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으니 드러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담론은 여기서도 끝나지 않는다. 신본주의적 착상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신본주의 신학의 순기능 외에 역기능으로 신학의 비인간성이나 신의 뜻에 성실한다는 신본주의적 맹목성이라는 암초를 예상해볼 수 있다. 인간의 역사는 줄곧 이 같은 시행착오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신학을 감찰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이 대두 된다.
|
|
신본주의와 인본주의 [신학산책4](베뢰아신문)
로마서 16장(주일신문사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