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4. 16.

21세기 종교다원주의와 한국적 상황 [베뢰아신문_신학산책]

글쓴이: 이동훈 날짜: 2006.08.09. 00:32:15 글쓴이IP: 211.191.151.156

21세기는 피할 수 없는 세계화의 시대이다. 세계화는 단순히 국가와 국가간의 장벽이 아니라 문화와 문화, 종교와 종교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20세기말 서구기독교회에서 제기된 다원종교적 상황의 문제는 21세기 초에 이르러 보다 더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지구상의 다른 곳에서는 여전히 종교적 다름이 절대적 원인을 제공하는 분쟁과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바야흐로 세계는 나라마다, 문화마다 세계화와 함께 밀려오는 ‘다원화’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이냐는 당장의 절박한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지난 회에는 다원종교사회에 대한 발상의 문제점을 살펴보았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서구기독교회의 반성에서 나온 것임을 지적했다. 반면 한국기독교회는 여전히 소수종교 이고 그런 의미 초대교회적 상황에 가깝다고 보아야 하지 않느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계속해서 살펴본다. 서구신학자들은 기독교와 타종교와의 관계를 대개 다음의 세 가지로 구분한다.
1.다원종교사회에서의 일반적인 입장
1)배타주의적 입장이다. 기독교 이외의 타종교들은 미신이요, 우상으로 기독교외에는 참 신앙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 같은 태도는 세계2차대전 이후 아시아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의 독립과 함께 서구의 종교제국주의로 비판을 받으면서 오늘날은 위세가 많이 꺾였다.
2)포괄주의적 입장이다. 타종교에도 기독교 하나님의 섭리가 부분적으로 역사하고 있기 때문에 타종교는 기독교에 대하여 몽학선생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 타종교를 기독교적 시각에서 설명하고 포용하는 자세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천주교가 이러한 입장을 취하며 진보주의 신학자들 사이에 관심이 높다.
3)다원주의적 입장이다. 각각의 종교들은 절대자인 하나님에 대한 나름대로의 이해를 가지고 있다고 간주하여 제 종교의 동등함을 인정하자는 입장이다. 이는 천주교 신학자인 폴 니터(Paul Knitter), 한스 킹(H. Küng)등에 의해 주장되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전형적 다종교 사회를 이루고 있는 인도에서 많이 발달하였다.
이렇게 구분되는 세 종류의 일반적인 입장들은 서구기독교의 흐름을 정확히 대변하고 있다. 즉 배타주의와 포괄주의 다원주의에로의 변천은 서구제국주의의 정치적 힘과 무관하지 않다. 서구에서 배타주의가 문제가 되는 것은 배타주의적 태도에 서구 열강의 정치적 힘이 실리고 타종교권에 사는 사람들은 암암리에 그러한 제국주의의 힘을 느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실은 기독교를 현장에서 전했던 선교사들의 순수한 의도와는 상관없는 현실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또 포괄주의 그리고 다원주의로 변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서구제국주의 세력의 약화를 반영한다. 힘의 약화로 인한 자기반성이 타협과 공존의 지혜를 모색한 결과라 할 수 있다.
2.종교다원주의와 서구기독교신학
지금 존재하는 타종교들은 기독교선교 이전에도 존재했다. 다만 이전에는 서구기독교가 타종교의 존재를 인정해주지 않아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서구 제국주의의 세력이 강했고 타종교의 배경이 되고 있었던 정치적 세력이 약했던 것뿐이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종교적 형태, 정치적 구도에 큰 변화가 생겼다. 이런 점에서 다원주의적 입장으로의 선회 혹 타종교를 고려하는 분위기는 서구기독교문명에 대한 서구신학자들의 위기의식의 표시이거나 서구신학의 한계가 표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일부의 서구 신학자들은 신(神)중심 신학에서 성령중심적 신학으로 강조점을 수평이동하고 교리적 배타주의의 연원이 전통 기독교회의 기독론에 있다고 보고 이를 수정하거나 다른 여러 종교들이 가진 교리와 상호교접 내지는 보완 하려는 신학작업을 모색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회(前回)에서도 지적하였듯이 이러한 접근은 문제의 본질을 빗겨 서 있다는 느낌이다. 기독교의 교리적 배타성은 비단 20세기, 21세기의 문제가 아니다. 기독교는 제국의 국교가 되기 전에도 여전히 그 교리를 가지고 있었다. 현재 비서구세계기독교의 상황이 대부분 박해와 핍박을 감수해야 하는 소수종교의 입장임을 감안한다면 종교다원주의의 문제는 지역적, 문화적, 역사적 특성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3.한국기독교와 전통종교의 관계
