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0. 21.
 초월하지 않는....
글쓴이: 이동훈  날짜: 2019.03.11. 15:42:08   글쓴이IP: 125.134.190.152
김기동 목사님이 쓴 삼백 권 가까운 책들에는 기상천외한 제목들이 많다. 그분은 당신의 문학적 소양과 영감이 어우러져 유감없이 작명의 대가다운 면모를 보인다. 책 속에 담겨있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한눈에 제목을 통해 호기심을 자극할 뿐 아니라 그 제목은 농도 깊은 사고를 재촉하고 내용을 압축하고 있다. 사례를 들어 설명하면 좋겠으나 그 같은 사례가 한둘이어야지 사실인즉 그분은 신앙생활의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것들을 일찍 알았고 그것들을 바르고 적절하게 기술할 수 있는 소양과 높은 지식이 있었다.
‘초월하지 않는 하나님’ 도 그중 하나다.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제목과 관련하여 말하면 하나님은 무엇이든 초월하실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니 ‘초월하지 않는 하나님’은 잘못된 전제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신선한 도전이자 혼돈이고 발견이다. 이렇게 머리가 띵하는 경험과 함께 책을 읽다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나님은 성경을 초월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은 성령을 초월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은 믿음을 초월하지 않으시고 식이다. 그야 그렇지 하지만 그렇게 압축하여 앞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그분의 실력이고 능력이다. 그 초월함에 대한 또 다른 묵상이다. 우리는 그렇게 ‘초월하지 않음’ 이라는 개념을 배웠다. 초월하지 않음이란 하나님도 마음대로 하실 수 없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다. 하나님조차도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그런즉 그렇게 하지 못하신다. 이럴 때는 못한다와 안 한다가 다른 표현의 같은 뜻을 가진 하나가 된다. 하나님도 초월하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는 대단한 발견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럼 왜 우리가 ‘초월하지 않는’ 에 놀라고, 사고의 새로운 지평을 넓히고 의식이 확장되는 것 같은 감동을 받을까. 그것은 그 개념을 듣고 배워 알기 전에는 부지불식간에 수도 없이 초월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초월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놀랄 일도 감탄할 만한 사건도 아니다. 초월하지 않아야 하는데 초월하고 살았으며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충격을 받는 것이다. 그것은 철저히 자신에 대한 반성이며 자기 발견이다. 더 큰 과제는 이 큰 발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초월하지 말아야 할 것을 초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의지를 초월하지 않으신다. 그렇구나 하였음에도 여전히 인간의 의지를 초월하고 있다. 내가 방향을 설정하였음에도 내 결정 내 의지를 초월한 다른 뭔가에 덤터기를 씌운다.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생각과 의지를 작동시키고 처신을 하고는 다른 결과를 보고 의아해 한다. 이럴 때 ‘하나님은 초월하지 않는다’가 주효한 설명이 된다.
하나님은 인간의 노력을 초월하지 않으신다. 안 될 일을 두고 기도라도 엄청 하면 하나님이 협조하셔서 초월하실 것 같으나 실상은 초월하지 않으시는 것을 많이 본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이유인즉 ‘초월하지 않는 하나님’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엄청난 개념을 우리에게 공개한 이도, 배운 우리들도 무참하도록 초월하지 않아야 할 것을 초월하곤 한다. 왜 이 같은 오류가 자연스럽게 자리할까? 모두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기 때문이다. 자신은 홀라당 제외하고 유리한 해석만하는 선택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주위에는 선동에 가까운 거짓말이거나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궤변들이 숱하나 이를 분별하려면 높은 수준의 사고가 필요하다. 결국 이런 저런 이유로 많은 이들이 초월할 수 없는 것을 초월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진리를 깨닫고 예수를 영접했다. 율법을 초월하고 윤리와 도덕을 초월할 것 같은 큰 은혜를 받았다. 그러나 다시 예수 하시는 말씀은 잘 듣지 않는다. 나는 율법을 폐하러 오지 않았다. 율법을 완전케 하려 오셨다 하신다. 율법은 폐하여 지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큰 은혜와 진리를 빙자하여 율법이 폐하여지고 나는 그 율법의 정죄에서 자유한 것 같은 감동을 받는다. 그렇게 은혜를 받음도 자유이니 도리 없으나 미안하게도 율법도 인간의 선행도 윤리 도덕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 율례와 법도와 관습과 도리를 지키지 않는 사람의 말로가 평탄치 않음이 이를 증명한다. 그럼에도 그렇게 가르치고 주장하고 우리들은 그 감동 속으로 빠져든다. 궤변은 그럴 것 같으나 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많은 때에 궤변에도 감동되고 빠져들어 가는 것은 인간의 본성은 여전히 악하고 약아서 ‘하나님은 초월하지 않으신다’를 잠시 초월하고 있는 것이다.
글. 이동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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