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7. 03.
 믿음의 진화
글쓴이: 이동훈  날짜: 2020.05.04. 10:55:23   글쓴이IP: 125.134.145.154
보통의 기독자들은 ‘진화’란 단어에 매우 예민하다. 나 역시 중 3때부터 등장하는 생물과목의 ‘진화’가 기독교신앙에 열심 하였던 나를 아주 곤혹케 하였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당시 시험 때에 차라리 나는 창조론자다는 틀린 답으로 믿음을 지키고 싶었던 기억이 또렷하다. 힘들어 하던 과학과목 중 물리 화학에 비해 생물은 꽤 흥미로왔으나 더 정을 붙여 공부를 할 수 없었다. 따라서 ‘진화’의 의미를 감안하면 믿음에 무슨 진화가 있나 싶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믿음의 ‘발전’ 혹은 ‘심화’로 바꿔 생각도 해봤으나 첫 발상이 ‘믿음의 진화’였다. 내 믿음의 발전과정을 그려 본다. 지난 50여년의 그 믿음은 늘 항상 같은 모양이 아니었다. 믿음은 여러 다른 모양을 띠고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였다.
1.내 신앙의 원시 모습은 60년대 중후반 한국교회의 모습 그대로 꽤 보수적 근본주의 형태였다. 해방 후 교회는 한국을 찾은 서방선교사들이 전한 복음으로 소리 소문 없이 민중에 전해지고 새로운 세계에 눈이 열린 민중들은 선교사들이 전해주는 새소식과 그들이 세운 교회 학교 병원 양로원 고아원과 구제품에 감사하며 신문물과 함께 복음을 받아 들였다. 때마침 조용기 목사님 등의 유명 부흥사들이 맹활약한 대규모 천막집회 시대였다. 거기는 예수의 은혜가 선포되었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구속사건이 전해졌다. 믿음의 심화과정은 그 은혜와 사랑을 얼마나 더 깊이 느끼냐는 것이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만큼 착한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좋은 일을 해야 한다는 착한학생 컨셉 시대였다. 행동거지 또한 매사에 신중하려 하였었다. 2.그 신앙은 여러 단계를 거치며 발전 진화 되었다. 예수 믿는다와 예수 믿게 되었었다는 단순하지만은 않았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데로 사람으로 오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 그리스도라고 믿었으나 그게 전부가 아닌 것이 지식에 눈이 열린 시기의 중학생에게 동정녀 탄생, 신인양성론과 부활 등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과 의문으로 이어졌다. 3.중고시절 성경을 배우고 읽고 감동 받음과 동시 질문하는 과정이 있었다. 예수믿는 학생이라는 정체성은 늘 항상 모범생 모드로 연결되는 것은 여전한 부담이었다.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복음이 어떤 관계인지 미처 배우기도 전에 율법이라는 상당한 요구는 늘 미완의 숙제였다. 이도 성경이고 저도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더 이의를 달 수 없은 채 무거운 마음은 당연한 과제로 계속되었다. 4.하나님에 대한 헌신을 다짐하며 그지없이 즐거운 교회생활이 있었다. 목사님이 되고 싶다는 강한 의욕은 점차 구체화 되었고 영웅적인 선교사의 헌신은 아름답게까지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5.내가 선택한 신학교는 미군이 지어준 낡은 목조건물이었으나 외양과 상관없이 진학과 함께 열린 지식세계는 한정 없이 확장되어갔다. 새로운 신학사조랍시고 봇물처럼 밀려들어온 70년대 자유주의신학자들의 번역서들은 나의 의식세계를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이 신학의 세계에 빠져들게 했다. 동시에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의식은 신앙과 신학의 좌우충돌을 10년 이상 책과 머릿속에서 계속하게 했다. 개인적으로는 신학의 르네상스기였다. 신학적 사고를 배웠고 여러 다른 입장들의 차를 느끼며 신학이라는 매력에 흠뻑 빠졌었다. 자연스레 내세지향적인 보수정통신학에 비해 현실참여와 정치적 저항이 대세였던 세계적인 영향을 고스란히 받으며 한국사회의 모순과 정치구조에 대하여 고심하며 자신의 장래에 대하여도 많이 고민하기도 했었다. 6.2~30대 시절 전부는 나 영혼에 대한 갈급 못지않게 사회의식이 엉겨 둘은 구분이 되지 않은 혼돈 그 자체였다. 영혼에 대한 갈망과 청년의 외롬이 뒤섞여 있었고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비판적 안목은 먹고 살아야 하는 장래에 대한 대책 없이 가치에만 몰두케 했던 시기였다. 7. 30대 초다. 안수를 받고 목회에 헌신도 했으나 육체의 한계와 혼란도 만만찮은 도전이었다. 사회참여라는 시민적 자각과 인간에 대한 한계에 몰입한 문제의식의 시기이기도 했었다. 8.신혼 초 두 아이를 잃었다. 곧 시무언을 만나 그 원시적 복음 앞에 내 인생은 완전히 꼬꾸라졌고 루터 못지않은 격한 경험으로 진리를 확신하게 되었다. 처절히 인간의 한계, 죄인 됨,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한 실존 속에서 맹렬하게 싸웠다. 인간의 재발견과 구원자의 의의발견이 삶의 전부 시기였다. 9. 화려한 목회의 성공을 뒤로 한 채 60대 중반을 지나는 지금까지 영혼의 안식과 평화에 대한 갈망을 계속하며 주의 나라를 사모한다.
글. 이동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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