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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않은 생에, 그렇다고 크게 긴 것도 아니지만 쉬 잊히지 않는 일은 많지 않다. 몇몇 사건이나 기억 혹 다짐과 생각만 어제 일 같이 생생하다. 고의로 애쓰는 것도 아닌 데 늘 자연스레 기억나고 되새겨지고 그 의미를 더하여 간다.
신혼 왕초기의 일이다. 새색시 아내의 배가 불러왔다. 부끄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어떤 아이가 저 뱃속에 자라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넉넉할 수 없었던 초임 목사의 생활비 중 아껴 남대문시장에 아기 용품을 하나 둘 사모아 출생할 아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그 무렵의 아주 사소한 그러나 사소하다고만 할 수 없는 강열하고도 진한 기대 혹 소망 바람 비슷한 것이 있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뱃속에서 나을 때부터 온몸 어디든 한 개의 티나 흠이나 주름 뾰두라지 없이 키워야지’ 했다. 그냥 그렇게 순백의 영혼으로 키워보고 싶었다. 왕초보 아빠 능력의 유무를 떠나서 처음 경험하는 생명의 출현을 눈앞에 둔 목사 아빠의 소망 이자 바램이었다. 긴 말이 필요 없다. 이 얼마나 순진 유치 무망한 꿈인지는 아기를 길러 본 사람은 다 안다. 아무리 남자라지만 어찌 그런 개꿈을 꿀 수 있을까 하지 싶다. 평가할 가치도 재론의 여지도 없는 그야말로 개꿈이다.
아기가 태어났다.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하루도 예외 없이 온 몸에 땀띠가 그치지 않았다. 복중의 노폐물이 걸러지는 기간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어떻게나 잔 손길을 많이 필요로 하는지 누구에게도 말 해보지 못한 초보아빠의 꿈은 저 아래 깊은 내면에 아린 상처로 남은 채 숨겨졌다. 정말 그렇게 키워보고 싶었다. 비단 몸에 드러나는 작은 땀띠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기의 인생 전체가 그러기를 바랐다. 죄와 허물과 탐욕 실수 유혹과 욕망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 순백의 삶이었으면 했다. 그러나 그렇게 될 수는 없는 게 인생이라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아 버렸다. 아빠도 곁에 있는 엄마도 해 줄 수 있는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는 것을 정말 진즉 알고 말았다. 무슨 운명의 장난 이었을까 그 아기는 매우 짧은 생을 살고 나를 떠났다. 이따금 천국 가면 그 아이를 볼 수 있을까 생각할 때가 있다. 부산에 내려와 지금의 우리 교회를 개척한 후 한 젊은 내외가 있었다. 그 남편은 사람이 악한 것도 나쁜 것도 아니었지만 열심장이 젊은 목사의 기대와 달리 좀체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어느 날 밤늦게 그 가정에서 전화가 왔다. 아기가 아프다 했다. 열이 펄펄 난다고도 했다. 젊은 날 언제나 그랬듯이 오래 지체 않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거의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병원 로비에서 나를 본 애기 아빠 집사는 무릎을 꿇었다. 목사님 살려주세요 했다. 많이 놀랐다. 그만한 일도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애기들 자다 가도 열이 많이 나는 것 어렵지 않은 일이지 않은가. 역시나 애기는 며칠 있다 퇴원했다.
그러나 그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을 미리감치 알고 목사 앞에, 보다 정확히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 젊잖고 말 수가 적었던 사람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하나님을 찾았다. 오랫동안 그를 볼 때마다 그 절박한 장면이 오버랩 되었었다. 그렇게 안 되는 인생이다. 그렇게 될 수 있는 인생이 아니었다. 한 점 흠도 티도 없이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시행착오나 오류 없이 죄 가까이도 가지 않고 살고 싶었다. 그리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렇게도 몰랐을까 역시나 그렇게는 살 수 없었다. 가까이도 갈 수 없었다. 하나님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삶에 간여하시는지 아직도 선명히는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할 수 없고 나 자신도 내 아들도 딸도 오류로부터 실수로부터 걱정으로부터 지킬 수 없었다. 그래서 대책 없이 오늘도 여전히 하나님을 찾는다. 누구는 뭐라 하든 내게는 그 분 뿐이다. 당신은 얼마나 배짱이 있는지 모르겠다. 뭐든 숨겨놓은 것이라도 있는지 다른 믿을만한 구석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비굴한 지도 모르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한다. 글. 이동훈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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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과 티가 없이 키우려 했으나
두 어머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