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생 때부터 소경으로 태어났다면 아예 보는 것의 개념이 없을 수도 있겠다. 천연색을 보지 못하였으니 천연색의 개념이 없어- 혹시 선천적 맹인이 갖는 천년 색감이 있는지 사실 정확히 모르겠지만....- 전부 무채색으로 보이지 않을까 싶다. 아예 처음부터 보지 못한다 는 개념이 없으니 보지 못하는 것의 개념도 우리 같지 않을 수도 있겠다. 넘어지고 부딪히고 웅덩이에 빠져도 그것을 보지 못함 때문이라기보다 본래의 불편함 정도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예 처음부터 그리하면 그것도 보지 못한다 는 것 그리 불편하지 않을 가능성마저 있어 보인다. 경험에 비추어 농아들이 그랬다. 잘 안 들리는 사람은 안 들림으로 인해 안 들려서 못 들으니 자기는 별로 불편하지 않는 것 같았다. 문제는 소통이 필요할 때다. 듣고 싶을 땐 못 듣는 것이 불편이 될 수 있고 상대방 역시 듣게 하고 싶을 때 못 알아들으면 불편할 수도 있다. 그리고 보니 듣는 것도 보는 것도 소통의 때이다. 소통을 포기해 버리면 많은 것이 더 이상 문제되지 않는다. 비슷하게 지식의 문제도 그렇다.
부족한 사람의 특징 중 으뜸은 자기가 부족한 것을 거의 모른다. 아는 것이 거기까지기 때문이다. 제법 아는 것이 있어야 의문도 생기고 질문도 생기지 아는 것이 많이 부족하면 자기가 아는 세계에 갇혀 있어 그것으로 끝이다. 아는 것까지 아니까 자기는 불편하지도 않고 모르는 것도 없다. 모른다 는 것은 모르는 것을 모르니까 이를 초월하기가 정말 어렵다. 자기는 잘 모르지만, 잘 모르고 아는 것이 적다는 것만 알아도 굉장한 가능성이 있을 텐데 아는 것이 적음으로 인해 아는 것이 적다는 것 자체를 알기 어렵다. 이게 문제다. 소통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라는 것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많이 아는 사람과 많이 모르는 사람, 높이 멀리 보는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 넓게 보는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 깊이 보는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 이 모두 소통이 거의 불가능하다. 한쪽은 자기 눈에 보이 것, 볼 수 있는 것, 아는 것만 알고 이해한다. 더 많이 보고 더 아는 사람의 일방적인 양보와 이해가 없으면 참으로 괴로운 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덧 붙여, 더 많이 본다는 것 더 많이 안다는 것이 이렇게 대단한 것이지만 약점 한계도 있다. 인간의 경험과 지식이 놀랍지만 그럼에도 한계가 엄연히 있다는 것이 첫째이다. 아무리 많이 알고 보아도 유한한 정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유한한 경험과 지식은 절대가 될 수 없다. 모르는 것과 비슷하다. 둘째 그나마도 인간의 욕망, 편견, 오해에 의해 왜곡 가능하다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만 그 중에서 성경만 의지하고 살려 작정한 것이 그런 까닭이다. 거기 안전이 있어 보여서다. 지식인이라 자처하는 나를 낮추고 제한하고 통제하려는 안전장치로 성경을 삼은 것이다.
결국 아는 이든 아는 것만큼, 많이 모르는 이는 또 그만큼 서로 참고 양보하고 들어주고 이해하려 해야 한다. 아무래도 많이 가진 사람의 양보와 이해가 더 절실하다. ... 지난 수십 년 목회생활동안 제일 어려운 것이 이것이었다.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의 차이를 어떻게 넘어설까 였다. 아예 마음을 비우기도 해야 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살아 갈 수 있었다. 아는 것이 별로 많지 않은 나도 그랬으니 하나님은 얼마나 많이 참고 양보하고 기다려야 했을까 싶다. 그렇지 아니한가. |
|
선천적 소경은 별로 불편하지 않다. Really?
유효기간에 대한 묵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