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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산책」이 그 사이 몇 번의 외도를 한 듯하다. 애당초 「신학산책」을 시작할 때 ‘산책하며 하는 신학’, ‘산책 같은 신학’으로 신학이라는 내용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산책거리용 정도로 하겠다 내지는 할 수 밖에 없다-필자의 역량이 그렇게 밖에 안 된다. 필자는 일선 목회자이다. ‘진짜 신학’은 신학자들의 몫이다.-고 했으나 회를 거듭할수록「신학산책」이 본래의 위치를 지키지 못하고 자기 영역 밖으로 자주 넘어선 듯하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봐도 역시 그것은 신학전문가들의 몫이고 졸고를 통해서는 그런 정도의 신학적 주제, 관심, 고민거리, 내지는 화제거리가 있다는 것만 알면 되겠다. 신학이란 하다보면 대충 파악할 수 있듯이 깊이 심오하게 한다고 정곡을 찌르거나 문제가 일거에 해결되는 것도 아니요 산책처럼 한다고 겉도는 것도 아니고 천박한 것도 아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그 전형이다. 예수님께서는 아주 편하게 하나님나라의 심오한 이치를 밝히 말씀하셨다.
오늘의 주제는 ‘종교 다원주의’이다.
1.종교다원주의란 무엇인가?
다원주의란 어떤 영역에 있어 그 영역을 이해하는 혹 구성하는 근본원리가 하나가 아니고 영어나 한자어 그대로 여럿, 복수형이다 는 주의주장이다. 곧 다원주의는 하나의 보편원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실은 하나의 다원주의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다. 이같이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라는 용어는 꽤 많이 사용되면서도 명확히 규정되지 못한 점이 많다.이는 흔히 두 가지로 정의한다. 첫째는 종교다원주의란 다양한 종교현상이 공존하는 문화적 상황을 뜻한다는 가치중립적인 정의가 있을 수 있다. 이런 의미의 종교다원주의는 종교사를 통해 늘 있어왔다. 물론 다양한 종교의 단순한 공존만이 아니라 서로 경쟁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점과 정치, 경제, 과학기술의 교류로 인하여 다양한 종교문화간의 거리를 더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이 현대 종교의 상황이다. 따라서 다원종교상황의 중립적 묘사로서의 종교다원주의는 심오한 철학이나 종교적 세계관이기 보다 종교의 전통적 정체성 상실에 따른 지적, 도덕적, 신학적 문제를 야기한다.
둘째는 지적, 도덕적, 신학적 문제로서의 종교다원주의를 이해할 때 그것은 이미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평가적이고 규범적 정의 곧 다원종교 상황에 대한 획기적인 철학적 세계관의 모형 변화를 시사한다. 종교적 다원성에 대한 도덕적 승인과 지적 통찰은 더 이상 자신의 신앙의 절대적 가치를 인하여 타인의 신앙에 대한 조소와 무관심을 정당화 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것은 자신과 동등하게 지성적이고 경건하고도 도덕적인 타종교를 인정한다. 이렇게 종교다원주의는 위 두가지 형태와 같이 종교에 있어 다원(多元)을 주장하는 주의 정도로 보면 되겠다.
2. 종교다원주의의 배경
그런데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니다. 힌두교나 불교 같이 아예 처음부터 다원주의로 되어있는 종교들은 ‘그 입맛에 딱 맞다!’ 할 수 있겠으나 -그렇다면 다원주의가 부각되지도 않았겠지만 -유일신을 주장하는 기독교나 이슬람교는 이게 안 된다. 지켜야 할 원리를 위하여 순교를 불사하거늘 여럿의 원리를 두자 하니 이게 여간 심각한 논란거리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묵과할 일도 아니다. 시대상황이 그런 완고함을 그냥 두지 않는다. 역시 먼저는 주변 환경의 변화이다. 새해 첫날부터 들려오는 뉴스거리도 그 좋은 예이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남녀 아나운스는 먼저 새해를 맞은 의례적인 덕담을 꺼낸 후 이어 국내의 주요뉴스를 몇 가지 소개하고는 어느새 세계 곳곳의 소식을 전해준다. 어디에서 100명을 실은 비행기가 사라졌다 하고, 어느 나라 어느 나라가 새해 어떻게 되어서 세계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겠다고 하고, 미국 어디에 산불이 며칠째 계속되고.... ....전세계의 소식을 듣게 된다.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거야?’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오나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정보통신의 혜택이 없다면 알래야 알 수도 없었고 기껏 이웃나라에 무슨 일이 있다고 풍문에 겨우 들었어도 그게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당장 어디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 하면 ‘아이고 거기 우리 작은 아들 공부하러 갔는데 이걸 어쩌나!’ 이런 식이다. 외면할 수 없이 세계가 한 지붕, 한 시장, 한 울타리가 되었다. 필자가 어렸을 때는 외국인 구경도 어려웠다. 간혹 길거리서 백인을 보면 신기해서 길을 가다가도 히끗히끗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금년에는 한국에 시집온 필리핀 여성을 집사로 세웠을 정도이다. 종교도 마찬가지 이다. 한 부락, 한 부족, 한 민족이나 국가만의 것이 아니라 완전 세계화 되었다. 교통의 발달로 인한 인구의 대량이전 그리고 정보통신기술의 획기적 발달에 의한 신속한 문화의 교류는 종교라고 예외가 아니다. 공존 공생 이라는 거창한 구호 이전에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이웃(타종교)이 엄청 가까이 와 있는 것이다.
