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을 쓰고 싶은지 꽤 오래 되었으나 쓰지 못했던 것은 너무 내 모습이 적나라하게 비치기 때문이다. 부담스러웠다는 뜻이다. 짧은 사연이나 자서전 같은 대목이 있다. 내 모습을 보여주는 몇 가지 사례(fact)를 소개한다.
첫째 이야기. 병역의무를 군목으로 가게 되었던 것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을 조사하던 경찰이 아무개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배후에 내가 있다고 의심했다. 그러나 의심은 의심일 뿐 증거가 없어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사이 학교에서 나를 사병으로 급거 입대케 했다. 시간이 흘러 순서대로 내무반장을 하게 되었다. 그때 생각이 또렷하다. 사병생활을 해보니 멀쩡해 보이는 놈들이 사고를 치곤해서 탈 없이 제대하는 것이 최고의 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첫 인사말로 ‘내가 나이가 많으니 쉽게쉬게 하면 좋겠지만 우리 모두 편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최고라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군기를 엄격히 잡겠다.’ 했다. 중대장 입이 쩍 벌어지도록 엄청 군기를 잡았고 부대는 평안했다. 비슷한 시기 사무실에 하위병이 들어왔다. 최고 대학의 최고 학과를 나온 수제였고 마침 초등학교 후배였다. 그러니 그는 후일 군생활 끝났다 고 생각했다는 얘기를 했었다. 정말 어려운 가정살림이었는데 지금쯤은 재벌급의 큰 부자가 되어 있는 것으로 안다. 그 친구는 부선망 독자로 군대 오지 않아도 될 것을 사람 되려 군대왔다 했다. 내 하는 일이 사병으로서는 제일 까다롭고 중요한 일이기도 하고 특권도 있고 해서 그 친구 군기 잡느라 나한테 엄청 맞았다. 그가 내 제대하는 날 나를 붙들고 엉엉 울었다. ‘이병장님 아니면 내 사람 안 되었을 겁니다.’ 그 친구의 고마운 마음을 잊을 수 없다.
스토리 두 번째는 제법 많은 청년들로 교회가 활발할 때다. 4층 식당에서 길게 줄을 서 배식을 기다리는 사이에 집의 아이가 있었다. 줄을 선 청년들끼리 얘기다. ‘목사님 무섭다.’ 고. 그때 그 말을 본의 아니게 훔쳐 들었던 아이의 생각을 뒤에 들었다. ‘그 무서운 사람과 사는 나는 얼마나 무섭겠냐’ 고. 늘 아이에게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대목이다. 스토리 세 번째는 오늘의 제목과 관련된 내용이다. 난 동물을 좋아 하지 않았다. 동물의 체온이 느껴지는 것이 징그러웠고 그냥 내 앞에 있는 꽃이며 나무들의 수동적인 모습이 만만했다고나 할까. 그런데 어떤 계기로 나름 힐링이 필요하다 여겨 개를 길렀다. 어제도 어떤 수족관을 들러 저건 얼마냐, 키우기에 어렵지는 않느냐 고 예쁜 새를 물어 보았다. 호프는 그렇게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려온 푸들이다. 집사람은 늘 강아지라 하지만 사람으로 치면 30세라 할 만한 놈이다. 데려온 다음날 일이다. 배변을 훈련시키느라 화장실로 데려 갔는데 훈련이 여의치 않아 내가 화를 내고 이놈이 이빨을 드러내는 일이 벌어졌다. 그 때 개를 데려오면서 ‘개가 이를 드러내면 확실히 군기를 잡아야 한다’는 식의 책 내용이 떠올랐다. 그래서 한 대 쳤던 것이 악화되어 순간 아비규환이 되었다. 지금도 호프는 내 침대 밑에서 잔다. 호위무사가 따로 없도록 하루 종일 나를 따라 다닌다. 그러나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웬만해서는 내게 꼬리도 흔들지 않는 놈이 손님이 오면 완전 정신없이 날뛴다. 그렇게 사람을 좋아 한다. 나만 빼고.....내가 새벽부터 자리챙겨 밥 챙겨 한번 씩 확실하게 놀아주고 실제 생명의 은인임에도 나를 좋아 하지 않는다. 그냥 보스로만 따르는 것 같다. 군집생활을 하는 종의 특징이 그렇단다. 본능적으로 따르기는 하지만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편해하지 않는 것이다. 억지로 명령에 따르는 것이 역력하다. 처음 데려올 때부터 짐작했으나 오늘 아내에게 처음 말했다. 요즘 호프다 부쩍 아내를 따른다. 사람 좋은 것을 눈치 챈 것이다. 별로 잘해주는 것이 없어도 졸졸 따른다. 내가 없을 땐 종일 곁을 지킨다. 편한 것이다!
수십 년 교편을 잡았던 목사님이 진지하게 내게 그랬다. ‘잘 되라 열심히 가르쳤던 아이들은 안 찾아옵니다. 같이 놀아 줬던 아이들만 찾아옵니다. 목회도 같은 것 같아요.’
이것이 현실이나 나는 여전히 그렇지 못하다. 생명을 구해주었으며 밤낮 피부병으로 약을 발라주고 씻겨주고 깔아주고 먹여주고 털을 손질해줘도 그때그때 얻어 먹기만 할뿐 고마워하지 않고 무서워만 한다. 살기 위해 엎드리는 현명한 개에 미련하기 짝이 없는 주인이다. 괜히 무서워하는 호프에게 미안 할 때가 많다.
글. 이동훈 목사 |
|
‘호프’를 통한 깨달음
두 어머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