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4. 19.

목사의 자살

글쓴이: 이동훈 날짜: 2017.10.24. 23:54:07 글쓴이IP: 121.145.108.216

신학대학원 시절이다. 계속 공부만 하다 긴급조치 2호니 3호니 계엄 하에서 중도에 강제 군복무를 끝낼 무렵 깊이 고민에 빠졌었다. 서울에서의 공부를 계속할까 부산의 대학원으로 돌아가 목사가 될 과정을 먼저 끝낼까 쉬 답이 나오질 않았다. 지금은 대통령 전용기 탑승 통로가 되었다는 육군항공단 대회의실을 안에서 잠근 채(회의실 키를 내가 보관하고 있었고 병장말년이라 딱히 할 일도 없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사병생활은 고참이 놀아줘야 밑의 사람(졸병)들이 일을 배운다.)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드러눕기도 하고 탁자 위에 걸터앉기도 하며 고민하기를 며칠 계속하다 ‘원점으로 돌아가 목사가 되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내려온 신학교 복학생 시절 가장 가깝게 지냈던 친구(나이가 7살이나 많으니 형이라 해야지만 사람이 워낙 점잖고 대학입학을 기준하면 내가 선배이기도 했었다.)가 있었다. 그는 목요일만 되어도 주섬주섬 챙겨 떠나는가 하며는 금요일은 서부경남에 있는 작은 시골교회 전도사로 사역지를 향해 출발하곤 했었다. 신사이기도 했지만 달리기며 축구며 배구며 운동도 잘하여 그야말로 싫어하는 사람이 없는 선한 사람이었다. 내가 엄청난 신앙경험 후 몸담았던 기성교단을 떠나 이단이라는 길을 갈 때도 늘 보고 싶어 하던 이였다. 당시는 부산의 꽤 외곽(으로 여겨지던 곳에서 교회를 개척하며 고생을 많이 했다는 말을 들었다. 이따금이따금 들러오는 소식에 장로를 몇 명 세웠다(개척 교회를 면하려면 장로가 있어 당회를 구성해야 되고 당회가 구성되어야 아무리 자기가 개척을 해도 임시목사의 레벨을 떼고 당회장권을 행사하고 위임목사로 안정적 목회를 할 수 있다.) 하고 땅을 샀다고도 하고 예배당을 건축했다는 소식 목회가 많이 나아졌다는 밝은 소식을 여러 번 들었다.
목사들은 교단을 달리하면 남과 같다. 정리(情理)야 가슴속에 남아 있겠지만 교류할 일도 공통의 화제도 접촉할 시간도 없다.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낸 어느 날 그가 소천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왜 그렇게 빨리 죽었을까 지병이 있었던가 보다고만 생각했다. 또 시간이 더 지나 우리 둘 사이의 우정을 알고 있던 어떤 이가 정말 충격적인 소식을 들려주었다. 며칠째 힘든 시간을 보내며 그 잔상과 싸웠다. 그가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주일아침 장롱에 목을 매었다는 것이었다. 사연인즉 자기가 안수하여 세운 장로가 그렇게 괴롭혔다는 것이다. 별안간 소식을 듣고 문상에 나선 동기들도 부산으로 오는 중 대강의 얘기를 듣곤 사인을 적당히 덮은 채 장례를 치뤘다 했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까? 이런 일이 가능한 게 세상인가? 상상도 할 수 없는 비윤리적이고 비신사적이고 막장드라마 같은 것이 이 세상인 것을 모르지 않지만 그 착하고 괜찮은 목사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목사가 그것도 도저히 인간적으로는 제 손으로 죽을 수 없는 사람이 얼마나 오랫동안 괴로웠으면 인생을 하직하고 싶을 정도였을까. 그 장로라는 사람을 찾아 처단하고 싶은 망상을 벗어나기가 한동안 어려웠다. 얼마나 낮은 수준의 사람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서는 속죄하는 예수의 보혈을 마음대로 파괴하고, 옛 인성 못된 버릇을 그대로 가진 채 그 착한 사람을 얼마나 괴롭혔으면 그 같은 일이 가능했을까 오랜 시간 숙제로 남았다. 노무현대통령의 자살사건 때 나도 그가 조사 받던 혐의에 관련이 있다고 단정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언급했던 당시의 경찰청장이 유죄판결을 받은 것을 보면 사실이 아닐 공산이 크다. 나의 경험대로라면 노무현도 세상 살기가 싫었던 것이다. 사는 것이 치사하고 더럽고 지겨웠던 것이다. 친구 목사도 그랬을 것 같다. 왜 교회 안에 무슨 일이 장로가 무슨 짓을 어떻게 했기에 그에게 있는 마지막 생의 의지를 앗아 갔을까.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목사에게 허물이 있었을까 아님 못된 장로의 끊임없는 괴롭힘에 지쳤을까 세상이 미워졌을까 누구의 잘못이었을까. 앞서 세상을 떠난 가까웠던 친구 목사의 죽음은 쉬 잊혀지지 않고 세상이 싫어질 때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글. 이동훈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