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7. 06.
 페르소나에 대한 묵상
글쓴이: 이동훈  날짜: 2019.06.30. 23:03:42   글쓴이IP: 125.134.186.191
오래 전에 페르소나에 대하여는 언급한 바가 있다. 오늘은 또 다른 차원이다. 페르소나는 쉽게 인격, 위격 등으로 쓰이는 라틴어로 본래는 연극배우가 쓰는 탈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철학용어로는 이성적인 본성을 가진 개별 존재자를 가리키기도 한다. 따라서 인간에서부터 천사, 신까지도 페르소나로 불린다. 여기에는 인간도 천사도 신도 개별 인격이란 뜻이 담겨있기도 하고 이 셋이 갖는 공통의 분모가 있다는 뜻도 있겠다. 곧 이는 이성과 의지를 가지고 자유로이 책임을 지며 행동하는 주체를 말한다. 또 페르소나는 신학 용어로 많이 알려져 있다. 신학적으로는 의지와 이성을 갖추고 있는 독립된 실체를 가리켜 삼위일체의 성부와 성자 성령의 각각의 실체를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흔히 신학에서 3위라고 하는 ‘위’가 곧 페르소나다. 뜻밖에도 페르소나가 여러 가지로 편의하게 사용된 것을 살펴보았다.
이를 다시 정리하면 1.페르소나는 ‘인격’으로 쓰인다. 2.그 페르소나는 실상 연극용 가면이다. 그럼에도 페르소나는 계속 가면이어야 한다. 그때 가면은 가리는 가면이 아니라 새로운 역할이다. 가면 속의 실제 인물은 가려지고 가면으로 드러난 또 다른 인물이 나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3.가면은 가면일 뿐 계속 그것 페르소나는 실제 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런데 그 가면을 계속 쓰고 있으면 어떨까? 이론상일지 모르겠지만 어떤 연유로 밤낮 가면을 쓰고 있으면, 가면 속의 본래 모습이 더 이상 드러나지 않고 그 가면은 더 이상 가면이 아닌 새로운 나의 인격이다. 그리고 보니 페르소나는 본래부터 두 개의 뜻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페르소나, 그 뜻이 두개라!
어느 날 새벽에 Persona의 순기능이 떠올랐다. 그리스도인은 Persona의 사람이고 페르소나의 사람이어야 하구나 싶었다. 이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할 이유가 없고 도리어 권장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하는 역설이 싹 텄다.
이렇듯 어원을 고찰하다 보면 의외의 수확이 많다. 형편없는 인생이었다. 어디에 내어 놓을 형편이 되지 못했다. 그 형편이 겉모양일 수도 있고, 성깔머리 일 수도 있고, 하는 행동이며 속 모습 일 수도 있다. 그것의 내용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 나는 페르소나가 필요하다. 그 페르소나는 새로운 역할 일 수도 있고 새로운 희망이나 바램 일 수도 있고 아니면 외부로부터 요구 되어지는 기대 일 수도 있다. 그래서 안팎의 필요, 요구, 기대에 부응해서 페르소나를 사용한다. 한달 두달 1년 2년 3년 10년... 평생 계속 되었다. 그 페르소나(가면)와 실제 모습과의 차이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아마도 내가 일전의 페르소나 이야기에서 영국의 아주 짧은 단편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아직도 그 책을 찾지 못했다. 꼭 찾고 싶다. 그 우연찮게 대했던 아주 짧은 단편소설이 내게 시사하는 바가 있었던 모양이다. 내게 그리고 새로운 페르소나(역할)를 꿈꾸는 이들에게 라틴어 페르소나는 희망이요, 꿈이요, 길이다. 탈출구다. 인격이 다름 아니다. 가면이다. 그 가면이 오래면 새로운 내가 된다. 얼마나 멋있는가. 감쪽같이 이전의 나를 숨기고 새로운 모습의 나를 등판시킬 수 있다. 그런데 마침내 가면을 벗겨졌을 때 그 가면 속의 나와 실제 이전의 나는 다름이 없는 하나의 나가 되어있는 것이다. 자신에 못마땅해 하는 소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다. 그대여 마음에 그려둔 페르소나(가면)를 쓰자. 그리고 영원히 그 페르소나여라. 그러면 당신은 또 다른 인격의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다. 확신한다. 외모며 성품이며 실력이 다른 사람일 것이다. 이를 마다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글. 이동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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