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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중반 일기를 쓰기 시작한 이후 벌써 여러 번 시도 했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처음 아이를 가졌을 때 얼마나 좋든지 1년 365일 육아일기를 쓰려했지만 첫째 둘째를 너무도 허망하게 잃어버려 자연히 그만두게 되었다. 이후에도 꼭 육아일기가 아니라도 1년 365일을 있는 그대로 기록에 담아 놓고 싶었으나 어려워서 어려운 것이 아니었음에도 쉽지 않았다. 하루든 이틀이든 빠지면 빠진 대로 계속 했으면 얼마든지 했을 텐데 ‘하루도 빠짐없이’ 가 도리어 족쇄가 되었다. 하루 이틀 빠지면 ‘하루도 빠짐없이’ 라는 명분을 잃어버린 셈이니 계속 실패(?)를 이어 갈 수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지금 생각하면 웬 바보 같은 원칙인가 하지만 내가 이렇게 엉터리다.
오늘은 7월 3일이다. 금년은 아직까지 하루도 안 빼 먹고 일기를 쓰고 있다. 겨우 절반이 지나 절반이 남아 있으니 끝까지 가야 하겠으나 지난 절반이 무척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오랫동안 일기를 계속 쓰다 보니 어느 특정한 해도 아닌 평범한 어느 1년 365일을 옮겨보고 싶었다. 지난 1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으며 무슨 생각을 하였으며 세상을 어떻게 보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으며 내가 한 시대의 구석에서 어떤 시각 어떤 입장으로 살았든지 정직하게 고스란히 담아보고 싶었다.
제일 어려운 것은 소박한 성실함이었다. 세상만사 그렇듯 꾸준하게 성실한 놈은 못 이긴다. 일기도 그랬다. 언제나 그게 중요하고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그게 중요하든 않든 하루도 빠짐없이 라는 소박한 약속을 지키기가 제일 어려웠다. 거기는 일상을 변함없이 살아갈 수 있는 착한 소박함과 성실함이 요구된다. 많은 날, 꼭 일기에 남겨 놓을 만큼 의미 있는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의미 있는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니다. 어느 날은 기억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그냥 그렇게 지나간다. 실은 거의 매일이 그렇지 않은가. 아주 오래 전 언젠가 작가 이상이 남긴 일기와 편지글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상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 얼마나 평범한 글을 남겨 놓았던지 많이 놀랬다. 그렇게 평범하게 살 수밖에 없는 나는 위로를 많이 받았었다. 이렇게 대부분의 매일은 아무 일 없이 그렇게 지나간다.
그리고 어려웠던 것도 마찬가지다. 일상 속에서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이 내공이 부족한 나로서는 또 어려웠다. 생각을 하기도 싫고 생각할 것도 없고 일기장을 열어 생각을 이어 갈만한 기력이 없을 때도 많았다. 어찌 그런 일이 없겠는가. 나처럼 조석지변 감정의 기복이 많고 성실함이 적은 사람에게는 하루를 차분히 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치열함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도 이 역시 결코 쉬운 것은 아니지만 이런 단순함과 소박함에 비하면 꼭 정직하게 써야 한다는 오히려 쉬운 편이었다. 정직하게 있었던 일과 생각 그대로 담아 놓는 것이다. 생전에 펼쳐 놓을 것 같지 않고 그러다 죽기 전 다 없애 버릴 수도 있는 것들이다. 꼭 누구에게 남기거나 보여 주려고 쓰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자기를 돌아보는 것임에도 정직한 자기 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도 바른 보기라는 것에 정답도 없으니 더욱 그렇다. 제 눈의 안경같이 ‘자기 보기’를 하는 것임에도 그 자기 바로 보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그럼에도 할 수만 있으면 하루하루 정신없이 흘러가는 와중에도 정신 차려 자신을 바로 보려했고 그것이 어려웠던 것이다. 한해의 기록을 남김에 하루하루 뭘 생각했으며 또 뭘 했는지가 중요했지만 그것을 통해 진아(眞我)를 찾고 그 나는 내일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자신을 찾고자 했다. 자신에 집중했던 절반의 성공을 위로하여 남은 절반은 좀 더 가족들과 사회를 보았던 시대의 고민에 초점을 맞춰 보려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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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日記)
유효기간에 대한 묵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