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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상 위는 복잡하다. 제한된 면적 위에 꼭 보고 싶은, 볼려는, 보던 책들이 자꾸만 쌓여간다. 수시로 정리를 한다. 그래서 꼭 봐야지 하는 미련이 남은 책들만 있다. 엄선된 책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 중 제일 의외의 책이 ‘노년’이다. 프랑스의 여성 해방론자 시몬 드 보부아르가 쓴 책 이다. 보부아르는 프랑스 소르본느 대학에서 만난 당대 최고의 철학자 샤르트르와의 완전자유 계약결혼으로도 유명하지만 ‘초대 받은 여자’ ‘제2의 성’으로도 국내에 잘 알려져 있는 유명 작가이자 사상가 페미니스트이다. 그 진보적인 여성이 ‘노년’이라는 당신에 어울리지 않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책을 썼다. 엄청 방대한 양이다. 이 여성 작가가 뭘 말하고 싶은 것이었을까 궁금하여 두 번이나 읽었다. 노년은 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젊은 세대와 사회가 지난 세월 고생한 세대를 아름답게 봐야할 의무,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노인에게는 그만한 자격이 있다는 것을 여러 시각으로 제시한다.
왜 나이가 들면 곱지 않을까 는 언제나 나의 큰 의문이었다. 생로병사의 소위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이 내게는 숙제였다. 워낙 어머니를 좋아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뭐 그리 대단하고 나만의 경험일까. 어쨌든 나는 아름답지 못한 노년이 불만이고 궁금했다. 모세는 나이 120이 되어도 기력이 쇠하지 않았다는 성경기록이 있지만 대부분의 우리 주위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늙으면 약하고 고장나고 병들고 추하고 실수 많고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원치 않지만 그렇게그렇게 자식에게 짐이 되어 인생을 끝내는 인생이 의아했던 것이다. 그 임의움직이지 못하는 이가 그 제대로 기억도 계산도 바른 판단도 못하고 인지능력도 상실하고 그럴싸한 생산 활동을 못하던 이가 바로 한나라의 최고 지도자였으며 지성이었으며 유명 스포츠 스타였다. 화려한 세월을 뒤로 하고 지금은 자기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 주위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 없다. 드디어 대소변도 가리지 못한다.
많은 노인들이 기저귀 차는 것을 싫어한다. 대부분 처음에는 완강히 거부한다. 병원이나 요양시설의 직원들 몰래 찢어버리기를 수 없이 되풀이 하여 애먹인다. 그러나 그도 며칠 결국은 기저귀 신세를 진다. 얼마나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치사하고 인생이 산다는 것이 짜증스러울지를 생각해 보았는가. 그렇다는 사실이다. 부끄러워할 인지능력마저 가지지 못한 경우는 더 심각하다. 30대 초반 서울에서 사역할 때 한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 중한자실에서 마치 푸줏간의 고기처럼 취급을 당하는 어른들을 보았다. 그곳의 환자들은 전신이 벗겨진 채 별 다른 의식도 없이 그렇게 취급을 당했다. 그날 받는 충격으로 많이 울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당시의 충격이 기억나 눈물이 난다. 그때 “주님, 이것은 아닙니다!” 라고 절규했다. 그러나 그게 노인의 실상이다. 물론 거기는 다른 중증 질환자도 여럿 있었지만.
그 노인이 나의 어머니, 아버지다. 이렇게 멋있는 나를 낳으셨고 나를 기르셨고 내게 용돈을 주시고 학비도 주시고 필요를 느낄 때마다 모든 것을 해결해 주셨다. 그는 내 보기에 전능자 같았고 어디서든 어떻게든 돈을 얻어오는 해결사였다. 그런 아버지다. 그런 어머니다. 남들의 눈에는 입을 막고 코를 틀어막아야 하는 상한 고기 같은 그 분이 내게는 아버지요 어머니다. 수많은 아름답고 신기한 기억을 제공하는 그 분이다. 아름다운 기억속의 그 분이다. 살가운 사랑을 베풀어 주시던 할아버지 할머니다. 아니다. 다 틀린 말이다. 그 이상하고 추하고 더럽고 무능한 그 분이 바로 나다. 오래지 않아 만나야 하는 내 모습이다. 병실에서 수고하는 아내에게 종종 하는 말이다. “당신은 착한 사람이라 잘 하지만 더 잘해야 한다. 그 분들은 바로 우리의 미래다. 그렇게 수고 하셨던 내 아버지시고 그렇게 아름다웠고 용감했고 억척같았던 내 어머니다. 이는 바로 나다.” 우리는 같은 말을 할 때마다 숙연했고 공감했다. 이렇게 쇠하여지고 병들은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를 얼마나 더 존경하고 공경해야 할지 말을 더 하면 글이 지저분해 질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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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아름답지 않다(?)
유효기간에 대한 묵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