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4. 26.

훈아, 떡 무라

글쓴이: 이동훈 날짜: 2016.08.15. 17:05:18 글쓴이IP: 112.162.107.28

순간 왈칵 눈시울을 뜨거워진다. 얼마나 그립고 정겨운 소리다. 내가 몇 살이나 되었을까. 내 키가 작은 얼음 냉장고만 했을 때-그 냉장고가 좋아 여러 번 오르내렸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처음으로 자기 집을 가졌다. 그 이사하던 날 그날이 뭔가 좋은 날 인줄을 알고 내가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했던 것이 색 바랜 기억이긴 하지만 또렷하다. 다섯 살 때쯤 아닐까 싶다. 그때부터 우리는 점포와 거실이 딸린 집이 있었고 곁들여 우리 집 앞에는 노점상이 여럿 딸렸다. 내 기억속의 당시 재래식 시장은 정말 대단했다. 맞벌이 부부시대는 우리 경제에서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기 훨씬 이후의 일이었다.
가정에서 아이들 키우던 주부들이 오후 3, 4시쯤 되었을까 저녁 찬거리를 사러 시장으로 쏟아졌다. 그리고 보니 거의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었다. 인산인해가 따로 없었다. 명절에는 앞 사람에 가슴이 닿을 정도로 시장 통에 사람으로 가득했다. 그 우리 집 앞 노점에 여름에는 시원한 얼음단술과 우묵을 넣은 콩국을 파는 떡 장사와 두부와 콩나물을 주로 파는 아주머니 그리고 잡동사니 야채를 파는 좌판도 두어 개 있었다. 난 전형적인 시장출신이다. 천날만날 보는 사람들이 시장통 장사꾼 아줌마 아저씨들이었다. 그 곳을 떠날 때까지 학교에서 돌아와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엄마를 찾으면 보고 계시던 떡장수 할머니가 어김없이 ‘훈아, 떡 무라’ 소리가 공식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 그렇게 고생하며 길거리 점포도 없이 장사하던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자식놈들 공부만 따라 해주면 그래도 다 중학교 고등학교도 시키고 대학까지 공부시키고 어떤 이는 집도 사기 시작했었다. 매일 같이 일수니 월수니 계돈이니 하며 전쟁판 같은 살림살이였지만 그래서 어렵다 소리를 입에 달고 살면서도 우리집같이 대여섯은 보통이고 우리 집 맞은편 쌀집은 꼭 12의 아들딸이 있었다. 다 밥 먹고 공부시키고 출가시키고 집사고 살았다.
금주 일본의 시모노세키를 다녀왔다. 미리감치 가이드가 설명을 했다. 일본 면세점은 한국 같이 세계적 명품 가져다 놓고 팔지 않는다 했다. 벌써 유럽 여러 나라에서 돌아선 분위기이다. 지역 상권에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쉽게 들어오지 못하게 법으로 진입조건을 까다롭게 하여 지역 상권을 보호하고 키워가는 시스템이다. 금번 미국의 민주당 대선후보로 주목을 끌었던 샌더슨 후보가 그랬다. 작은 도시 시장으로 8년을 역임하며 대기업의 진입을 막고 지역 상권을 살려 전국적 지명도를 얻어 힐러리의 턱밑까지 추격했던 것이다. 지방자치제가 정착한 선진국들은 이런 흐름이 대세다. 대기업이 장사를 잘하면 나도 좋아질 것이라는 허상이 흔들리기 시작한지 오래다.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간과했던 것이다. 공생공영하며 살도록 선순환 구조로 가지 않고 누구는 수천억 수조원의 돈을 굴리며 자자손손이 먹고 살 수 있도록 편법으로 상속세 증여세를 빠져가며 대물림을 하고 있는 것이 우리 주변의 실상이다. 법인세 올리기를 주저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좋은 자본주의가 근본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지경인 데도 우리나라는 아직도 시장으로 출마하면 대형 할인점을 유치하겠다는 공약을 서슴치 않는다. 정치가들이 무식해서 그렇다. 권력과 명예만 탐할 뿐 어떻게 국민을 편하게 행복하게 할지 참 행복이 무엇인지 개념설정이 안되어서이다. 어디든 노점상들을 보면 내 어린 시절이 저절로 떠오른다. 대형 할인점이 생겨 편하게 싸게 구입하는 것 같이 보이는 구조가 우리사회를 아무리 노력해도 어떻게 헤쳐나 갈수 없는 자영업 사막의 사회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기업은 성공하고 나라는 부강할지 모르겠으나 소상공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피폐하고 고달프기 그지없는 우리 사회다. 자본의 수익성이 개인 노동의 수익성보다 훨씬 크고 비대하여 빈부의 격차는 점점 심해가고 상대적 발탁감은 삶의 의욕을 갉아 먹은지 오래다. 오래전 독일의 한 작은 시에서 들었다. 그냥 찾아간 교회의 주일예배시간에 뒷자리에 독일로 유학 갔던 제자 아이를 보았다. 남편과 같이였다. 세계적 오페라단 단원으로 있다 했다. 인구 불과 몇 만의 소도시지만 직장이며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30분 거리 안에 있다 했다. 독일답게 명문 축구단만 아니라 세계적인 제약회사가 거기 있다 했다. 굳이 고향을 떠날 필요도 없고 공부에 취미가 없으면 대학 안가도 문제없다 했다. 목사님의 두 자녀도 대학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훈아 떡 무라’ 하던 시절이 꼭 낫다는 말은 아니다. 대기업의 성공 그늘에 죽어나가는 자영업자들의 곡소리가 끊이질 않는 해법의 하나를 일본 여행에서 봤다. 집밖을 나서면 고되지만 나가면 배울 것 이 많아 좋다.
글. 이동훈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