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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아포라’ 혹은 ‘아디아포라 논쟁’은 기독교윤리학의 흥미로우면서도 반드시 그리고 충분히 고려해 볼 가치가 있는 주제이다. 관심을 가지고 무슨 말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1. 아디아포라(Adiaphora)란 무엇인가?
기독교윤리학에서 아디아포라란 하나님께서 명하시지도 금하시지도 않은 행동들을 의미한다. 곧 선이나 악으로 분류될 수 없는 행동으로 아무렇게 결정해도 좋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이는 최초 스토아학파에서 사용한 것으로 스토아철학자들은 ‘둘 중 어느 것도 아닌’으로 번역될 수 있는 ‘oudetra’ 라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제3의 범주’를 두었다. 이들은 유덕(有德)한 것 곧 자연의 이치를 따라 이성적(理性的)으로 사는 것은 선이고 부덕(不德) 즉 자연에 반하여 충동에 지배되는 것은 악으로 엄격히 배제하였다. 이 엄격한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중간에 있는 생명, 건강, 쾌락, 죽음, 병, 고통은 아디아포라- 어떻게 하든 상관없다-를 취하였다. 후에는 생은 ‘다소 바람직한 것’ 죽음은 ‘다소 좋지 않은 것’과 같이 아디아포라에서 구별하기도 하므로 아디아포라의 영역을 좁혀가기도 했다.
사람에 따라서 어떤 것은, 받아들일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는 것이 있다. 그런 일들은 행해도 되고 행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선과 악의 선택에 영향을 받지 않는 중립적이다. 그리하여 그것들은 해야만 하는 것(Thou shalt)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Thou shalt not)이 적용될 수 없는, 각 사람이 자유함으로 이것 또는 저것을 행할 수 있는 중립지대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2.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아디아포라의 관계
아디아포라의 문제는 애초 여가의 영역에서, 해도 되는 것인가 해서 안 되는 것인가 로 시작되었다. 춤, 공연, 음주, 영화관람 등이 이에 속한다. 이를 해도 되는가, 아님 하나님께서 금지하셨는가 아니면 이것들은 중립적인 것이어서 그리스도인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아이아포라의 문제인가? 이것이 문제의 쟁점이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 전영역으로 확산되었다. 때로 우리는 우리가 행동하고 있고 행동해야 하는 일에 대하여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를 고민한다. 적극적으로 행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는 많은 경우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모두는 무엇이 최선인지 자신의 책임하에서 결정해야하는 일들이다. 이때 우리는 성경의 일정한 범위 내에서 그리고 성령의 조명을 따라 예수께서 우리를 율법 아래 있는 종으로가 아니라 자녀로 삼아주신 그 자유함에 기초하여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각자 상당한 정도의 자유를 가진다면 서로 다른 결론이 가능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여기서 아디아포라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와 같은 것들은 딱히 어떤 결론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 알아서 해도 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즉 아디아포라의 문제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과연 그리스도인에게 아디아포라가 존재하는가? 이부터 쉬운 문제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디아포라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일을 할 때 이는 하나님과 무관하다고 생각하고 깊은 고민없이 그 일을 한다. 예를 들어 산책길을 거닐 때 오른쪽으로 갈 것인가 왼쪽으로 갈 것인가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을 묻는 사람은 없다. 술이나 담배를 비난하는 사람조차도 커피나 차까지도 금해야 할 부담을 갖지는 않는다. 그리 본질적이지 않은 문제에 대하여는 별다른 도덕적 숙고를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어떤 행동들을 한다. 이를 두고 그리스도인의 자유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윤리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반대하는가 아니면 지지하는가? 바로 이런 경우에 어느 한편에 병적으로 집착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아디아포라에 이르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의 생각은 좀 다르다. 이들은 비본질적인 행동 혹은 결정이라고 규정지은 것들조차도 다른 사람들의 삶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영역에서든 아디아포라를 인정하기 시작하면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사태로 확산될 것이다 는 점이다. 이들은 그것이 어떤 문제이든 개인의 자유 내지는 임의에 맡겨 버리게 되면 마침내 모든 삶의 영역은 그리스도께 대한 순종으로부터 이탈되고 말 것이다 는 것을 지적한다. 그들은 어찌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느 순간 자기 주인의 영역에 설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3.아디아포라 논쟁의 역사적 사례
①중세 아디아포라논쟁
