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와 나는 26년 차이다. 엄마는 그 전에 딸 하나를 얻었으나 남편을 병으로 잃고 이후 재가하여 나를 낳았으니 지금도 얼른 생각할 수 없는 젊은 날에 인생의 만고를 겪었던 것이다. 출생 후 65년이 지난 어제 어머니와의 대화중 평생 처음 들은 이야기가 나를 놀라게 한다. 늘 그러려니 했지만 정작 엄마의 입으로 직접 듣고 보니 상상력에 날개를 단 듯 더 감동적이다. ‘핏덩이를 엎고 뛰었는데 그래도 니는 잘 자더라’ 그 참 생각하면 눈물나는 말이었다. 어머니는 경남 창녕군 남지 성사리 매전마을 사람이다. 함안 조씨 양반집 딸로 일제시대 임에도 외삼촌들이 일본으로, 부산으로 대학 유학을 하셨고, 연세가 많고 생활에 여유가 있었던 큰 외삼촌은 유명한 명창이셨다. 엄마는 그런 큰 오빠를 바둑이나 두고 글이나 읽고 노래하는 한량이었다 하셨다. 그러나 엄마는 위로 이모와 함께 무학이셨다. 그 어머니가 일찍 혼자가 되었을 때 잘 나가셨던 외삼촌들이 그냥 내버려 둘 일이 없어 재혼을 하였으니 엄마에게는 내가 첫 아들이다. 어머니의 나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것은 그런 까닭이 아닌가 싶다. 막내 동생 댁인 제수씨가 ‘어머니는 목사님 바라기다’라고 좌중의 관심을 끄는 말을 했듯이 어머니는 나만 보고 사셨던 것이 아닌가 싶었던 때가 없지 않았다. 꽃보다 더 아름다웠던 시절에 찾아온 당신의 상처를 더욱 아버지의 폭음과 방종을 어머니는 그렇게 이기셨던 것일까. 친정으로 시댁으로 지위가 있고 돈깨나 가지고 있던 집안에서 우리 집만 가난하고 처량하고 소망이 없었다. 내 어린 눈에 어느 구석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절이 이었다. 그런 당신만의 처지에서 시장에서 그럴 듯한 큰댁이 운영하는 식당 앞 노상에서 콩나물 한통을 외상으로 받아 장사를 하고는 하루벌이로 갚으며 우리를 키우셨다. 그는 그렇게 6,25라는 난리 직후에 얻은 아기와 꿈 같이 행복한 시간을 가져보지도, 자기 몸을 돌볼 시간도 갖지 못한 채 그 아이를 엎고는 살려고 달렸던 것이 얼마든지 그려진다. 내가 장성하도록 내게 엄마는 그런 분이셨다.
지난 주중 어머니가 잠시 위태로 왔다. 아차 하는 순간 어머니를 보내여야 하는가 보다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혼란하고 어지러웠다. 5년 그도 아니면 3년이라도 더 살며 우리들 곁에 있어 주기를 바라나 그야말로 마음일 뿐 편하게도 알뜰하게도 넉넉하게도 못해 드렸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내가 준비가 되어있지 않는 모습도 보였다. 때로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 자식이 부모를 사랑한다고 하나 부모사랑을 흉내 낼 수 없다고 하지만 나라는 자식은 참 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통이 터질 것 같은 모순이나 현실은 정직하게 그랬다. 갈등과 모순 속에서 짐승보다 못한 인간과 높고 크신 계율을 주신 하나님 사이에서 하나님이여 어디 쯤 계십니까? 인생을 불쌍히 여기 주옵소서. 주의 종이 사람의 도리를 다 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이는 제가 인생으로서 드리는 소박한 바램이옵니다. 기도가 기도가 아니라 외마디처럼 절로 나왔다. 인생이 얼마나 얄궂은가? 얼마나 기구한 일들이 많은가? 자식을 잃고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에 던져지고 쫓기고 힘들어 하는 것이 인생이라 하지만 그 어느 누구의 아픔 못지않게 우리 어머니도 행복해야 했던 날에 당신에게 닥친 시련 앞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힘든 와중에 자의든 타의든 새로이 시작하는 당신의 젊다 못해 미숙한 날에 얻은 아들과 더불어 얼마나 힘든 낮과 밤을 보내었을지 회고만으로도 기가 찼다. 그 아픔과 외롬이 시련과 고통이 어떤 의미를 주었을까? 채 삶의 의미마저도 묻기 어려운 때에 얻은 아기가 당신에게 얼마나 소중하였으며 얼마나 무거웠을까? 그래서 마음이 너무 복잡했다. 당신의 삶이 꼬부라져 더 지탱할 수 없게 된 지금 그 애기였던 내가 의미가 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미 더 의미가 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러기에는 말도 소리도 들리지 않고 이해력도 판단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도록 그냥 고령의 쪼그랑 할매일 뿐이다. 오, 주여! 종은 참으로 어떡할 수 없는 등에 업힌 아기입니다.
글. 이동훈 목사 |
|
등에 엎힌 아기
현 정권에서 잃은 것이 너무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