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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서(板書)를 잘하시는, 이따금 박식한 신학 지식에 휘갈겨 쓴 한자어(漢字語)로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교수님이 계셨다. 신대원(神大院) 1학년 가을쯤으로 기억한다. 그날도 제일 뒤에 앉아 멍하니 천연덕스럽게 앞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무슨 말인가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지만 칠판에 진리(眞理), 자유(自由)를 큼직하게 쓰시며 ‘진리를 알찌니 진리(眞理)가 너희를 자유(自由)케 하리라’(요8:32) 하시지 않는가! “뭐 진리가 뭘 어쩐다고?” 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자신의 행동에 놀라 다시 푹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진리(眞理) 그리고 자유(自由)에 대해 노이로제에 걸려있던 시대에 있었던 에피소드이다. 그 무렵 함석헌 선생과의 성경공부 모임에서 진리와 자유에 대하여 열띤 공방을 벌리기도 하고 함선생께서 멋들어지게 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패넌트를 사서 아주 귀하게 책상 앞에 모셔(?) 놓기도 했었다. 함선생께서 민주화 운동자금으로 만들어 팔았다.
마음은 여전히 청춘인데 이제사 보니 꼭 30년 전 이맘 때 일이다. 그때는 봄학기도 봄학기였지만 가을학기는 더 공부를 안했다. 학기가 시작되자 말자 개헌저지, 군사독재 타도를 외치며 바깥으로 뛰쳐나갔고 서울대와 명문 사립대가 앞장서 분위기를 잡으면 지방도 거의 공부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개강 후 중간고사까지는 겨우 수업을 하는 둥 마는 둥 어물쩡거리다 대부분 레포트로 시험을 대신하고 중간고사 이후로는 아예 모이지도 못한 채 그렇게그렇게 학년을 마쳤다. 당시 나는 거의 질식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 시대(時代)의 상황어(狀況語)였던 자유가 뭔지도 잘 몰랐지만 그렇게 자유에 목말라 했다. 무엇이 나를 구속(拘束)하고 있었던지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신학교에 적을 두고 있던 그 시절의 나는 정신없이 자유와 인권 민주와 관련된 시국 강연회를 찾아 다녔고 강연을 듣고 나면 끓어오르는 갈증을 이기지 못해 연사에게 질문을 날리곤 했었다. 나를 옥죄고 있는 기성의 틀을 깨고 무한히 펼쳐질 것 같은 저 먼 자유세계를 향해 훨훨 날아가고 싶었다. 그 숨 막힐 것 같은 분위기에서도 1년을 더 버티다 끝내 실컷 데모(?)하고, 하고 싶은 생각의 끝까지 생각하며 신학을 하고 싶어 뒤늦게 서울로 몸을 옮겼었다. 이는 모두 엄청 무모한 일들이었지만 그리 않고는 살 수가 없었던 20대 중반의 나의 자화상이었다.
그리고 그 후 다시 10년 후 쯤 어느 자리에서 하늘이 꺼지고 땅이 솟아나는 경천동지(驚天動地)의 신의 음성 같은 소리를 듣고 성경을 깨닫고 영적 세계를 알 것 같고 신앙의 진정한 뜨거움을 획득한 것 같은 경험을 했다. 나는 그 때 여태 까지 나를 이끌어 왔고 보호해왔고 나를 감싸고 둘러싸고 있던 모든 것을 버리고 ‘이단자’(異端者)가 되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고 그리고 예수를 믿게 된 이후 최고의 사건이었다.
다시 얼마 후 그리스의 아테네를 가 볼 기회가 있었다. 아테네가 어딘가? 진리를 구가하고 학문의 자유를 노래하던 헬레니즘, 오늘의 현대문명을 가능케 한 인본주의의 산실이지 아니던가!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하여 일부러라도 깊은 숨을 몰아쉬며 아테네의 정신을 느껴 보고 싶어 했다. -이는 지어낸 글이 아니다. 나의 육필(肉筆)이다.- 그날 아주 존경하고 사랑하는 어떤 분과 단둘이 택시를 대절하여 아테네 구경에 나섰다. 택시라는 좁은 공간에 갇힌 나는 평소 가까이 할 수 없었던 그분에게 온통 정신이 쏠려 있었다. 그 때 일이다. 평소 드리고 싶었으나 기회가 없어 드릴 수 없었던 몇 말씀을 드리고는 느닷없이 ‘진리가 뭡니까?’ 나는 시한폭탄을 던지듯 어렵고 힘들게 그 분에게 질문을 드렸다. 평소 아주 쉽게 말씀을 잘하시는 그분도 그때만큼은 얼른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내가 무례했나? 대답을 하지 않으시려나 보다.’하고 약간 난처한 입장에 빠져있는데 ‘나는 ○○○합니다.’ 라고 대답을 하시지 않는가. 깜짝 놀랐다. 순간 머릿속에 “우문현답(愚問賢答)이로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은 내가 드렸던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이었다.
자유! 생각할수록, 빠져들수록, 가슴이 뜨거워지고, 숨이 가빠지는 자유! 개인적으로는 자유를 찾아 자유순례자로 살아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도, 잘났다 못났다 의 문제도 아닌 그럴 수밖에 없는 내 삶의 떨치지 못하는 과제였다. 지금도 때로는 영혼의 자유, 때로는 환경의 자유, 때로는 인간으로 부터의 자유, 육체로부터의 자유, 어느 때는 무엇인지 정체조차 모르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갈망한다. 어느 때는 얻은 것 같고, 어느 때는 누리는 것 같은 자유가 어느 때는 다시 낯설게 여겨진다. 그 택시 안의 그 어른이 금번 「진리와 자유」라는 책을 써냈다.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 사뭇 그 내용이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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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목사의 베뢰아묵상 「진리와 자유」 북리뷰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