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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된다. 신학원을 졸업할 무렵 그야말로 이제는 전임사역자로서의 길을 가야했던 그 즈음, 소속교단에서 좋은 대학부로 명성을 가지고 있던 교회로부터 청빙이 왔다. 예의 그 교회 대학부 담당교역자로 부름을 받은 것이다. 본가도 처가도 이렇다 할 교회적 배경이 없던 나로서는 더할 수 없이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부름이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교역자 생활이라는 설렘 중에도 은근히 걱정이 없지 않았던 것은 그 교회 대학부가 당시 한국교회 전체를 통하여 랭킹 몇 위에 들 정도의 적잖은 숫자도 숫자였지만 높은 수준의 그룹성경공부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렇지 않은가? 신학대학에 적을 두고 공부를 한 것이 강산도 변한다는 10년도 더 되었지만 어디 신학교에서 신학을 하지 성경공부를 하는 것은 아니니 않은가. 어쩜 신학을 한답시고 이왕의 단편적인 성경지식마저도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곤란하고 결국 성경에 대하여는 캄캄 무인지경의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가 되어있었으니 걱정이 들만도 하였던 것이다. 그때 그 설렘과 걱정이 교차하는 가운데 떠올랐던 생각이다. ‘학생들이 아무리 실력이 있다 해도 내가 안 해본 생각을 하지는 못했을 거야.’ 이 엉뚱한 생각이 부임을 앞두고 심란해하던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그만큼 신에 대하여 생각하고 알고파하고 그리 살고 싶었던 것은 내 삶의 전부였다.
그러면 「신학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무엇을 두고 「신학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돌이켜보면 신학함이란 대부분 신학사(神學史)를 공부하는 셈이다. 곧 To Study Theology(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거의 어떤 종류의 신학 나부랭이들이 있었는가를 리서치(Research)하는 것이다. 고대 교부시대에는 어떤 사람이 어떤 주장을 했는데 그래서 그것이 어쩌고저쩌고 하고, 중세에는 또 어떤 사람이 나타나 어떤 주장을 했는데 그것은 또 어떻고 저떻고 하고 이는 현대에 와서도 역시 누가 어떤 영역에서 무슨 말을 했다는 것을 살펴보는 것이다. 이게 신학공부이다. 그런 의미 신학교에서 하는 공부란 거의 신학사요 교리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 같은 신학교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누가 무슨 말을 하고보다는 자신의 문제가 더 절박했다. 영어와 독일어에 이어 헬라어를 하고 히브리어를 하고 그것이 성서신학이든 이론신학이든 기본적으로 신학사의 형태를 벗어나지 않는 신학교의 분위기와는 달리 그들은 당장에 자기 문제가 더 현안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신은 무엇이며 인간은 무엇이며 누가 어떤 말을 했느냐는 외연(外延)의 틀을 전혀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구별되는 특징이 몇 있었다. 꼭 세간에 음치(音癡)의 몇 대 조건하는 것과 같다. 첫째, 누가 뭐래도 자기는 음악이 좋아서 하고 둘째, 음정, 박자 신경쓰지 말고 셋째, 땡! 해도 끝까지 이런 식이다. 이들은 신학을 좋아했다. 세상에 할 일이 많았지만 신학 외에는 하고 싶은 일이 없었고 신학 외에는 재미있는 일도 없었다. 자나 깨나 머리 속에 신학만 이었다. 학점에 신경쓰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신학하느라 학점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유급되는 것이 자랑일 수 없고 창피하고 돈이 들어도 더 들고 세월이 흘러가니 아깝기도 하지만 그 아까운 것마저도 모르도록 모자라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이들은 신학 그 자체에 빠져 유급을 하는지 학점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하여는 신경끄고 살았다. 전 삶이 신학에 빠져있었다. 