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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성탄절 캐럴은 해마다 변함없이 되풀이 되어도 거기에는 신비로움이 가득하다. 그 아름다운 노랫가락 속에는 사람이 섣불리 범할 수 없는 경건함과 거룩함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날은 본질상 하나님과 동등하신 하나님이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취하사 사람들과 같이 되어 사람들 가운데 거하신 날이다. 다른 성경도 이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영원 전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이신 하나님이 자기 땅에 오셨으나 누구도 자기를 알아주지 않고 영접지도 아니했다고 전한다. 성탄절은 영원히 영원토록 영존하시는 하나님이 당신이 지으신 사람의 모습을 취하고 세상에 오신 날이다.
어떤 사람이 너무 너무 꽃을 사랑하고 곤충을 사랑하고 개나 짐승을 사랑하고 사랑하여 마침내 그 사랑을 이루려 한 송이 꽃이 되었다면 그것을 믿을 수 있을까? 천하의 미물 같은 곤충이 되고 개나 소같은 짐승이 되었다면 이를 과연 용납할 수 있을까? 동화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이다. 이렇게 인간들은 피조물이 다른 피조물의 형체를 취하는 것마저도 감히 용납하려 않으려하면서도 하나님이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에 대하여는 약간의 감동만으로 이를 꿀꺽 삼키려 한다.
20세기 최고의 신학자는 아무래도 칼 바르트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는 1,2차 세계대전을 주도한 독일 고백교회의 목사이다. 그는 두 눈으로 인간에 의한 인간의 잔혹함과 만용과 무지와 광포를 보았다. 한 인간에 의해 그가 살았던 역사 속에서 참혹한 전쟁이 일어나고 600만이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한 선량한 민족이 살육을 당하는 차마 인간으로서는 저지를 수 없는, 있어서는 안 되고 있을 수 없었던 그러나 분명히 있었던 비인간화를 보았다. 신은 인간을 버렸고 인간은 더 이상 신과 상관하지 않았다. 인간의 세상, 인간의 역사, 인간에게 더 이상 신은 의미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의 하나님을 역사 속에서는 찾을 수 없는 하나님으로 이해했다. 찾으려 찾으려 하면 숨어버리시는 하나님이었다. 세계대전을 경험한 바르트에게서 나온 이러한 하나님 이해를 소위 실존주의신학 혹 초절신학, 역사 속에서 파악하려고 하면 초월해 버리시는 하나님에 대한 위기의 신학이라고 한다.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이해가 20세기 후반의 절반까지를 지배했다. 누구도 쉬 하나님을 역사 속에서 이해하려 하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전화(戰禍)로부터 회복되어 공장이 돌아가고 군수물자 대신 생필품이 시장에 나돌고 백화점에는 생활의 여유를 나타내는 화려한 장신구들이 범람하고 군가 대신 발랄하고 아름다운 음악이 새로운 자리를 찾게 되었을 때 비로소 바르트에게도 변화가 일어났다. 그의 후기 작품 중 하나인 ‘하나님의 인간성’이 그것이다. 긍정할 수 없었던 역사는 기억에서 잊혀져가고 다시 역사가 긍정되고 인간이 긍정되기 시작하였다. 바르트와 에밀 부르너의 논쟁의 초점이기도 했던 이 계시와 역사의 문제는 바르트의 이 같은 전향으로 인해 전기 바르트와 후기 바르트는 극명하게 구분이 된다.
신학의 신학성이란 무엇일까? 신학의 발원은 무엇인가? 역사 바깥에 계시는 하나님이 자기를 계시하셨다. 그리하여 신은 모든 계시의 원천자이시며 근원이시다. 자고로 신학은 하나님을 주목하여야 하고 하나님에게서 출발하여야 하고 그 종착점이 하나님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만물을 볼 수 있는 훈련과 자세는 신학의 기본이다. 이는 곧 신본주의신학이다. 그래서 신본주의신학은 명분이 분명한 것이 장점이다. 하나님의 시각, 그의 관점, 그의 뜻과 그를 ‘위하여’는 절대양보 할 수 없는 신학의 자리이다.
그런데 정작 그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리를 버리고 인간의 형체를 취하셨다. 인간이 스스로 포기하고 거부한 역사를 도리어 그는 긍정하시고 거기로 임하셨다. 인간이 포기한 인간과 그들의 역사를 그는 기꺼이 입으시고 그 자리에 오셨다. 그는 이렇게 오셔서 모욕을 당하시고 마침내 죄인 중에 흉악한 자같이 죽으셨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나는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아니하고 섬기려하고 도리어 많은 사람의 대속물이 되려한다’ 하신다. 지독한 역설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은 다름 아닌 인간이 스스로 저버린 인간과 인간의 역사이다. 구유가 그곳이다. 주는 구유에 오셨다. 구유는 성탄절의 자리이다. 성탄절은 하나님이 인간과 인간의 역사를 긍정하신 자리이다. 그래서 성탄절에는 모순과 역설의 순수 미학(美學)이 실제 한다. 거기서 신과 인간은 하나가 되어 인간은 신의 그 자비하심과 은혜와 사랑에 감읍하여 눈물로 감사하고 신은 진정한 신의 영광과 존엄으로 충만해진다. 그래서 그날은 신비로운 날이고 사랑의 날이다. 동방의 박사들이 드린 예물은 인간들 사이 사랑의 표시가 되어 되돌아왔다. 부모가 자식에게 자식들이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부모님께 평소에도 사랑하던 연인들이 그 날에는 더욱 사랑을 표시한다. 벗들이 서로 사랑을 표시하고 아쉬웠던 이들에게 주님께 드리듯 사랑과 우정과 존경의 선물을 전달한다. 아! 그리고 잊고 있었던 우리들 주위의 춥고 배고픈 이들을 애써 찾아야 하는 이유도 바로 주님이 보여주신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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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모습을 하신 하나님[주일신문시론]
인간의 모습을 하신 하나님[주일신문시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