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0. 21.
 자기 앞의 생
글쓴이: 이동훈  날짜: 2019.03.05. 13:19:18   글쓴이IP: 125.134.190.152
‘자기 앞의 생’은 내가 자주 인용하던 에밀 아자르의 저서 명이다. 주인공 모모와 그를 돌보는 보모를 통해 저자 자신의 생을 돌아볼 뿐 아니라 당시의 젊은 세대에도 울림이 큰 책이었다. 며칠 전 마침 ‘자기 앞의 생’이 우리나라 연극무대에 올랐다는 기사를 봤다. 유명한 양00 탤런트가 주인공 ‘모모’의 보모 역을 맡아 지금 열연 중이다. 대학시절 별로 길지도 않는 단행본을 들고 읽고 또 읽어가며 실은 내 자신의 생에 몰두했던 기억이 떠올라 가슴이 콩닥 거리기까지 했다. 지성의 대명사 격인 당시의 명사들이 생땍쥐베리의 어린왕자, 카잔차키스의 희랍인 조르바와 함께 빠뜨리지 않고 소개하는 70년대의 분위기에 빨려들며 그 후 평생 책 제목 ‘자기 앞의 생’을 화두로 삼았던 사람으로서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다시 한 번 인생은 결국 내가 책임지고 내가 감당해야 하는 나의 생이라는 단순한 개념이 무겁게 내리 앉았다. 그 오래된 개념을 우연찮은 계기로 다시 생각하게 된 이야기다.
고령의 어머니를 돌보며(?) 뜻밖에도 현재와 같은 혼란스럽고 엄청난 경험과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92세인 어머니의 날은 내가 가보지 못한 미지의 길이다. 난 그 길이 어떠한 지 아는 것이 없다. 아주 단순히, 우리 엄마 고생하는 것 많이 보고 자랐고 그 어머니에게 마음 같이 잘하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이 내면에 깔려 있었다. 그 예쁘고 곱고 탁월할 만큼 총명하고 다정다감하던 엄마가 늙고 병들어 전혀 이전의 엄마 같지 않은 엉뚱한 말을 할 때 ‘이제라도 잘해야겠다’ 정도의 단순한 생각이 엄마를 염려하는 측은한 마음과 어울려 불시에 효자 아닌 효자노릇을 하게 되었다. 첫 번째 문제는 쉽게 드러났다. 수십 년 밥장사 하신 엄마가 밥 못해 먹을까? 늘 상 ‘밥 먹었다’ 하니 밥 먹고 사는 줄 알지 무슨 반찬으로 어떻게 제대로 드셨는지 세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무지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엄마는 임종 직전에 와 있었다. 어머니 집 바로 앞에 교회가 있어 아들 내외가 살고, 끔찍이 때마다 엄마를 챙기는 딸이 있다는 것을 인정 할 수 없도록 그냥 대충대충 굶지 않고 드셨던 것이다. 전부는 아니겠으나 이미 영양실조 상태였다는 것이 맞아 보인다. 사태를 뒤늦게 파악하고는 작심하고 엄마를 제대로 돌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생활의 일부라도 같이 해야겠다 싶어 잠자리도 옮겼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만의 생각일 뿐 며칠 안에 완전히 몽상으로 드러나고 말았다. 엄마와 아들은 도저히 한 공간에 같이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TV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엄마의 돌발적 말이며 행동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고 또 다시 반성하며 생각을 돌이켰지만 그것은 옳은 해법이 아니었다. 엄마를 도와드리기도 전 내가 망가지고 있었다. 멀쩡히 잘 있다가도 딴 사람처럼 엉뚱한 말을 하고 행동을 할 때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들로서는 ‘불가’였다. 그러다가 ‘자기 앞의 생’ 연극을 한다는 기사를 읽은 것이다. ‘아! 엄마의 생과 나의 생이 하나 일 수는 없구나.’ 그것은 미안하게도 서로 다른 생이었다. 엄마는 고령의 엄마 생을 살고 나는 아무 도움도 드릴 수 없는 아들의 생을 사는 것이었다.
아들이기도 하고 아빠도 되고 남편이 되고 목사가 되고 신문사 대표도 해야 하는 것이 나는 나여야 하는 것이지 아무리 효자노릇 하려해도 할 수 없는 한계가 들통 나고 말았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그 깨달음이후 마치 내가 어떤 신비한 힘에 이끌려 큰 진리라도 얻은 것처럼 엄마와 나는 어느 때 보다 편하게 지낸다는 것이다. 어떤 계기로 ‘자기 앞의 생’을 살 수 밖에 없는 자기를 발견하고서 편해진 것일까?. .그 어머니를 못 잊어 전설 같이 아름다운 효심을 발휘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가 심심찮게 있지만- 고기를 먹고싶어 하는 어머니에게 자기 살을 베어 만들어 드렸다든지, 손가락을 베어 어머니의 목을 적셔주었다든지 등등- 결과적으로 아무리 그 어떤 선한 동기에서 출발 했을지라도 우리는 결국 ‘자기 앞의 생’을 살아야 하는 자였다. 우연한 기회에 개인의 존재와 자기 결정에 대한 평소 소신을 다시 확인한다. 나는 엄마를 대신 할 수 없는 자였다.
글. 이동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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