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7. 06.
 야고보서의 핵심
글쓴이: 이동훈  날짜: 2019.09.12. 00:38:45   글쓴이IP: 121.145.108.251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약1:22-25)
야고보서를 마주하는 두 가지 감회다. 첫째는 5장으로된 짧은 이 서신은 마음속에 새겨 놓음직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어쩜 이렇게 타당한 말씀이 있을까? 감탄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과연 성경이로다 싶을 때가 자주 있다. 물론 여기 감탄하는 그 성경이 어떤 성경인지는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둘째는 이렇게 그럴싸하고 내용이 묵직한 야고보서가 놀랍게도 성경 정경사의 최종단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정경으로 채택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또 무슨 해괴망칙한 말인가. 기독교 초기 단계는 신학이라고 할 것이 없을 정도로 신앙 체계가 미숙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 미숙하고 부족한 것들이 많았을 것 같은 그 와중에도 기독교의 중신이론이 확립되어있었다는 흔적이 놀랍다. 교부들은 로마서의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를 자기들 신앙의 중심에 놓고서 뭔가 결이 다른 것 같은 야고보서를 배척하였던 것이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는데 사람에게서 행함이라는 의를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고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야고보서 정경화의 우여곡절이 놀랍고 더 나아가 참 다행스럽게 여겨지는 대목이다. 혹 야고보서의 행함이 도를 넘어 기독교 신앙이 지나치게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흘러갈 수 있는 위기를 잘 극복했던 것이다.
내가 종교개혁을 자주 언급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종교개혁하면 중세교회의 타락을 먼저 떠올리고 연이어 타락한 성직자들과 교회를 보다 점잖고 도덕적인 집단과 성직자로 되돌려 놓으려는 운동으로 이해하기 쉬우나 -분명히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성경의 가르침으로 바르게 돌아 가자가 중심이자 핵심이었다. 루터의 슬로건 이신득의가 그것이다. 목숨 걸고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이치를 바로 세우려 했던 것이다.
하여 2019년 지금도 기독교 신앙의 중심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편한 마음으로 오늘의 논리를 전개할 수 있다. 결국 사람을 무엇으로 판단해야 하며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어차피 누가 뭐라고 하든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든 결국은 그 특정인의 삶이 어떠하냐는 것이 중요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아무리 마음으로 좋은 생각 그럴듯한 동기를 가졌다 할지라도 그것이 내면의 문제만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면의 동기나 자세도 중요하겠지만 결국은 행함으로 드러나야 의미가 있고 끝내 행함이 없으면 무효가 아니냐는 것이다.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에 이를 수 있다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행함이 없는 lip service요 마음의 계획만 이라면 그야 누가 못하겠느냐는 말이다. 부정적으로는 법이 그래서 만들어 졌고 긍정적으로는 상이 그래서 만들어 졌을 것이다. 마음으로만 하는 효도, 마음으로만 하는 사랑, 시늉만 내는 봉사가 더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아주 소용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실이 그러한 것이다. 오랜 세월 신앙하며 살았다. 이제는 승부를 낼 때가 가까워 오고 있어서일까 변명만의 삶이 아니라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역시 내 육체를 통하여 어떻게 주를 섬기며 세상을 섬기며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지난 많은 이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럽다. 그래서 최후까지 달려가야 한다.
글. 이동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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