첫 번째 논쟁은 종교개혁기에 발생했다. 그것은 1548년 로마카톨릭과 루터파신학자들 사이에 합의된 소위 라이프찌히가신조(Leipzig Interim)로 루터파를 대표한 멜랑히톤이 로마카톨릭의 견진성사, 종부성사 그리고 예배 중의 많은 의식 등 너무 많은 것을 양보했다는 것으로부터 촉발되었다. 그는 단지 아디아포라에 속한 것들만 양보했기 때문에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루터파의 내분을 야기시켰다. 교회안의 종, 촛불, 목사의 예복, 이런 것들은 어떤가 라고 반대 여론이 들고 일어났다. 멜랑히톤의 반대자들은 이런 것들이 역사적 상황으로부터 추상화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멜랑히톤이 아디아포라로 간주했던 것들도 신앙고백이라는 역사적 상황속에 존재하는 것들이고 동시에 이것들은 죄와 너무 깊은 관련이 있기에 아디아포라라는 순진함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반면 멜랑히톤은 다소 형태의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이미 초대교회에서 인정되어 있었고 그들 자신에게도 질서와 훈련에 유익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②개혁파내의 논쟁
두 번째 논쟁은 루터파와 칼뱅파 사이에 일어났다. 루터는 세속적 오락들을 즐길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 반면 칼뱅은 엄격하게 규정된 ‘제네바 훈련 규칙’을 고집하였다. 루터파의 마이스너는 세속적인 오락을 아디아포라의 핵심으로 간주하여 그 자체는 옳거나 나쁜 행동이 아니라 그것의 주체와 목적에 의하여 그리고 구체적인 경우를 통해 옳고 그름이 판가름 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건주의자들에 의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로 삼고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만이 선할 뿐 하나님에 의해 명령되지 않고 단지 인간의 쾌락을 위해 고안된 게임들은 죄악스러운 것이었다. 경건주의자들에게는 성령에 의한 욕망이 아니면 본성적으로 죄악된 욕망 두 가지만이 존재하였다. 이들에게 오락이 잘못된 것은 단지 그것의 오용이 아니라 오락 그 자체였다. 그들은 계시된 율법의 관점에서 하나님께서 관심을 두지 않는 대수롭지 않는 행동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행동에 대하여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통제를 가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명하지 않은 행동은 필연적으로 유익하지 않은 행동이요, 그러한 행동은 모두 나쁘다는 것이다. 명상 기도 찬양 등 예배행위를 통해서만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결론이었다. 이들에게 아디아포라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행할 수 있고 없고의 규칙들은 엄격하고 정교했다. 이러한 이들의 주장은 지나치게 극단적인 면이 있었음에도 당시의 해이된 생활방식을 되돌아보게 하는 긍정적인 면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4.해법
아디아포라의 문제는 그것이 표면적으로 논쟁이 되었던 시기와 상관없이 서로 상반된 요소들이 깔려있는 종교적, 윤리적 유형들에 있어서는 어느 시대나 갈등이 있는 것이 정상이고 보통이다. 역사적으로도 뉴잉글랜드의 청교도뿐 아니라 영국의 청교도와 초기 스코틀랜드 장로교는 아디아포라를 전적으로 거부했거나 최소화 하는 쪽에 섰다. 니케아신조와 사도신경, 두 가지 성례전인 침례와 성만찬, 자유로운 성경번역, 감독제등을 인정하는 렘버드신조는 비국교주의 교회들과의 일치를 위해 아타나시우스 신조, 예배의 획일성, 기도서의 사용 등을 아디아포라로 취급했다. 미국과 영국의 성장하는 다양한 복음주의 교회들은 본질적인 원칙들을 위해 작은 차이들은 무시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경향이다.
그럼 오늘의 우리는 어떤 결론에 이르러야 할까? 일부 경건주의자들의 입장과 같이 어찌 하나님과 무관하게 인간에게 전적으로 주어진 자유가 있을까? 그래서 굳이 신앙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쪽에 선다면 아디아포라란 인간의 자율을 증폭시키려는 사단의 속임수이다 는 말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실제 이들의 신앙적 공로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더 경건해 보이고 신앙적 측면이 있다고 하여 꼭 성경적이고 합당한 것은 아닌 듯하다. 다시 삶의 현장으로 돌아오면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일들이 있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유롭게 결정하도록 허용된 것처럼 보인다. 인간은 묘한 존재이다. 그래서 지으신 하나님께서도 이런 인간본성의 한계를 아시고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실과는 먹되’ -무한히 자유가 주어진 것 같지만-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하심으로 하나님을 기억해야 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놓으시지 아니했을까 싶다. 믿음으로 좆아 아니한 모든 것이 죄니라(롬14:23)는 말씀같이 아디아포라가 있느냐 없느냐는 논쟁보다도 하나님을 벗어나기 위한 아디아포라가 아니라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와 허용의 경우마다 믿음으로 행하고 그로 하나님께 영광이기를 바라는 참 경건한 자세가 아디아포라의 범위라면 범위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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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아포라(Adiaphora)논쟁 [베뢰아신문_신학산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