배타주의, 포괄주의 및 다원주의적 접근들은 한국이나 다른 아시아 나라들에 있어 기독교와 타종교와의 관계를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해결하기도 어렵다. 최근(2006년 여름)에 출판된 ‘서양인의 한국종교 연구’를 쓴 김종서(서울대 종교학과) 교수가 하는 말이다. ‘제 아버님은 독실한 불교신자였지만 배울 것이 있을 것이라며 동네교회 주일학교에 가 보라고 하셨어요, 우리는 별로 이상하지 않은 이런 모습을 서양사람들은 독특한 현상으로 받아들입니다.’ 이처럼 한국은 다른 종교를 수용하는데 익숙한 문화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 한국은 동서를 무리 없이 융합한 종교 선진국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종교혼합주의로 매도하는 이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나 한국사회에서 여러 이유로 다른 종교 내지는 무신론자로 자처하는 부모들이 자녀들을 교회로 보내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물론 이것은 한국사회에서 한국의 전통문화와 종교에 기독교가 편입되는 과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모슬렘권의 경우 같은 모슬렘이면서도 종파를 달리하는 것만으로도 끊임없이 내전을 계속하는 것과는 분명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유럽의 옛 유고연방이나 러시아에서 계속되고 있는 항전이나 내전도 마찬가지이다. 개신교가 다수인 미국, 신도(神道)나 불교중심의 일본 등과 종교현상은 많이 다른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어쨌든 동서양의 자연스러운 융합이라는 점에서 한국은 종교적으로는 대단히 성숙한 심성과 사회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할 수 있다. 바로 이점에서 한국기독교회가 세계를 향하여 21세기적 공존의 묘를 소개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21세기는 종교계간의 경쟁이 아니라 ‘종교 대 세속의 경쟁시대가 될 것이라며 종파주의 보다는 일치운동 등이 이런 시대 변화의 보완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는 김종서교수의 지적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실제 그런 분위기를 한국의 종교계에서 감지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사회는 이를 야합이 아니라 종교인들의 성숙한 자세로 평가하는 듯하다.
4.다원종교사회에서의 태도
한국기독교는 다원종교적 상황에 있는 소수 종교이다. 한국기독교는 삶의 자리에서 타종교와 공존하는 삶을 체험적으로 실천해왔다. 어릴 적부터 종교를 달리하는 아이들이 함께 놀았으며 같이 공부하고 약간의 불편함과 몰이해에도 불구하고 얼마든지 직장생활을 같이 해 왔다. 이따금 종교적 대화로 얼굴을 붉히고 서로 상대방을 설득시키려는 해퍼닝이 있어도 그것이 친구사이의 우정을 깨거나, 거래처를 바꾸는 일로까지는 확산되지 않는다. 이런 현실적 배경을 충분히 고려하여 다음과 같이 다원종교사회에서의 태도를 정리해 본다.
①한국기독교는 기독교의 가르침에 충실해야 한다. 다종교시대의 각 종교는 자기 종교의 가르침에 더 충실해야 한다. 이는 교리에 정통하고 차별화가 분명해야 한다는 의미를 포함하여 차별화에 근거한 삶의 내용이 충실해야 한다는 말이다. 한국기독교가 상대적으로 아직도 120년 역사에 지나지 않은 신생종교에 불과하지만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기독교가 표방하는 정신과 가르침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지 않는지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가 우리사회에 활력을 주고 희망을 주는 종교인지 아님 비난을 받고 있는지 자기반성을 해야 한다. 다원종교적 사회에서의 진정한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설프게 타종교를 간섭하기 보다는 기독교의 가르침에 정통하고 그에 따른 실천을 보여야 한다. 교회 역사를 장기적으로 고려한다면 이는 필수적이다. 다원종교사회에서 선택은 종교수요자들의 평가에 맡겨야 한다.
②유일신 신앙과 타종교에 대한 태도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서구기독교는 역사적으로 기독교의 유일신 및 절대성에 대한 신앙이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 태도와 연관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배타적 모습은 기독교교리에 대한 이해라기보다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보아야 할듯하다. 즉 한국민의 종교적 심성은 가장 기독교적인 것을 구한다. 한국인은 각자의 종교에 충실하고 그들의 가르침을 삶의 현장에서 성실하게 실천하는 것을 기대한다. 그런 의미 기독교의 핵심교리를 타종교와 적당히 타협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절대적 신앙과 타종교에 대한 이해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곧 가장 기독교적인 것을 추구하되 타종교를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③타종교에 대하여 겸손히 열린 마음이어야 한다. 기독교를 전파하는 일은 실천적 영역에서 갈등의 요인이 되질 않는다. 선교 포교 전교는 표현의 차이일 뿐 모든 종교의 본질적 의무이다. 여기서 문제 삼아야 할 것은 선교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와 태도가 타종교가 실재하는 21세기적 상황에 어울려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기독교선교는 기독교의 정신을 바르게 가르치고 올바로 실천하는 일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무모한 갈등은 피해야 하며 그런 행동들이 신앙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우는 자제되어야 한다. 이는 선교의 열정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헌법도 보장하는 개인의 자유에 속한다. 시대상황에 적절한 지혜와 기술의 필요를 지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