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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드디어 봄이 돌아왔다. 지난겨울 유별나게 춥더니 마침내 혹한을 이기고 따스한 햇살이 느껴진다.’ 거의 매년 하는 말이지만 들을 때마다 그럴싸하다. 그러게! 코끝에 닿는 공기가 삭풍의 그때 같지 않다. 여러 번 밀려가기를 거절하며 잔류를 고집하던 냇가의 살얼음도 고집에 한계가 왔다. 3월과 함께 찾아오는 담장 너머의 목련은 봄의 전령으로서 단연 압권이다. 더하여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을 듣노라면 어지간히 무딘 감정도 봄을 만끽한다. 사계절이 분명한 우리들은 행운이다. 동남아 어느 나라를 방문 했을 때다. 시도 때도 없이 비가 왔다. 거기서 수고하는 한 선교사님이 우기도 우기지만 1년에 맑은 날이 몇 없다며 고국의 사계절이 그리울 때가 많다고 했다. 우리네 여름 또한 만만치 않은 계절이다. 더위가 여름계절의 속성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름이라는 계절이 마냥 덥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작열하는 따가운 햇살은 산으로 바다로 우리를 몰아간다. 탁 트인 여름의 해풍이 그리 시원 할 수 없다. 부산 토박이인 내게 바다가 아쉽진 않지만 바다의 바다다움을 느낄 수 있을 때는 여름이다. 살기가 좋아진 탓이겠지만 겨우 작은 보트나 젖던 내 어린 시절과는 달리 선진국 흉내 내는 각양의 해상레포츠들이 여름을 화려케 한다. 덥다고 불평만 할 수 없는 멋과 낭만의 여름이다. 뛰쳐나가고 싶은 청년들에게는 더없이 멋진 환경이다.
계절 타령은 계절의 왕 가을로 넘어간다. 가을만의 깊이와 내면은 수많은 시인을 낳고 사상을 낳는다. 사랑을 낳고 이별을 잉태한다. 가을은 역시 깊이의 계절이라 할 만큼 괜찮은 생각을 이끌어내고 그 생각에 깊이를 더한다. 세월의 원숙함을 자연에서 느낀다고나 할까 청년의 푸르름을 뒤로하고 인생의 원숙함을 자연세상에서 느낀다. 마냥 화려한 색의 화려함에 취하여서가 아니라 익어가는 단풍과 함께 인생이 익는다. 오랜만에 생각 속에 푹 빠져보는 여러 밤들이 지나간다. 인간을 헤아려보고 좋아하고 미워하고 지치고 외롭고 기뻤던 만남과 헤어짐을 생각한다. 그게 가을이다.
다시 겨울이다. 바람이 다르다. 얼굴에 와 닿는 공기가 다르다. 겨울을 알리는 워밍업이 끝나자말자 삭풍이 몰아치고 사방이 깡깡 얼어붙었다. 흰 눈이 천지를 덮었다. 깊은 겨울밤의 따뜻한 이불속을 파고든다. 이불의 무게만큼 모든 것에 무게감이 더하는 시즌이다. 그만큼 정도 사랑도 인생도 깊이를 더해가는 요즈음이다. 지난날을 생각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때이고 향차 또 어떻게 살까 방황인지 계획인지 막연한 꿈인지 생각에 빠져든다. 일 년 열두 달 365일이 다 지나고 달력을 바꿔야겠으니 생각이 아니 깊어질 수 없다. 편하게 사계절을 그려 보았다. 더 장황하게도 할 수 있고 화려할 수도 있겠으나 누구나 사계절의 변화를 그 정도는 느낀다. 새봄이 왔다 싶더니 어느 덧 가고 다시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고 가을도 가고 겨울이 온다. 어느 누구도 이를 두고 애써 슬퍼하지도 더 많이 기뻐하지 않는다. 지나는 계절을 두고 미워하지도 속상해 하지도 않는다.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인다. 오히려 각각의 계절에 의미를 더 하여 살아나기도 하는 것이 사계절이다.
그런데 왜 인생은 그리하지 못한가 하는 말이다. 태어나 유소년 청소년 청년시절 장년 그리고 노년시절 다 괜찮고 나름의 의미가 풍성한데 왜 노년만 그러지 못할까? 아님 아직 내 연륜이 그만 못하여 노년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것일까? 혹 그럴까도 많이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끼워 맞춰도 역시 노년은 별로 인 것이 왜일까? 사계절 같이 다시 돌아 올 것 같지 않아서일까. 이제는 다시 새로울 수 없기 때문일까. 왜 이방종교에서 윤회를 그럴듯하게 그렸는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그들은 인생의 황당함을 윤회에서 찾으려 했는지 모르겠다. 얼마든지 인생의 겨울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지 않을까. 수고롭게 살았던 노년을 뛰어넘어 봄의 향연에 대한 기대 같은 지혜가 절실하다. 노년을 극복하는 인간의 더 깊은 세계를 볼 수 있으면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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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늙음을 생각한다.
유효기간에 대한 묵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