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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오랜 수년 전에도 이 면에서 밝힌 적이 있지만 나도 내 어린 시절 내가 뭘 하고 지냈는지 궁금했다. 마음먹고 생각하니 난 딱지치기도 팽이돌리기도 구슬치기도 어떤 것에도 빠져 본적이 없었다. 그 어릴 적 나도 그런 내 모습이 싫어 일부러 빠져 나와야겠다 생각하고 작심하여 연도 날려보고 딱지치기 구슬치기도 하고 만화도 잠시 보았지만 그 이상의 기억은 별로 없다. 대신 그런 나는 늘 생각 하는 아이였다. 어느 날 학교 정자 아래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좋아하는 달리기를 하면서도 수업 중에도 생각에 빠져있는 내가 떠올랐다. 내가 대학 진학 후 처음 샀던 책은 월부로 산 두꺼운 철학대사전 이었다. 그 두꺼운 책을 다 읽어보리라 했다.
역시 비슷한 시기로 기억한다. 어느 날 여동생의 책상위에 ‘생각’ 이라는 한자(漢字)가 적혀 있었다. 깜짝 놀랐다. 날 생(生)자에 깨달을 각(覺)자로 아! ‘생각’이 이렇게 생겼구나 했다. 이후 그 한자를 마음에 깊이 새겨두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생각은 한자가 아닌 우리말 이라는 것을 알고서 동생에게 일러주니 별 반가와 하지 않고 그 틀린 한자를 오래 그대로 두었었다. 난 동생이 ‘생각’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 하구나 싶었다.
내가 꽤 T.V를 즐겨보면서도 오락물 소위 예능이니 엔터테인먼트는 평생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즐겨보는 사람들 괜히 미안해할 이유가 없다. 그건 선도 악도 아니고 내 취향이 아닐 뿐이다. 난 귀담아 들을 내용이 없으면 시끄럽기만 할 뿐 관심이 가질 않았고 도리어 짜증이 났다. 그래서 늘 시사교양의 다큐물만 즐겨 본다. 취향을 바꿔 보려 해도 잘 안 된다.
최근 어떤 T.V. 프로에서 경기도에서 서울로 4시간 이상을 들여 출퇴근을 하는 이가 있었다. 난 수십 년 동안 출퇴근 없이 살았다. 말하자면 SOHO(Small Office Home Office)man이다. 이는 목사로 살아가는 내가 은근히 감사하는 일 중 하나이다. 혹 목사가 아니었어도 그렇게는 난 살 수 없었을 게다. 이렇게 살아온 나에게 주어진 큰 선물이 늘어난 “시간” 이다. 놀 줄도 쉴 줄도 모르는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선친이 내게 남겨 준 글 읽는 습관과 찰떡궁합이 되어 철든 이후 하는 것이라고는 책만 보았다. 요즘은 저녁이 되면 눈이 피곤하고 아파 많이 못 읽는다. 그러면 딱히 할 게 없다. 평생 손에 책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청년 때는 들고 다니던 단행본을 꽤 잃었다. 그리고 하나 더 난 10살 때부터 신문을 정독했다. 지면을 빼먹으면 큰 손해라도 될 듯 공부하듯이 신문을 봤다. 오늘 아침도 대단히 탁월한 세계적인 의사에 대한 기사를 보았지만 진짜 지능이 높고 기억력이 뛰어나고 수학적 이해가 뛰어난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 난 전혀 그런 사람이 못된다. 누가 누가 나를 보고 똑똑하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듣기도 했지만 전혀 사실과 다르다. 대신 난 내게 주어진 그 많은 시간에, 남들이 쉬 가질 수 없는 넉넉한 시간에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었고 읽은 것을 통해 지식 정보를 계속 쌓아왔던 것이다. 마침내 쌓인 정보가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력이 되고 그 쌓인 정보를 취합하여 전후좌우를 판단할 수 있는 합리적 통찰력과 분별력도 생겼다. 혹자가 나를 보고 ‘참 많이 안다’ 는 것은 딱 여기 까지다. 남들과 달리 목사인 나는 시간이 많았고 그 많은 시간에 잡기(雜技)에 마음을 두지 않고 책이 좋아 책을 읽었고 소년시절이전부터 신문을 읽었고 그것들을 취합했던 것이다. 앞으로의 날들은 살아보지 않아 어쩔지 모르겠으나 생각과 읽기가 내 가진 재산이다. 그런 내 재산이 이제 내게 병이 되었다. 내 병명은 ‘너무 많은 생각’이다. 나를 진료하는 의사분이 하는 말씀이다. 생각이 너무 많고 깊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몸이 많이 지치고 힘들어 병이 되었다 한다. ‘생각중지’를 하라 하시는데 늘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이 어떻게 생각을 중지해야 하는지를 몰라 헤매고 있다. 운동을 세게 하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산과 들과 바람과 바다를 느껴보고도 싶으나 어느새 또 뭘 생각한다.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키라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전도서12:12)’ 성경에 다 있는 말씀이다. 이제 정말 재산 같았던 생각을 중지하고 쉼을 누리고 싶다. 여기까지 오느라 시간이 많이 흘렀다. 목사가 아니라 바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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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유효기간에 대한 묵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