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7. 06.
 초월의 두 얼굴
글쓴이: 이동훈  날짜: 2019.10.27. 15:50:19   글쓴이IP: 125.134.171.232
‘초월’‘안초월’ 그리고 ‘못초월’의 개념은 원초적으로 베뢰아의 몫이다. 그 연원은 시무언 김기동목사에 기인한다. 이는 원래 기독교 정통신학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시 말 하지만 ‘추월’ 개념이 아예 기독교신학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게 말하면 베뢰아를 성경에도 없는 개념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격이어서 대단히 위험하다. 일반으로 하여금 ‘아, 베뢰아는 성경에 없는 것이구나’ 라고 잘못된 이해를 하게 한다.
‘초월’은 넘어선다는 뜻이다. 예로 하나님을 넘어서지 말라는 말은 하나님을 초월하지 말라로 바꾸어 쓸 수 있다. ‘초월’이 한자말임에도 넘어서다에 비해 그 뜻은 오히려 더 쉽고 분명해지는 측면이 있다. 초월에 비하여 ‘안초월’‘못초월’은 그 반대 개념이지만 그리 간단 하지만 않다. 설명해 보면 이렇다. 예로 시무언은 ‘초월하지 않는 하나님’ 이란 책을 썼다. 하나님은 뭔가를 넘어서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고 임의로 뭐든지 할 수 있는 분이시데, 그 하나님은 스스로 세우신 어떤 법칙을 임의로 넘어서지 않는다. 무너뜨리지 않는 어떤 원칙이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믿음을 초월하지 않는다든지 하나님은 성령을 초월하지 않는다고 하면 보다 쉽게 그 뜻이 분명해 진다.
어쨌든 하나님은 인간을 초월하지 않는다, 혹은 하나님은 인간의 의지를 초월하지 않는다 하면 별 차이가 없어 보임에도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도록 어려워진다. 인간이해가 단순하지 않음이어서 인지 하나님은 인간을 넘어서서 마음대로 하지 않으신다 라고 해도 비슷하게 좀 더 깊은 묵상이 필요하다. 아무튼 하나님은 무엇을 초월하지 않으신다. 다시 예를 들어보자. 하나님은 예수 그 아들의 피를 초월하지 않으신다. 그 아들의 피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심에 무엇도 이를 초월 할 수 없다. 그 무엇도 아들이 베푸는 은혜를 가로 막을 수 없다. 또 다시 생각을 확장해보자. 인간이 만들어 가는 문화와 문명은 그 주체인 인간과 함께 오랜 묵상의 과제다. 인간은 하나님을 초월할 수 없다. 인간이 만들어 놓고 만들어 가는 문화와 문명은 신앙의 사람들이 극복해야 하고 초월하고 나아가야 하는 과제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문화와 문명의 필요와 한계를 극복 초월하고 나아가야 한다. 그 만큼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세상을 넘어서 주가 다스리시는 초월의 세계를 가까이 하게 된다. 그러나 바로 이 순간이야말로 초월이 무리수가 되는 순간이다. 그러면 과연 이렇다고 초월이 무죄일까? 초월해야 하고 초월 할 수 있는 것을 초월 했을 때 발생 할 수 있는 문제는 없을까? 문화와 문명을 초월하면 어떻게 될까? 비문화, 비문명이 된다는 것인데 이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고 문화와 문명을, 그 안에 있는 인간의 모든 관습과 규율들을 초월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 그러나 이는 괜한 논의 일뿐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지구를 떠나야 하는 경우다. 인간이기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이기도 하다.
신앙의 본류를 찾고 지키기 위해 신앙의 윤리화, 도덕화를 경계하고 더 넓게는 문화와 문명을 초월하였을 때 돌아오는 부메랑은 결코 작다 할 수 없다. 인간은 인간을 초월하지 못하고 인간이어야 한다. 따라서 인간은 인간이라는 대전제를 초월하기 어렵다는 문제와 충돌한다. 결국 인간은 원론적으로 문화와 문명 윤리와 도덕을 초월할 수 없다. 초월해야 한다는 원리만 남아 있고 실은 초월 함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어떤 것으로도 지나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면서 동시에 보통의 인간으로 계속 살아야 한다. 보통의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자녀로서 새로운 삶의 과제를 가지고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사는 것이다.
글. 이동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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