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7. 03.
 중용(中庸)의 예술
글쓴이: 이동훈  날짜: 2020.04.12. 14:42:57   글쓴이IP: 125.134.145.154
중용은 근대철학의 기초를 놓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심사상이라 할 수 있다. 중용은 지나침과 모지람 사이의 중간상태를 가리킨다. 그러나 단지 산술적 중간이 아닌 가장 적절한 상태를 지향함으로 나쁜 감정이나 행동까지 중간지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헬라의 철학자들은 마땅한 정도(正道)를 초과하거나 미달하지 것을 악덕으로 보며 중도를 지향하고 그 중간을 찾는 과정을 참다운 덕으로 보았다. 중용에 이르기 위해서는 인간의 구체적 상황에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할 수 있는 지성적 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았다. 동양으로 눈을 돌려보자. 중국의 공자는 그의 손자 자사를 통해 중용을 설파했다. 인간의 행동을 중시하는 유교는 중용을 인간행동의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유학에서 중용은 현실에 적용되는 행도에서 최선의 길이였으며 형이상학적 개념에서 출발하여 가치론적인 수양방법을 담고 있다. 즉 공자 사상을 집대성한 유교에서의 중용은 서로 다른 가치개념의 중간인 중(中)을 인식하여 이를 실행하는 개념으로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중용은 극단 혹은 충돌하는 모든 과정에서 중간의 도를 택하는 유교 교리가 되어 신중한 실행이나 실천을 뜻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중용은 고대헬라나 중국뿐 아니라 인도철학에서도 비슷한 개념이 발견된다. 여기서는 중용을 더 길게 소상히 이야기할 시간도 지면도 부족하여 그만 하고 현실로 돌아가 보자. 여야가 진보와 보수, 보편주의와 선별주의, 평등중심의 사회주의와 자유중심의 자유주의 등으로 극열하게 대치하고 있는 우리사회다. 정치나 경제처럼 거의 사회 전영역이 비슷한 형편이다. 그러나 이렇게 대치하고 있는 두 진영을 더 깊이 살펴보면 지지와 찬반이 엇비슷한 것을 알 수 있다. 좌우 극열한 층이 각각 30~35%대이고 그 중간에 30% 가량의 중도층이 있다. 문대통령이 그랬다. 겨우 41%의 지지로 당선된 후 취임 일성으로 자기를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에게도 귀 기울이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그러나 무슨 연유인지 그는 지난 3년여 철저하게 지지자들만을 대변하는 한편의 대통령이었다. 여전히 이념으로 남북이 분단된 상태에서 국내마저 둘로 나누어져 국정은 늘 다른 한편의 도전을 받아 안정적이질 못했다. 정당의 목적은 정권획득이다. 정권을 획득하여 표방한 정치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기술한바 같이 왜 동서의 현자들은 한결같이 중용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보았을까? 정치의 진정한 핵심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정권을 획득할 수 있을까? 그것이 중도층을 끌어안는 것이라는 것에 이의가 없다. 정권을 획득하려면 고정적 지지세력을 기반으로 중도로의 외연이 필수다. 다수의 지지를 확보해야 정권을 잡을 수 있고 그 정권을 연장할 수도 있다. 정치적 뜻을 펼쳐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중도흡수가 정치의 예술이라는 교과서적 답이다. 다시 말해 중도를 흡수하는 기술이 정치적 예술이다. 그 중용은 상당부분 내 생각 내 주장을 양보하는 것이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억지로라도 포용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중도를 얻을 수 없다. 따라서 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정권획득의 기회도 없다. 여기의 그 양보해야 하는 만큼은 소중한 나의 가치요 신념이자 자산일지 모른다. 그러나 쓰리고 아파도 양보하지 않으면 포용할 수 없고 포용하지 않으면 총이나 칼 등 폭력적 수단이 아니고는 정권획득은 어렵다. 이 모두 선과악 중간의 회색지대에 익숙하지 않는 신앙인으로는 어려운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실정치는 다른 것 같다. 지난 몇 차례 기독교정당이 나왔고 금번에도 기독교를 표방하는 극우정당이 나왔으나 지지율이 기대만 못하다. 의회진출에 실패할 모양새다. 권모와 술수 양보와 타협이 생물처럼 조석지변으로 변하는 현실정치를 신앙의 선과악 처럼 오해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르게는 내 안에 있는 가치와 진정성만을 고집할 뿐 중용에 미숙하였던 것이다. 신앙은 흑백이 분명하나 인간이 하는 정치는 중용, 통합이 더 적격인 것 같다. 진보든 보수든 좌든 우든 자신의 것에만 닫혀있으면 희망이 없다. 정치는 또 다른 통합의 길이 맞다.
글. 이동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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