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4. 20.

숭례문 소실(燒失)의 교훈 <사설>

글쓴이: 이동훈 날짜: 2008.02.18. 11:43:15 글쓴이IP: 58.239.117.169

우리나라 국보 제1호 숭례문(세칭 남대문이라고도 한다)이 무참히 소실되어 버렸다. 전 국민이 두 눈 멀쩡하게 뜨고 중계방송 보듯 지켜보는 사이 화마(火魔)는 서서히 그를 삼켜 버렸다. 화재 발생 다섯 시간 만에 610년 유구한 역사를 지탱하고 있던 버팀목들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우르르 내려앉기 시작했던 것이다. 대한민국 국보 제1호, 수도 서울의 자랑스런 아이콘의 활활 타는 모습이 전 세계로 타전되었다. 한 마디로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싶은 일이 대한민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일어났다. 다시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사실이 심히 부끄럽고, 나라가 왜 이 모양인지 자괴스럽기 그지없는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전 국민이 어릴 적부터 국보 제1호라고 자랑하고 수업시간에 외우고 시험 보기만 했을 뿐 책임부서인 문화재청이하 이를 관리 위탁 받은 서울시나 중구청에서는 여느 서민 아파트만한 관리도 하지 않았다. 일반인으로도 지극히 상식적인 소화전이나 스프링클러 하나 갖춰져 있지 않았고 70노령의 방화범이 불과 5분도 안 되는 사이 범행을 저지르고 도주할 수 있었던 그 시간에는 아예 아무런 방비도 없었다. 전소(全燒)가 되고난 후에야 이웃의 서울역 노숙자들이 야간에 무단침입 하여 잠도 자고, 심지어 그 목재 건물 속에서 라면도 끓여 먹었다고 하는 대목에서는 ‘도대체 어찌 이런 일이........’란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전 시대 경제개발의 덕택으로 소득이 조금 올라 걱정 않고 쌀밥 먹고, 갖가지 가전제품 집안에 들여놓고, 자동차 굴리고 골프 친다고 선진국 되는 것이 아니다. 기본이 되어있지 않은 나라가 어떻게 세계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명대로 살아날 수 있을까. 참으로 대한민국의 실력이 이렇게 밖에 되지 않는가 싶어 부끄럽고 창피하다.
임진왜란과 6.25전쟁을 통해서도 훼손되지 않고 그 자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역사적 유산이 눈 뜨고 바로 쳐다볼 수 없도록 잿더미가 되어버리고, 이를 두고 국민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망연자실(茫然自失)하는 광경을 통해 새삼 마음에 깊이 새겨놓아야 할 교훈을 발견한다. 먼저는 옛것에 대한 가치요 귀중함이다. 그것은 평소 요란스럽지 않았다. 옛것은 문자 그대로 이전부터 있어 왔던 것이다. 그것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그래서 그것은 당연했고 당연한 것만큼 자연스럽고 거기 무슨 야단법석을 떨 것도 없었다. 그러나 정작 그것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사라졌을 때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다는 것을 배웠다. 그 옛것은 21세기 마천루로 뒤덮인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 어울리지 않는 촌놈 천덕꾸러기 같았으나 오랜 세월동안 말없이 그 앞을 지나치는 시민들의 벗이요 이웃이요 가족으로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방 사람들은 서울을 가면 서울역에 내림과 동시 쉽게 눈에 들어오는 숭례문을 보고 ‘아, 국보 제1호!’하며 반갑게 기억을 되새기곤 했다. 그것은 그만큼 전 국민들의 마음속에 말없이 깊이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이 불에 타고 잿더미로 변해 무너져 내려 버렸을 때 국민들의 마음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그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텅 빈 공간이 생겼다. 그러나 이렇게 상처받고 이렇게 허전하고 황망하도록 까지 그것이 불타 없어져 버리도록 어느 누구도 그것을 귀히 여기지 않았고 아끼지 않았다. 상당한 예우로 대하지도 않았다. 귀한 것만큼이나 비용을 지불하지도 않았고 수고하지도 않았다. 평소 주위에 잊고 있었던 것이 무엇이었던 가를 돌아보게 하는 사건이었다.
둘째는 이렇게 용서할 수 없는 결과에 이르기까지 잘못 관리한 관련자들을 찾아 처벌하고, 당일 화재진압 과정에서도 누가 뭘 잘못했는지 화재현장의 책임까지도 철저하게 가려야 할 것은 가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누구를 나무라기 전에 나라 전체의 품격이 그 정도 밖에 되지 아니한 것에 대하여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금번 사고는 국민 모두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품격과 소양과 자질을 높여야 할 것을 경고해주고 있는 것이다. 냉정하게 부족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사건이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