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7. 03.
 노인의 권리
글쓴이: 이동훈  날짜: 2020.04.19. 15:38:01   글쓴이IP: 125.134.145.154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정말 좋은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에 못지않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영화가 있다. 제목과는 사뭇 다르게 유혈이 낭자하는 스릴러물이다. 80회 아카데미상에서 주연상을 빼고 작품상을 비롯하여 휩쓸었다. 철학자 샤르트르와의 이상적인 사랑으로 유명한 시몬느 드 보봐르도 노인에 대하여 두꺼운 책을 썼다. 노인의 삶은 꽤 불편하다는 내용이다. 나도 여기서 몇 차례 노화니 노인 경로 또는 내 나이든 어머니에 대하여 글을 쓴바 있다. 그 어머니를 중심한 최근의 소회다.
1.노화는 참 비참하다. 노화, 말이 쉬워 노화지 소위 노화, 늙는다는 것은 어떻게 감당이 안 되는 세계이다. 흔히 나이 들어가며 옛날 같지 않다는 말을 한다. 40대 후반, 50대만 되어도 글 읽기가 이전 같지 않고 좋아하던 축구는 다치기 십상이다. 젊은날 교회생활을 하며 시도 때도 없이 메뉴에 올랐던 등산은 점차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이 정도의 변화를 두고 노화 어쩌고저쩌고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실제의 노화는 전혀 고상하지 않다. 인간이 완전히 망가져가는 과정이다. 나의 어머니는 보통이상으로 총명한 분이었다. 살아오며 그 지혜와 순발력에 눈이 휘둥거려졌던 때가 많았다. 어머니는 평소 자식을 위해서도 당신 몸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던 어머니가 십여 년 전 어느 토요일, 주일준비 청소를 하는데 구경만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당신은 손에 걸레들 쥐고 무엇을 해도 하는 분이었다. 그런 그분이 묘한 표정으로 보고만 계셨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그러려니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더 무슨 말이 필요 없다. 노화는 이렇게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도록 사람을 망가뜨린다. 더 심각하게는 해석이 안 되는 상황에 이를 때이다. 영 어울리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하실 때가 있다. 늘 상 곁에 있는 나나 감지할 아주 작은 변화이다. 아무도 모른다. 나만, 그나마 조금, 아주 조금 평소와 다르다고 느낄 뿐이다. 잠시 후 상황이 정리되고서야 이해가 되는 미세한 변화다. 어쩌면 근육이, 뼈가 약해지듯 인지도 약해지고 흐려지고 헝클어지는 것 같이 전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하는 경우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우리들의 기억 속에 있는 어머니가 아니다.
큰 교회의 아주 멋있고 고명한 목사님이 계셨다. 널리 존경받는 분이셨다. 그 목사님 소식을 아들 되는 장로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아버지 똥오줌을 내가 몇 달 받았다 하셨다. 정말 난 그때 현기증을 느꼈다. 그 멋진 목사님이……. 노화의 실상 나이 듦은 어마무지하게 황당하고 비참한 상황이다. 3.그것을 전적으로 가족이 부담했다. 가족 중 어느 누가 자기 삶을 포기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어머니만 해도 대화가 문제없고 약을 챙겨 놓으면 착오 없이 드시고 식사도 그렇다. 그러나 어느 날 손에 쥐어 드리지 않으면 챙겨 드시지 못할 날이 올지 모르겠다. 큰 돈 들여 24시간 간병인을 들여도 그렇다. 어디 천사 같은 사람이 있어 내 엄마 아버지처럼 살 갚게 돌봐드릴 수 있을까. 황망하기 짝이 없는 기대이다. 맞벌이를 해야 하고 그나마 아들 딸 여럿일 때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국가가 노인세대 보호를 법적으로 의무화해야 하는 속사정이 이렇다. 우리나라에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실행 된지도 어언 십 수 년이 지났다. 각양의 제도가 마련되어 필요한 국민들을 지원하고 어마어마한 재정이 투입된다. 우리도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하여 요양병원도 해보고 지금은 주야간보호센터와 요양원 방문요양 사업을 한다. 이따금 후회가 밀려온다. 교회가 여력이 있어 넉넉하게 운영할 수 있으면 얼마나 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젊은 날 성장지상주의에 빠진 한국교회에 등을 돌린 것이 여한으로 남아돈다. 그때는 교회가 어떻게 세상을 섬길 수 있을지를 잘 몰랐다. 노인들에게는 세상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충분하다. 우리 어린 시절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는 살이 녹고 뼈가 어스러지도록 죽을 고생을 하며 우리를 키웠다.
글. 이동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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