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모 방송국의 ‘동물의 세계’ (주말에는 ‘동물의 왕국’이라한다.)프로를 좋아하는 것은 우리 성도들에게 잘 알려진 얘기다. 나만이 아니다. 최근에도 교수로 있는 친구와의 대화에서 그도 ‘동물의 세계’를 좋아한다는 말을 먼저 했다. 사회 저명인사들 중에도 의외로 ‘동물의 세계’를 좋아하는 이들이 많다. 내가 좋은 대형 T.V를 꼭 갖고 싶어 했던 이유 중 하나도 대형의 좋은 화면으로 야생의 동물들을 실컷 보고 싶어서였다. 한때 해당 방송국이 이 장수 프로를 없애려는 계획을 발표했다 여론의 무서운 질타를 받았다. 그러나 이런 나의 고상한(?) 취미도 일종의 관음증이다. 관음증은 원래 다른 사람의 특정 신체 부위나 성적 행동을 훔쳐보며 성적 쾌락을 얻는 증상을 가리키는 별로 좋은 말이 아니다. 이런 나의 작은 취미를 내가 관음증으로 비하하는 것은 동물의 세계를 보며 실은 인간의 세계를 보기 때문이다. 저건 야생의 동물이고 우리는 그럴듯하게 포장된 사람이라는 차이뿐 재미있게 볼 때마다 사람을 훔쳐보는 것 같은 착각 내지는 대리만족 혹 반사효과를 느끼기 때문이다. 인간세상 어디서 이렇게 리얼한 생존경쟁과 살기 위한 처절한 노력과 때로는 모성과 수놈의 싸가지며 종족번식에의 본능적 충동과 다툼과 승자와 패자를 볼 수 있을까? 글쎄다. 동물의 세계만이지 않을까 싶다. 여러 다른 말로 변명하려할 필요가 없다. 나는 동물의 세계를 통해 사람의 세상을 본다. 대리만족 정도가 아니라 어느 스승의 가르침보다도 더 절실하고 더 자연스럽고 더 실감나는 교훈과 책망과 지혜와 자세를 엉뚱한 곳에서 보는 것이다.
버펄로 이야기다. 버펄로는 아프리카물소로 소목에 속하는 포유동물이다. 주로 아프리카에서 많이 서식하지만 버펄로 무리와 늑대와의 추격전이 나오는 ‘늑대와 춤을’이라는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자연의 숨결이 남아 있다는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 옐로우스톤을 배경으로 한 북미에도 많이 남아 있다. 버펄로는 덩치가 크고 뿔이 양쪽으로 활처럼 굽은 것이 특징이지만 평소에는 순해 보이는 것이 열 받으면 완전 못 말린다. 시속 50Km를 달릴 만큼 빠르기도 하지만 힘이 있어 사자들도 어설프게 달려들다가는 황천길로 갈 수 있다. 이런 버펄로가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아도 많이 작은 늑대에게 쫓겨 결국 먹잇감이 되고 마는 신기한 장면을 보았다. 야, 대단하다. 절로 탄성이 나왔다. 저렇게 작은 몸집으로 버펄로를 상대하여 기죽지 않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잔뜩 쌓여있는 눈길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라도 먹잇감을 확보하지 않으면 제가 굶어 죽을 지경이어서일까 늑대는 포기하지 않고 죽을힘을 다해 버펄로를 추격한다. 최고의 맹수는 역시 사자다. 사자만큼 대단한 놈이 없다. 대단한 놈이다. 어떻게 그 덩치로 코끼리며 기린이며 얼룩말 같은 것을 잡아먹고 생존을 이어갈까 싶다. 그러나 그 사자의 사냥 성공률은 실은 매우 낮다. 갈수기(渴水期) 끝자락에는 사자들도 먹잇감을 얻지 못해 제 명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새끼 세 중 하나만 살아남을 정도니 엄청 힘들게 사는 것이다. 그렇다. 이 세상 어디에도 쉬운 것이 없다. 쉽게 살려하면 사기꾼이 되고 도적이 된다. 그도 별 쉬운 것 같지 않지만 말이다.
눈 속에 발이 빠져 지쳐 떨어질 것 같은 악조건에도 추격의 끈을 늦추지 않는 늑대에게서 또 그 늑대에게 결국 먹잇감이 되어버리고 마는 냉혹한 야생의 현실을 보며 ‘예외 없이 모든 환경을 극복하고 열심히 살아야 하구나’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고 배웠다면 너무 살벌한 배움일까. |
|
늑대의 버펄로 추격전
주의 길을 가는 이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