먼저는 19C말 이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18C 이후 교통과 무역의 발달로 대륙간의 교류가 활발해졌고 따라서 사람과 함께 문화와 종교도 애초의 영역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타종교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선교의 대상으로 봤다. 구원받아야 할 불쌍한 영혼이었다. 그래서 서양의 발달된 문물을 배경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여러 나라들을 식민지화할 때 제국의 종교가 함께 전래되었고 제국주의적 발상의 연장에서 종교의 식민지화를 시도했다. 처음에는 문제가 없었다. 한쪽에는 힘과 논리와 지식을 가진 지배자였고 다른 한쪽은 그야말로 피지배자였으니까. 그러나 유럽의 세계진출과 자본의 증식으로 전통적인 지배계급 외에 자본가계급이 폭넓게 형성되므로 유럽교회는 자연스럽고 빠르게 세속화를 재촉하게 되고 교회는 점점 형식만 남고 약화, 쇠퇴일로의 길로 빠져 들어갔다. 종교다원주의는 실상 유럽 기독교회의 약화가 그 진짜 배경이었던 것이다. 마치 교회가 너그럽고 타종교에 대하여 관대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기독교회가 역사의 대세에 밀려 타종교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자리에 까지 왔다는 것이 정확하다. 그때부터 학자들이 연구를 하고 해법을 찾아 나섰다. 원칙적으로는 이 같은 현실적 배경이 있었고 이에 더하여 세계는 그야말로 세계화 과정을 밟고 있어 종교문제에 대하여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하는 논의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할 수 있다.
3.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종교다원주의가 그렇게 만만한 주제는 아니다. 무성한 관점들로 늘 싸움이 가능한 주제이다. 그것은 다시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대표적으로 포괄주의, 신중심의 다원주의, 구원중심의 다원주의, 차이를 인정하는 다원주의 등이다. 일반적으로 종교다원주의와 포괄주의는 서로 구별한다. 포괄주의를 유사다원주의 정도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나 포괄주의는 타종교와의 대화에 나서지 않았던 로마카토릭교회의 다소 완화된 입장으로 여전히 다원주의 보다는 많이 배타적이다.
다원주의와 관련하여 흔히 과정신학자로 알려진 존 캅과 카토릭신학자 칼 라너 그리고 존 힉을 자주 언급한다.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론으로 널리 알려진 칼 라너는 예를 들어 힌두교이건 불교인이건 심지어 무속종교인이건 그들은 잠재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론이다. 따라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존중한다. 칼 라너의 이런 이론에 대하여 인도의 파니카는 그는 힌두교인으로 ‘그렇다면 당신은 잠재적 힌두교인이군요’ 함으로 비판했다. 이에 비하여 존 힉은 그의 ‘종교철학’에서 산의 정상은 하나이나 그 산에 올라가는 길은 여럿이다 는 이론이다. 올라가는 과정에서는 누가 옳은지 알 수 없다. 다 옳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니 올라가는 과정에는 서로를 인정하고 대화하자는 식이다. 소위 신중심의 다원주의이다. 존 힉은 여기서 신(God)이라 하지 않고 ‘궁극적 실재(Reality)’라 했다. 그 궁극적 실재를 향하여 가는 길이 여러 갈래다. 그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장님과 코끼리로 설명한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신의 일부분이고 그 신의 전부를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 신의 다른 모습을 표현하는 종교를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그들 역시 궁극적 실재에 이르기 위하여 우리와 다른 길을 통해 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신중심의 이 이론도 기독교로부터는 유일신 신앙에 반하는 것으로 비판을 받고 비기독교로 부터는 그 실재란 결국 기독교의 신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다.
이에 비하여 구원중심의 다원주의를 표방한 존 캅은 산도 여러 개이고 산이 여럿이므로 당연히 길도 여럿이라는 것이다. 누가 옳은지 알 수 없고 서로 옳다고 하며 오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르기까지는 서로를 인정하고 대화하자로 나아간다. 신중심주의와 비슷하지만 신중심주의가 결과를 중심에 둔 것에 비해 구원중심주의는 과정을 논의의 중심에 두었다.
비하여 차이를 인정하는 다원주의에서는 종교를 언어학적으로나 문화적 차이로 보는 입장으로 서로 차이를 분리하여 대화를 한다. 서로의 좋은 점을 나누면서 실용적으로 나아간다. 신중심주의, 구원중심주의 다원주의는 그나마 신학적으로 완고한 입장에 선 사람들이 선호하는 형태이다.
이렇게 종교다원주의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기독교 내부에서도 근본주의와 자유주의 쪽이 많이 다르고 근본주의 내부에서도 유럽이나 미국의 선발기독교는 현실을 인정하여 연구를 계속하는 편이나 한국기독교는 보수적 경향으로 종교다원주의는 거의 연구가 끊겨있다. 그러나 이것은 현재까지의 상황일 뿐이다. 근자의 보도에 의하면 국내 모슬렘교도들의 숫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한다. 향후 충분히 종교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한국은 오랜 세월 단일 종교의 지배적 분위기에서 지내온 서양신학자들에게 연구대상이 될 정도로 개신교 전래이후에도 타종교에 대하여 관용한 사실상의 종교다원론적 사회이다. 종교와 종교적 확신 그리고 종교와 상관없이 공생해야 하는 문제들의 부상 등이 더욱 다원주의적 분위기를 선호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음 호에서 좀 더 살펴보고 이 시대의 우리는 어떤 형편에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살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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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다원주의’[베뢰아신문_신학산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