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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베뢰아사람이 된 것은 내가 계획하였던 것도 아니요, 내가 애썼던 것도 아니었다. 정확히 30대 중반이었다. 30대 초반, 신학이라는 세계에 심취했고 몸으로 신학하려(To do theology) 하며 좌충우돌하였던 시간들의 연장이었다. 그리하여 그때는 질곡 가운에 살아가는 소외된 이들을 사랑하여 그들의 곁에 있고 이 세상의 왜곡된 질서를 타파하기 위해 내게 주어진 최소한의 역할이라도 하면 그것이 사랑하는 주님의 칭찬을 듣는 일이라 확신하고 민주니, 자유니, 인권이니 노동이니 하는 현장을 헤매고 다녔다. 그 와중에도 내 심령의 한곳은 허(虛)하기만 하였던 것이었을까 심령의 갈함을 면키 위해 멋모르고 찾아간 자리에서 천지가 개벽하는 것 같은 깨달음과 함께 김기동목사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사실이지 난 ‘베뢰아’라고 하는 용어에 이유 없이 정이 붙지 않아 은근히 피해 왔다. 예컨대 어느 자리에서 시무언의 전부를 지칭하여 말해야 하는 경우에도 사도행전의 한 지역명인 이 외래어를 쓰고 싶어 하지 않아 애서 ‘김기동신학’이니 ‘하나님의 의도신학’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대세 혹 대중성에 밀렸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쨌든 그렇게 나는 베뢰아교회교단의 베뢰아사람이 되었다. 중간에 많은 사연이 있으나 다 생략하고 이렇게 베뢰아사람이 되고난 이후 지금까지 내게는 마치 수십 년 내려가지 않은 체증같이 해결되지 않은 의문이 있다. 참 곤혹스러운 한 마디다. ‘왜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떠나가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떠나갈까?’ 아니 사나이가, 더욱 목사라고 하는 사람이 옳다고 확신하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한 길을 가야지 왜 그렇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감동받았던 복음을, 그렇게 존경하고 사모하던 은사를 저버리고 가버렸을까? 진정으로 이는 내가 글을 과장하려 하는 말이 아니다. 지금도 같은 의문이 내 영혼의 숙제처럼 남아있다. 어느 때는 모(某)국에서 제법 훌륭하게 선교사로 활동을 하던 이가 선교활동을 결산하고 귀국해서는 두말도 않고 몸담았던 곳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심히 허탈해 하였던 적이 있다. 아마 그렇게 선교에 열심이었던 그는 베뢰아로 욕 얻어먹고 복음전파에 방해받기 보다는 ‘구령’의 결과에 마음을 빼앗겼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마찬가지 이다. 글쎄 성경을 모른다면 모르겠거니와 성경의 본질을 떠나 버린 그 놈의 구령(救靈) 그건 또 무엇일까? 그때는 정말 찾아가 때려주고 싶었다. 욕을 실컷 퍼 붇든지 그것도 아니면 도대체 왜 그러느냐고 바짓가랑이라도 붙들고 울어야 할까 기분이 엉망이었다. 그렇게 절박한 사연이 무엇이었을까? 그렇게 살다 죽어 주 앞에 가서 뭐라 하려는가 의문은 계속 되었다.
벌써 십수 년 전 일이다. 밤을 세워가며 ‘베뢰아’ ‘하나님의 의도’라는 단어들을 붙들고 몇날며칠을 끙끙 앓다 힘이 들어 더 이상 계속할 수가 없어 무슨 결론이라도 내려야 했다. 그때 난 ‘이렇게 살자’하는 생각을 했다. 그때 별로 한자에 익숙하지도 못한 내 의식 속에 불현듯 ‘사명자(使命者)’라는 한 단어가 새겨졌다. 그리곤 그때 이후 십 수 년을 되새김질하고 또 되새김질을 계속한다. 최근 어느 날 우리말 사전에서 ‘사명’이란 단어를 찾아보았다. ‘맡은 바의 임무’ ‘주어진 일’ 그게 전부였다. 혹 내 마음같이 어떤 비장한 뜻이 담겨 있으려나 했지만 별 뜻이 없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어도 여전히 그것은 그리 굉장한 뜻을 뿜어내지는 않았다. 그래서 사(使)를 사(死)로 바꿔보았다. ‘죽을 명령’이 되었다. 그래도 내 마음에 흡족하지 않았다.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남자가 되었다. 그것도 경상도 사나이로, 더더욱 예수를 믿었다. 그리고 목사가 되었다. 어디에도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을 시인해야 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당부하기를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 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함같이 배우고 확신한 일에 사명(使命)을 다할 뿐 다른 길이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한 세상, 예수 알고 진리를 아는 즐거움만으로도 더 바랄 것이 없다. 진리를 아는 만큼 엄청 큰 목회에 대한 꿈이 없지 않았지만 이도 마음을 비웠다. 죽도록 열심히 옳다고 확신하는 바를 따라 사는 것을 주께서 불쌍히 여겨 금생에 위로하시면 송구함으로 받을 것이되 평생 이단으로 낙인 되어 욕만 얻어먹고 목회를 끝내어도 도리 없는 일이다. 나는 사람이 그리 단순하지 않는데 비단 여기에서 만큼은 백치마냥 단순하다. 더 계산하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예수 믿고 목사가 된 것도 큰 사명이었지만 베뢰아사람이 된 것은 내게 사명의 의미를 더 측량 할 수 없으리 만큼 새롭게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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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자(使命者)(주일신문시론)
로마서 16장(주일신문사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