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6. 03.
 베뢰아 환언운동
글쓴이: 이동훈  날짜: 2019.03.17. 19:16:46   글쓴이IP: 59.21.21.78
16C 초엽 루터가 일으킨 종교개혁은 성경이 뭔지도 모른 채 외적 성장만을 넓혀온 유럽교회가 성경을 읽으며 성경을 알게 되면서 일어난 기독교 대각성 운동이다. 보통은 ‘종교개혁’이라 하니 사실관계를 살펴보지 않고서 당시의 기독교회를 개혁하려던 운동이라고 지레 짐작하나 이는 영 틀린 진단이지는 않으나 근본을 따져보면 영 엉뚱한 진단이다. 물론 단초는 성직자들의 성적 일탈과 지나친 축재,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누릴 것은 다 누리는 부패한 성직자들이 이끄는 길을 잃은 교회였다. 그러나 교회가 발이 있어 제 발로 걸어 나온 것은 아니었다. 근원적 이유는 성직자들이 성경을 몰랐던 것이다. 세밀히 조목조목 따져가며 설명할 수 있겠으나 큰 덩어리로 말해 당시 교회는 철저히 신앙의 두 가지 암초라 할 수 있는 종교화와 신비주의에 함몰되어 있었다. 다시 언급하지만 성경이 보급되기 전이어서 성경을 읽기 어려웠다. 성경은 워낙 고가의 책이었고 그나마도 전해 내려오는 전통적 해석에서 자유롭지 못하였다. 따라서 종교적 의식주의, 형식주의가 판을 쳤고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의 영성에 기초한 신비주의의 유혹이 워낙 강하였고 이를 이길 수 있는 시대적 환경도 마련되지 못하였다. 통속적 종교의 계율주의, 신비주의에 막무가내로 노출되어 있었다. 여러 이론들이 있을 수 있겠으나 1440년 독일 마인츠의 구텐베르크가 활판 인쇄술을 발명하면서 성경의 다량 인쇄와 보급이 가능해졌던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리고 영국의 위크리프 독일의 루터가 시작한 자국어 성경번역이 성경의 대중화에 불을 붙였다. 이에 자극을 받은 유럽각지의 젊은 성경학도들이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에 갇혀있던 성경을 해방시켜 성직자는 물론 귀족들과 중산층의 상인세대로 까지 확산되면서 가능케 되었다. 종교개혁은 교회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한국교회의 500주년 기념운동도 그런 의미에서 핵심을 벗어나 있었다. 애꿎게 목사들의 지나친 세속화와 교회의 비대화가 물매를 맞았다. 어느 것 하나 틀린 것이 없었으나 실상은 엄청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한국교회는 그사이 너무도 비정상적 성장주의와 축복주의에 빠져 교회의 본질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할지라도 주객이 뒤바뀐 것이 문제였다. 성경의 본래로 돌아가는 것이 먼저인 것을 잊고 있었다. 성경의 본류는 영원히 죄와 허물로 죽은 영혼이 예수 믿어 죄 사함 받아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하늘나라의 시민으로 이 엄청나고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수고하고 애쓰고 참여하는 것이다. 여기서 다른 말을 보태면 빨갱이다. 가능하면 교회성장은 입 밖에 내지 말아야 한다. 이는 악한 목사가 무지한 교인들을 속이는 것이다. 교회가 성장하면 목사가 목에 힘을 주게 되고 큰 아파트 좋은 집에서 살 수 있고 좋은 차 타고 선교를 구실로 해외여행 자유롭게 다니고 공부 열심히 하지 않아 능력이 못되는 자식에게 교회를 물려줄 수 있는 것 외에 성도들에게 돌아오는 유익은 아무 것도 없다.
베뢰아 환언운동은 그래서 위대한 것이다. 김기동 목사님이 주창한 이 운동은 한국교회를 모판으로 하는 제3의 종교개혁운동이다. 지금은 암초에 걸려 위태로운 지경에 놓여 있으나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만을 강조한다. 예수께서 흘리신 피의 역사와 그 은혜와 가치를 전한다. 그 외는 우리가 잘하면 좋고 복음을 전하는데 유익한 선택사항들이다. 신앙의 본질은 인간을 철저히 영적 존재로 보고 아담의 죄로 완전히 죽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영이 살아났다는 소식이다. 이를 보증하는 표적과 능력이 현재해야 함을 강조한다. 위대한 환언운동이 우리의 연약함으로 벼랑 끝에 몰렸다. 회개하고 자복하여 이 운동을 다시 일으키고 이 운동에 참여하는 자가 되자. 그것만이 영으로 거듭난 우리의 사명이다.
글 이동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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