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4. 24.

세월이라는 시금석

글쓴이: 이동훈 날짜: 2003.04.28. 14:19:03 글쓴이IP: 211.191.233.93

더러 정치가들이 정치적으로 미묘하여 당장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를 두고 '역사에 맡기자'는 말을 하고 억울하게 할 말을 다 못한 이들이 '역사는 진실을 밝혀줄 것이다'는 말을 나기기도 한다. 이렇게 역사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어려서는 그저 그러려니 하고 생각한 적이 있고 그 보다 더 어려서는 '역사란 무엇인가'하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50이라는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그 사이에도 벌써 역사 속에 묻혀버린 그러나 여전히 쉬 잊혀지지 않는 쓰리고 해괴한 기억들이 몇 있다. 난 참 수줍은 사람이다. 옳게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마저 다 발휘하지 못하도록 내성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그 내성적 성격만큼이나 나는 자신을 대단히 강직한 사람이라 생각 하곤 한다. 내성적이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만큼 말수가 적고 아무 하고나 잘 어울리지 못하나 옳고 그럼에 대하여는 목숨을 걸고라도 따지고 불의하게 곤경에 몰리면 최후의 승부수를 띄우므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곤 한다. 그래서일까? 선이 굵고 단순한 내 강직한 성품만큼 나를 따르는 이들 중에도 보통 이상 분명한 태도로 나를 대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정말 나를 좋아했고 따랐으며 존경했다. 그리고 참 아름다운 말들을 했다. 죽도록 목사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고 한 이가 있었고 끝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목사님과 교회를 지켜드리겠습니다 한 이도 있었다. 어떤 이는 목사님이 좋아하는 걸 하면 성공하겠다는 확신이 든다는 간사스러운 말을 하기도 했고 좋은 집 좋은 차를 사드리겠다고 약속한 이도 있었다. 실은 차마 공개할 수 없도록 낮 간지러운 말을 한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세월을 이겨내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온 성도들이 피땀 흘려 눈물로 헌금하여 세운 교회 안에 그대로 있으나 그들은 나의 등 뒤에서 나를 욕하고 핍박하였으며 떠나버렸다. 목사는 할 말을 다하고 살아서는 안 되는 사람이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나 다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그들을 심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니 그들이 남긴 말들이 그들을 심판할 것이니 잠시 나를 속일 수는 있었으나 세월을 속일 수는 없다.
정직하고 곧게 평생을 한결같이 변함없이 사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