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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를 열기에는 너무 무거운 화두이기는 하다. 그러나 역설(逆說)의 미학(美學)이 있지 아니한가. 얘기를 더 진행해 보자. 우리나라가 OECD국가 중에서 몇 개 분야에는 1등이다. 정확히 지금은 순서에 어떤 변동이 왔는지 모르지만 한때 교통사고율이 1등이었다. 그래서 이 불명예스러운 일과 관련하여 우리네 운전습관이 구설수에 오르는 둥 말이 많았다. 에너지 소비율도 한때 1위였고 뭐도 뭐도 하며 대체로 별로 좋지 않은 일들에 자주 1등을 했다. 그런데 최근 이렇게 별로 자랑스럽지 않은 분야에 하나 덧붙여 자살률이 1위라는 보도가 있었다. 필자가 학교를 다니던 오래 전에는 말할 것도 없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은 대단히 자살률이 높은 나라라고 알고 있었는데 어느새 일본을 저만큼 따돌리고 우리가 일등이 되었다는 것이다. 원래 자살률은 대체로 사회복지제도가 잘 되어있는 북미국가의 덴마크 등이 높다. 그것도 흥미롭다. 사회심리학적으로는 사회보장제도가 너무 잘 되어있어 의욕적으로 살아야 할 동기가 약하다고 한다. 또 생의 의욕이 적은만큼 그만큼 시련에 유약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배경을 설명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내가 어렸을 때 자살은 사회의 큰 화젯거리였다. 그러나 이젠 그게 아니다. 자살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세간의 화제는 되지 못하고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다. -아무튼 죽일 놈들이 따로 있다. 이렇게 못살겠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는데, 오늘도 국정 최고자리에 있는 이는, 지난 1년을 회고하며 ‘모든 분야에서 다 잘된 한해였다’고 자평했다. 도대체 환상과 착각이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다. 권력이라는 것이 그렇게 대단해서 권력자들은 나오는 대로 지껄여도 되는지 알다 모를 일이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통계를 잠시 보자. 작년 2004년 한 해 자살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하루 평균 32명이었다. 서울에서만 하루 평균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이 1.3명이고 전국적으로도 한해 6512명, 하루 평균 17.84명인 것을 감안하면 높아도 너무 높은 수치이다. 연일, 50대 가장이 죽었단다, 20대 여대학생이 뛰어 내렸단다, 14살 여중생이 목을 매달았단다 는 말이 끊이지 않는다. 가장 최근에는 초등학생이 자살을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특별히 지난 1년 동안에는 자기 재산만해도 부자 랭킹 20위권의 한국 최대 재벌회사의 미국 유학중인 막내딸이 무슨 연고인지 해외에서 목숨을 끊어 듣는 이들의 마음을 놀라게 하고, 고위직을 역임한 현직 대학총장이 세간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을 참지 못해 목숨을 끊었고, 전직 대법원장을 역임하신 분이 뛰어내리기도 했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다. 흔히 자살은 살다 살다 도저히 살 재간이 없어서 죽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물론 잘못 알고 있는 것이지만- 그들이 무엇이 아쉽고 어려워서 스스로 세상을 떠나야만 했을까? 이 세상에는 ‘저토록 비참하게 고생하면서 살기는 왜 살아?’ 싶은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이 있는데 멀쩡해 보이는 이들이 자살을 하는 것은 우스갯말로 자살에 대한 도전이요, 모독같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당연히 그렇지 않은 것이 그들은 정말 세상을 살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너무 슬프고 삶의 아무런 의미도 의욕도 발견할 수 없고 오직 죽고만 싶었기에 죽고 말았다. 물론 최초의 직접적인 동기들이 있을 수는 있다. 어쩜 능력에 비해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았을 수도 있고 아무리 애써도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자기비하와 좌절, 낙심이 거듭되어 도저히 어떻게 더 이상 자아를 붙들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꼭 힘든 현실과 개인적 감정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환경이 멀지만 중요한 원인일 수도 있다. 현대사회의 극도로 개인화된 구조가 개인을 소외시키다보니 적절한 관계로 해결할 수 있는 것조차 관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혼자서 갈등하다 스스로를 죽음에 내던져 버리기도 하게 되는 것이다. 여태 혼자 지내다가 ‘이제 가야겠다’고 극단적인 판단에 이르렀을 때조차 누구와도 의논하지 아니하고 외로움과 슬픔의 극대화 상태에 자신을 내던져 버리게 된 경우이다. 전형적인 사회적 소외이다.
문제는 그것이 어떤 연유에서 비롯되었든지 이 극단의 경우를 위하여 국가가 별로 해결할 의사가 없고 능력도 없고 오히려 살맛을 빼앗아버리므로 더 부채질하고 있지 않느냐는 점이다. 정말 중요하고도 심각한 문제이다. 최근 필자의 지인가운데 어떤 이가 한 말이다. 그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오랜 친구인 나 때문에 교회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을까 사회적으로 괜찮은 자리에 있는 그는 ‘교회가 나서지 않으면 길이 없다’고 했다. 옳은 이야기 이다 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 쉬워 ‘내 탓이요’가 아니라 교회가 결코 작지 않은 우리사회 공동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것은 교회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교회의 책임을 묻고 있는 말이다. 목사인 나의 귀에는 ‘교회가 이렇게 많은데 웬 자살자가 그렇게 많으냐’는 말로 들렸다. 과연 오늘 한국교회가 개인의 소외를 위하여 얼마나 고민하고 이의 극복을 도와주고 보다 더 근본적으로 생의 의욕을 회복시켜주는 일에 무슨 역할을 하였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교회조차 여러 이유로 개인의 소외를 부채질하고 삶의 허탈과 무의미를 재촉하지는 않았을까하는 반성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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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주일신문시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