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개월 전, 할 수만 있으면 강아지 한 놈 입양할 생각으로 사전 답사차 유기견 보호소를 찾았다. 다행이었을까 섣부른 실수였을까 견사를 둘러보자 말자 한쪽에서 짖지도 않고 얌전히 쳐다만 보는 황색 털복실이가 눈에 띄었다. 앞서 언급한 바처럼 다행인지 실수인지 입양을 결심했다. 이놈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제자리에 있지 않고 몇 번이고 운전대 앞으로 나서도록 친근하게 따랐고 새 주인의 환심을 갖고자 했다. 사실인즉 이놈은 며칠 더 지나도 입양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안락사를 당해야할 어려운 처지였고 그리고 보면 내가 생명의 은인일 수 있었다. 이렇게 만난 놈의 이름을 가족회의를 거쳐 호프(HOPE)라 했다.
내가 호프를 위해 한 일은 적지 않았다. 개든 고양이든 키워본 사람들은 알지만 보통 마음으로는 제대로 성공적으로 같이 살기 어렵다. 일단 새 식구가 된 호프를 위해 집도 준비하고 양식과 식기(?)를 준비하고 줄을 걸 수 있는 목걸이며 산책할 때 쓰일 줄을 마련했다. 당연지사 호프는 스스로 밥을 챙겨 먹지 않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시중을 들어야 했다. 종일 목마르지 않도록 깨끗한 물이며 물을 먹을 수 있는 장치도 마련했다. 그리고도 일주일에 한번은 목욕을 시키고 혹 바깥세상이 그리울세라 바깥나들이도 간다. 심지어 자유롭게 출입이 안 되는 마트에도 데려가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시키고 예쁜 아가씨(?)라도 만날까 지나가는 암놈을 만나면 수놈 구실하라고 기꺼이 기다려 주기도 한다.
실은 난 동물에 비해 식물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무엇보다 동물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는 것이 쉽지 않았다. 징그럽고 적응이 어려웠다. 그러나 키워본 사람들은 알지만 여느 강아지 혹 개와 같이 호프도 참 귀엽고 재밌다. 압권은 호프가 어떤 계기 이후 눈을 흘기고 아주 고의로 머리를 돌리며 외면하는 것이었다. 배를 잡고 웃었다. 잘 하다가도 엉뚱하게 한 번씩 똥이며 오줌을 마음대로 누다 나에게 혼이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 놈이 별 수 있나 현실에 적응해서 인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개의 심리인지 호프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며 다 잊고 책상에 않아 있는 나를 찝쩍이고 장난을 걸었다. 같이 놀자며 눈을 맞추려 했다. 개들 이야기 중에는 어느 동물과 비할 바 없이 충견 이야기가 많다. 일본의 충견 하치코도 그렇지만 남미 볼리비아에서도 히치(일본 히치코에게서 빌어 왔다.)재밌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당시 대학을 나가던 주인을 따라 히치도 매일 학교로 향하는 역을 따라 나갔고 다시 돌아올 무렵이면 만나 같이 돌아오기를 계속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이 교통사고로 먼저 떠났다. 이때부터 하치의 오랜 기다림이 시작 됐다. 히치는 매일 사고 현장에서 귀가하지 않는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무려 5년이 지나 우연한 기회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히치 소식을 들은 안주인이 하치를 데려 왔으나 그때마다 히치는 도망쳐 다시 역전으로 돌아왔다. 결국 주인은 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고 역전의 주민들이 하치의 먹을거리를 챙겨주게 되고 이 소식을 들은 또 다른 이들이 보내준 기부금으로 히치의 양식을 대주는 일이 계속 되었다. 그러다 세월을 이기지 못한 히치는 죽고 이 엄청 놀라운 충견을 기념하여 기념비가 세워졌다. 비슷한 사례가 지구촌 곳곳에 있는 것이 사람과 가까운 개다.
그 다음 동물 전문가들 중에서 하는 말이다. 하치가 그렇게 충성된 개여서가 아니라 아마 거기 역전 길거리에는 늘 먹을거리가 적지 않아 히치가 돌아왔을 것이다 는 얘기다. 어느 것이 맞는 말인지 모르겠다.
나와 호프는 만난 기간이 길지 않다. 그래서 일까 내가 몇 차례 화를 내긴 했지만 호프에게 나는 생명의 은인이자 구세주다. 그러나 호프는 한 번도 내게 감사하는 것 같지 않다. 제 놈이 심심해서 주인을 데리고는 놀아도 제놈을 살려준 주인의 심사를 헤아려 보려고는 않는다. 유기된 개여서 일까 어느 때고 제일 밝히는 것이 먹거리다. 먹을 게 있을 때는 눈이 반짝인다. 그리고 먹고 나면 그로 끝이다. ‘주인님 고맙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하지 않는다. 짐승에게는 감사의 기능이 없는 것 같다. 감사는 영(靈)에 속한 영역이 아닌가 싶다. |
|
짐승은 감사하지 않는다.
유효기간에 대한 묵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