그것이 이론신학이든 당시 사회의 역사적 환경과 무관하지 않는 예를 들면 민주화문제 인권문제 등과 관련된 해방신학, 노동신학, 여성신학, 토착화신학 등이든 단순히 신학사에 머물지 않고 생생한 삶의 현장에서 온몸으로 전인격적으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신학에 몸 전체를 던지고 있었다. 대부분 졸업을 위해 학점을 따져보고, 교수님들께나 학우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어야 무난히 큰 교회 전도사로의 기회가 열려지는 현실에도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이는 누가 시켜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말려서 할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의 존재 이유였고 신학교를 선택한 이유였고 신학생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멍에를 메게 된 이유였다. 신학에 살고 신학에 죽고 신학에 취하고 신학을 노래하고 신학에 청춘을 걸었다. 나도 그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철부지였어도 할 수 없었고 아끼는 어른들의 따가운 이목을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이상은 『신학산책』이라는 난을 빌어 뭘 써 달라고 하기에 하는 말이다. 「산책」같은 신학, 산책하듯이 할 수 있는 신학이라- 먼저 신학은 그게 아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미국이나 유럽의 자연이 수려한 휴양도시, 혹은 깊은 학문적 예술적 전통과 역사적 배경이 있는 도시의 모퉁이를 걸으며 떠올릴 수 있는 명상과 성경에 대한 묵상이 있는 신학이라면 얼마나 행복할까 마는 실상 신학은 그게 아니지 않은가.
그럼 무엇일까?
2차대전 당시 독일과 영국이 한창 교전 중이었을 때 양국이 공식적으로 약속을 하였는지 암묵적으로 그렇게 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영국의 비행기가 독일에 융단 폭격을 할 때도 작지만 독일 학문의 산실이었던 하이델베르그 대학이 있는 그 전통 있는 마을을 비껴가고 독일 역시 런던의 웨스트민스트 사원 같은 기독교적 유적을 비껴간 것과 같은 광기적 파토스 중에도 절제된 에토스의 세계 같은 것 그게 신학의 현장이지 않은가 싶다. 루터와 칼빈 츠빙글리는 고고한 유럽의 고색창연한 아름다운 도시들에서 생존을 건 종교개혁의 불씨를 지폈다. 우리는 지금 그곳 어디에서도 그 같은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찾기 어렵다.
대부분 신학은 전쟁이다. 전쟁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죽기 아니면 살기다. 이는 신학사가 고스란히 증명하는 바다. 종교개혁 외에도 아예 교부시대의 아리우스와 아타나시우스 사이의 그리스도 신인(神人)양성론과 관련된 기독론, 삼위일체론이 그렇고 시간이 좀 더 지나 알미니안 주의의 바람이 불어왔을 때도 피바람이 있었다. 마침내 종교개혁은 큰 전쟁을 치르고야 진정이 되었고 개혁과 내부에서도 아나밥티스트들이 또 한번 피의 숙청을 당했다.
신학은 조용한 산책감으로는 너무 강렬하고 거친 숨을 몰아쉬어야 한다. 베뢰아신학 역시 이 예에서 비껴갈 수 없는 듯하다. 애써 더 강조할 필요도 없지만 아니라고 하기에는 아직도 그 전선(戰線)이 만만치 않다. 주변 여건이 근자에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다소 나아졌을 뿐이고 완고한 메이저급 교단들에는 여전히 이단이고 사이비일 뿐이다.
베뢰아는 이런 연유로 인하여서일까? 너무 야성적이고 너무 전투적이다. 그래서인지 곳곳에서 불필요한 거친 소리마저 들린다. 이는 공연한 수고이다. 더 신사적이고 더 경건하고 더 학문적이고 논리적이어야지 큰소리치는 것은 신학꾼들의 수작이다. 진정한 성경에로의 돌이킴이 베뢰아운동의 근간이라면 베뢰아운동은 의식적으로라도 성경의 부드러움마저도 마다하지 않고 성경을 더 닮아야 한다. 신학의 신학함이 산책일 수 없고 책상위의 공론이 아니라 그것이 처절한 삶의 전 과정이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성경을 닮아있는 질의 깊이에 의하여 판가름 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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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산책- 신학함(TO DO THEOLOGY)에 대하여(침례교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