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7. 04.
 나는 꼰대다
글쓴이: 이동훈  날짜: 2020.02.05. 21:59:42   글쓴이IP: 125.134.190.244
‘꼰대’는 본래 아버지나 교사 등 나이 많은 남자들의 못마땅한 모습을 가리키는 학생이나 청소년들의 은어이다. 당연히 별로 좋은 표현은 아니나 그렇다고 몹쓸 말도 아닌듯하다. 이 요상한 말의 진실을 살펴본다. 왜 무엇 때문에 ‘꼰대’가 생겼는지 그 배후를 추정해 보고, 또 그렇게 신사적이지도 않은 이 말은 무엇을 기대하는지도 관심이다.
‘꼰대’는 교사이든 아버지든 또 제삼의 상관없는 어른들이든 사용자들의 마음에 들지 않다는 것이다. 그 대상이 아버지든 선생님이나 혹 주위 어른들이든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맞대고 욕을 하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약간 물러나 사실상 못마땅함을 나타내어 은근히 비난하고 욕하는 것이다. 여기서 조금 더 심해지면 욕지꺼리가 될 것이나 여러 가지 이유로 그러지 못하고 이 정도에 머무르는 사실상의 욕이다. 이리저리 따지고 보면 많이 참으면서도 할 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 이들은 무엇이 그리 못마땅할까? 남자어른들은 어떠했길래 이 못마땅한 자리에 이르렀을까? 그 남자어른들은 어떻게 변해야 꼰대를 면할 수 있을까.
1.꼰대에 대한 셀프 진단의 첫째는 꼰대는 하나 같이 ‘저 어린 것들이...’ 라고 하는 것 같다. 나이를 판단의 근거에 두는 것이다. 나이는 삶의 중요한 기준이다. ‘선생’이란 단어가 그러하다. 선생은 앞서 태어난 사람이다. 어렵게 생각하고 귀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선생님이라 하지만 실은 선생님을 문자 그대로는 단순히 앞서 난 사람이다. 일본에서는 선생이 굉장한 존칭어이다. 목사도 선생으로 부른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사람을 존대하여 그 앞서 태어난 사람으로 표현하는 것은 그만큼 살아본 날들이 소중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는 어려서 보다도 세월과 함께 더 깨달아지는 사실이다. 경험이 적을 때는 경험이 적은 것으로 인하여 알 수 없던 것을 삶의 연륜을 거듭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고 반성하게 된다. 이 새로운 배움과 깨달음을 보다 성숙하게 소화하지 못하고 어른들이나 선생님들 부모님들도 곧잘 ‘어린 것’이라고 어린 사람들을 하대(下待)하듯 한다. 어려서 모르는 것을 지적한 사실에 근거한 말이지만 그 말이 듣기 싫은 욕 비슷한 말이 되고 만 것이다. 어디 나가서 ‘어린 것이....’라고 해보라. 당장에 싸움이 벌어지고 만다. 이 사실상 맞는 말이 영 아닌 말이 되어버린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이 잘못일까. 혹시 어리다는 것을 지적하는 어른들의 거만한 태도가 못마땅하여 나온 말은 아닐까 싶다. 사실은 서로 가르치고 싶은 것이다.
2.꼰대들은 종종 너희가 ‘뭘 알아’라고 한다. 지식이 얕고 판단이 영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역시 상당부분 연륜에 관련 된 것이지만 약간 결이 다르다. 앞서 ‘어린 것’은 연령에 관한 것임에 비해 ‘너희가 뭘 알아’는 지식의 분량에 관하여서다. 이는 또 시빗거리를 제공한다. 부모가 형편이 안 되어 공부를 많이 할 수 없는 이들도 있고, 머리가 안 되어 마음같이 공부를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런 그게 무엇이 잘못 되었느냐고 불만을 토로 할 수 있다. 그러나 셀프 꼰대는 또 다시 꼰대들을 변호한다. 이 역시 굳이 험한 말이 아니다. 살아 보니 ‘더 많이 아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의 다른 표현이었지 않을까. 그리고 세상은 더 많이 살아 더 많이 알고 있는 ‘나’를 인정해 줘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 다른 표현이지 않을까 이해가 앞선다.
3.꼰대들은 말을 막 한다. 젊은 세대가 보는 꼰대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교양도 없고 말을 가려 하지 않는다. 왜 젊은 사람들의 눈에 어른들은 밥맛없는 모습이 되어 버렸을까. 셀프 꼰대는 생각하기를 그들은 험한 세상 가난한 세월을 힘겹게 살아온 탓에 넉넉함을 잃고서 내면의 트라우마를 넋두리 같은 내 뱉음으로 대신하고 있는 것이리라 싶다. 아쉬워도 꼰대가 되도록 살아온 날이 보상 받을 수 있는 길이 마련되었더라면 그들의 언어와 표정이 좀 더 낫게 순화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욱 당신들이 살아온 고난과 아픔이 무심하게 외마디를 뱉어내지만 실은 꼰대를 보고 꼰대라고 평가하는 젊은 세대들 역시 장차 꼰대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역시나 또 다시 넉넉할 것 같은 하나님의 나라를 그리워한다.
글. 이동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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