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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뢰아를 처음 접한 88년 5월 이후, 그동안 베뢰아와 관련하여 많은 말들을 하고 설(說)들을 풀어 놓았다. 다음에 또 다른 차원에서 무슨 말을 할지야 자신도 알 수 없으나 이 즈음하여 베뢰아에 대한 개인적 입장, 나와 베뢰아와의 관계에 대하여 한 번쯤 밝힐 필요를 느낀다. 그러나 이는 실은 베뢰아에 대한 개인의 입장을 밝히는 형식을 통해 베뢰아에 대한 평소의 지론을 천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그날 베뢰아에 팔렸다. 베뢰아와 결혼했다 해도 좋고 시쳇말로 베뢰아에 미쳤다 해도 그게 그 말이다. 베뢰아 없는 나를, 어느 날 베뢰아를 제하여 버린 나를 생각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그동안의 그 많은 말들을 어떻게 주어 담을 수 있을까? 도저히 무리이다. 이는 베뢰아의 창시자인 시무언과 무슨 교감을 나눈 것도 아니고, 시무언의 밀명을 받은 것도, 후원을 받은 것도 아닌 그야말로 나만의 결단이요 짝사랑이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베뢰아에 빠질 수 있었던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나는 흔히 학교생활 중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고 말없이 따라하는 모범생 스타일의 신학생은 아니었으나 신학에 대한 감각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이전에도 마침내 대학진학을 해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되면 원 없이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랬던 만큼 나는 대학시절 줄곧 책 속에 살았다. 그렇게 신학은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일까 어느 때부터는 신학의 세계에 들어가면 그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 알 것 같았다. 무엇은 아니고, 무엇은 기다는 것이 보였다. 신학의 줄거리가 판단이 되기 시작했고 같은 맥락에서 무엇을 주장하든 그 주장하는 사람의 깊이와 폭과 높이를 측량할 수 있었다. 마치 나의 의식 속에 촘촘히 짜여진 신학이라는 NET(망)를 적절히 자연스럽게 어느 방향이든 문제를 따라 움직이며 제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이지 그렇다고 그게 야단스레 고급의 생각이요 사유인 것은 아니다. 원래 신학은 그리 고급의 사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 베뢰아는 독보적이고, 세계적이고, 성경적이고, 하나님 편에 있고, 신앙세계에 절대승산이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아니 그냥 그렇게 받아들여지고 확신이 되었다. 이는 약점이 없도록 완전무결하다는 말은 아니다. 걸고넘어지고 말을 말이라고 하면 완전무결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신학밖에 한 것이 없고, 아는 것이 라고는 신학밖에 없는 내게 무슨 다른 선택이 있었겠는가? 나는 그 첫날 아무른 망설임 없이 베뢰아사람이 되었다. 무려 예장고신측 목사라는 사람이 겁도 없이 침례를 받고 성령을 사모하고 마구잡이로 동네를 다니며 귀신을 쫓았다. 오래전 별 해프닝이 있기도 했지만 이왕에 베뢰아사람이고 베뢰아운동을 할 것 같으면 더 본격적이고 싶어 내가 애착을 가지고 지었던 교회이름을 포기하고 ‘부산성락교회’로 교회명을 바꾸었고 이는 교회주보에도 ‘부산성락교회는 베뢰아운동을 위하여 세운교회’라고 교회설립의 변을 밝히기도 했다.
지난 16년여 줄곧 한길을 따라 살아온 나를 두고 별로 할말도 없었겠지만 혹시 내게 대하여 누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몰라도 나는 베뢰아를 잊어 본적이 없고 ‘베뢰아’를 생각하지 않고 보낸 하루도 없었다. 베뢰아가 좋아 날이 새도록 베뢰아를 생각하고, 베뢰아가 좋아 베뢰아를 고민하고, 베뢰아가 좋아 번민하고 갈등하고 힘들어 한 적은 있어도 베뢰아 없는 베뢰아 아닌 나의 세계를 그려 본 적이 없다. 이런 나를 보고 어느 때는 ‘나는 충직한 개다’란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이 불쾌하지도 비굴하지도 싫지도 않았다. 오히려 운명같이 그렇게 받아들였고 그것을 다짐했다.
그래서 일 것이다. 나는 베뢰아를 생각하면 거의 시무언의 마음이 읽어진다. 이는 그의 저서들을 탐독하노라면 간단히 확인할 수 있다. 여러 곳에서 나만 생각했고 발견했고 표현하고 느끼는 것이라고 하는 것들이 이미 시무언의 글들에 담겨 있었다. 나는 그가 욕을 얻어먹을 때도 그를 이해할 것 같았고, 같이 맞장구를 치며 비난을 하면서도 ‘내가 틀렸다’는 것을 늘 안고 들어갔다. 그러니 항상 승산이 없는 경기를 한 셈이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베뢰아를 떠나간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이해하지 않으려 한다는 말이 더 맞다. 시무언을 사랑하고 베뢰아를 사랑하고 떠나지 않으면 나의 동지이고 어떤 이유든 베뢰아를 떠나면 지면이 있는 이웃이기에 서로 인사는 나눌 수 있어도 더 이상 동지도 같은 길을 가는 형제도 아니다. 짧고 짧은 생애 모든 사람을 다 만날 수 없음 같이 더 이상 정을 주고 대화를 하며 정리(情理)를 나눌 만큼 그런 한가로운 시간이 없다. 하나 분명한 것은 저들은 베뢰아를 모른다는 것이다. 베뢰아를 알면 베뢰아를 버릴 수 없다. 베뢰아는 시무언의 것도 서울성락교회 좋은일 하는 것도 아니고 주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베뢰아에 대한 꿈과 그림, 비전, 이상과 예언이 너무 분명하다. 그것은 나의 생각보다도 더 빠르게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을 이미 나의 때에 목격하고 있다. 그래서 타협이 안 된다. 베뢰아운동의 확산을 위해서는 개교회 목사의 꿈 중에 꿈인 교회성장마저도 양보할 수 있고 가족도 희생할 수 있고 내 한 목숨 순교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시 모두가 나 같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이렇게 하고 또 다른 이는 저렇게 하나 나는 이렇게 한다. 이는 나의 길이요 나의 사명이다. 오히려 그래서 그동안의 그 수많은 베뢰아에 은혜 받고 베뢰아에 감탄하고 베뢰아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모여 한 새로운 세계를 열어 갈 수 있으면 사나이로 태어나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그보다 더한 행복과 자부심이 없을 것 같다. 너무 나이브(naive)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는 이 시대를 사는 나의 고백이요 이 시대를 향한 나의 함성이자 요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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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베뢰아에 팔렸다.(주일신문시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