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7. 06.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글쓴이: 이동훈  날짜: 2019.05.19. 19:54:42   글쓴이IP: 125.134.183.74
지난 주 ‘진실과 허위’에 이어서다. 겉으로 드러난 글도 말도 설교도 주의 주장도 문학작품도 아름다운 그림이나 작품 심지어 행동으로 실현된 것마저도 진짜의 나와는 다를 수 있다는 진단이었다. 드러나지 않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능력 밖 내면은 참 슬픈 인간의 자화상이자 한계다. 그러나 그것이 핑계가 될 수도 없는 것이 인간세상의 현실이고 더 나아가 시대적으로 형성된 공동체의 동의하에 법이 제정되어지고 종국적으로 개인과 공동체는 강제로 책임이 부과되어진다는 요지였다.
조금 더 의식을 확대해 보자. 오늘의 관심은 ‘교회’이다. 교회는 역사적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다고 고백하는 공동체다. 예수 그리스도는 친히 육체로 세우신 교회의 머리이시고, 교회는 그 그리스도의 몸이다. 여기 몸을 별다른 생각 없이 단순하게 몸뚱이로 이해하기 쉬우나 그 ‘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몸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수적이다. 그 단초를 ‘몸’의 영어 단어에서 찾는다. 주는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예수께서 ‘내 교회’를 세우겠다 하셨다. 교회는 예수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는 신앙고백의 기초위에 세워졌다. 이는 오늘날까지 일반적이다. 교회의 기초는 베드로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베드로의 경우 예수의 추인을 받았다- 신앙고백이 기본이다. 교회의 교회됨은 신앙고백이라는 기본 기초 정체성이 절대적이다. 그 신앙고백에 기초한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다. 몸(body)은 구체화 된 것이다. 몸의 동사형이 bodilige로 구체화하다, 형상화 하다란 뜻이다. 곧 교회는 예수가 구체화 되었다고 해석함에 무리가 없을 것이다. 다시 앞으로 돌아와 예수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듯 예수를 통하여 영이신 하나님이 보이는 형체를 가지듯 교회 또한 그리스도의 몸이다는 서술이자 몸이어야 한다는 당위적 성격이 강하다. 지난주의 논리를 되새겨 보지 않을 수 없는 자리로 돌아왔다. 천하에 없이 비단 같은 해석이며 논리와 언변으로 설교를 하고 그 설교를 듣고 간증(간증은 더 허위 위선의 위험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을 들은 회중들이 예수를 알게 되고 -이를 소위 은혜 받았다 한다- 감동을 받았다 할지라도 교회가 교회로서 구체화 되지 않으면 그 설교는 무엇일까 그런 의미이다. 설교 못지않게 보이는 교회가 중요한 것이다. 보이고 확인된 것은 하나님이 아니고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다. 바른 믿음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고 고백한다. 막무가내로 하나님 믿는다 하면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다. 무슨 하나님을 어떻게 믿는다는지 알길이 없다. 불합격이다. 동일하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실체가 중요하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 하신다 하나 형상이신 예수께서 성경에 소개된 모습 같지 않았다면 기독교는 성립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섬기러 하고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이 되려 하심이다 하심같이 예수께서는 처절히 고난을 감수하시고 낮아지시고 순종하셨다. 말로만 그렇게 하겠다고 하신 것이 아니라 실제 그렇게 살고 죽으셨다. 십자가의 처절한 고통을 친히 감당하셨다. 하나님의 형상이다 는 말에는 이 같이 심각한 내용이 담겨있다. 교회도 그러해야 한다. 통일교, 전도관, 신천지 무슨무슨 사이비 이단 집단들 모두 저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순진한 시대는 지났다. 얼마든지 지어 낼 수 있고 그럴싸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뒤에서 교인들의 재물을 착취하고 예수 주신 자유를 사실상 억압하고 교회공동체를 돌아보기는커녕 교회가 교회기득권자들만의 안위를 추구한다면 그것은 상당히 의심스러운 교회다. 거짓 교회요 위장 교회 잘못된 교회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한국교회가 신음을 하고 있는지 오래 되었다. 그사이 어마무지한 부자가 되었다. 전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지 않았다. 본받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정체를 의심해 보아야 한다. 주님의 교회를 개인의 영달과 성공의 수단으로 삼은 것 같은 의심을 버릴 수 없다.
글. 이동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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