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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가 남아있는 생생한 이야기다. 연세가 90인 한 할머니가 동생의 딸과 함께 요양원을 찾았다. 우리를 찾는 고령의 어르신들 가운데 기막힌 스토리 하나 없는 분들은 열에 하나 백에 하나도 없다. 할머니는 왜 어떻게 어떤 경로를 통해 당신이 낮선 곳에 오게 되었는지 파악이 되지 않아 불평이 여간 아니었다. 원래 그렇다. 요양병원이든 요양원을 잘 이용하려면 첫째도 둘째도 본인의 적응력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자신에 대한 대책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적응하려기보다 불편해 하신다. 실상 엄청 좋게 바뀐 환경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더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태도가 돌변하였다.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들을 지켜보던 할머니가 갑자기 ‘난 어디서 자노?’ 하더니 계속하여 ‘이렇게 좋은 데가 또 어딨노’ 하며 너무 다행스러워 하였다. 표정이며 말씨가 완전히 달라졌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걱정하던 우리로서도 무척 감사한 일이었다.
기실인즉 할머니는 20세 남짓 출가하여 일년 정도 살다 전장에서 남편을 잃었다 했다. 무려 70년을 피붙이 하나 없이 홀몸으로 살아왔던 것이다. 후담까지 보태면 부산의 신발산업이 한창일 때 수십 년간 공원생활을 하셨다.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몇 번 일본말을 구사하시더니 일본노래도 곧잘 불렀다. 더 기가 찬 것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시조들을 완전 꿰뚫고 있었다. 젊은 날 공장 기숙사에서 친구들이 시조 듣겠다고 빙 둘러앉았다고도 했다. 같이 생각하고픈 이야기는 다음이다. 어떻게 할머니의 태도가 돌변하였을까?. 우리는 할머니를 바꾸기 위한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 다만 일과의 마지막 순서로 가요를 불렀던 것이 포착된다. 나는 여태도 잘 모르지만 소위 여기 시설의 어르신들이 가장 신나한다는 시간이다. 먼저 33년 군생활을 주임원사로 전역한 어르신이 마이크를 잡았다. 중도 이상의 꽤 심한 치매 증상을 보이는 어르신이 음정 박자 정확하게 가사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얼굴에 희색이 만연해졌다. 마침 문제의 할머니가 젓가락 장단을 시종 잘 맞추고 계시기에 마이크를 돌려 드렸다. 신명 넘치는 노래가 모니터 화면과 함께 흘러 나왔다. 뭔가 애환이 느껴졌다. 노래에 열중하던 이이가 다시 자세를 바꾸더니 일어서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전통 춤사위가 아닌 댄스였다. 그러더니 넋을 잃고 지켜보던 총각집사의 손을 잡아 너무도 자연스럽게 돌려대기 시작하였다. 나는 춤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을 몰라 언급하기 어렵지만 지루박인가 뭔가라 했다. 아무튼 90세 할머니와 멋쩍어 하는 총각의 페어댄스가 10분가량 흘렀다. 즉석 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이것 하나였다. 그러나 몇 시간 지나서야 짐작되는 바가 있었다. 할머니의 젓가락 장단이었다. 청상과부로 외롭게 살아오며 익힌 옛 흥이 살아났던 것이다. 갑자기 모든 것이 만족했고 긍정적이고 좋아 보였던 것이다. 난 평생 오락다운 오락을 해보지 않고 지냈다. 친구들의 대장 노릇하다 보니 중,고,대학시절 고고장도 다니고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배울 수도 있었겠으나 한 번도 가보지도 해보지도 않았다. 주변 환경은 언제나 열려 있었지만 내겐 그렇게 할 마음도 의지도 없었고 열심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세상과 다르게 살아 온지가 너무 오래되었던 것이다. 역시 오래 전 기억이다. 대학1년 때 버스에서 한 중학교 후배를 만났다. 어깨깨나 하는 녀석이었다. 열심히 이야기를 건네던 녀석이 그랬다. ‘형 너무 많이 바뀌었네요’ 욕이 들어가지 않으면 말이 되지 않는 언어생활에 누구 하나 예외가 없던 시절이었다. 20대 중반 서울에서다. 버스 안 학생들의 엄청난 욕설 비어 속어에 대책없이 힘들어 하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입에 담고 있던 욕과 거친 말이 소리없이 사라졌다. 차라리 나이가 들어 다시 말이 많이 거칠어진 것을 보고 놀란다. 내가 눈치 볼만큼 어려운 이가 주위에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어울리지도 않는 것을 흉내 내는 것은 멋쩍은 일이다. 성경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하셨다. 마음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처사가 다르고 삶의 방향이 다르고 돈의 씀씀이가 다르고 용도가 다르고 옷맵시가 세상과 다르다. 그렇게 산 지 오래 되었다. 연세 많은 어머니도 다른 할머니들과 관심이 너무 다른 것에 놀란다. 어머니의 대화는 다른 어르신들의 대화와 완전 다르다. 그래서인지 당신이 자꾸 소외 되는 것을 자주 지켜본다.
글. 이동훈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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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
내가 예수 믿어 얻은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